2025년 11월 27일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이른 새벽,
차가운 공기 위로 아주 작은 빛이 번졌습니다.
커튼 틈 사이에 걸린 그 빛은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린 듯
조용히 책상 위를 스쳤습니다.
그 작은 빛 아래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조용해진 마음으로.
1895년 11월 27일 — 노벨 사망
이날, 노벨상이 탄생하게 만든 장본인 알프레드 노벨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폭발물을 만들던 사람이
마지막엔 “사람을 더 낫게 하는 일”에 자신의 재산을 바치기로 선택했다는 것.
삶을 끝까지 살아본 후에야
자신의 손이 무엇을 남겼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는 것.
그 사실이 묘하게 오래 남습니다.
사람은 끝에 다다라서야
자기가 정말 바라던 길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니까요.
아침 산책길에서
한 남자가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손에는 얇게 접힌 편지가 있었고
그는 여러 번 펼쳤다가
다시 접곤 했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종이였습니다.
버스가 오자 그는 끝내 편지를 보내지 못한 듯
그 종이를 가만히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버스 문이 닫히기 직전,
그 남자가 보던 방향으로
햇빛이 아주 부드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전에도 본 적 있는 장면이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 속에서
하루를 버텨가기도 한다는 것을
그 남자의 주머니가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내 안에서 조용히 흔들립니다.
누군가에게 전해지지 않은 말,
손끝에서 맴돌다 멈춘 따뜻함,
이유 없이 흘려보낸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은 조금 더 부드럽게 느껴지게 하소서.
누군가의 하루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면
내 눈빛 하나가
그 무게를 조금은 덜어주게 하소서.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이
누군가에겐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 하루,
나는 크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천천히,
아주 작은 온기로 살아보겠습니다.
내 마음의 졸음 같은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사람은 누구나
주머니 속 편지처럼
미완의 마음을 하나쯤 품고 산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고 오늘 끝자락쯤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더라도 괜찮게 하소서.
나는 아직
따뜻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을 내쉽니다.
아주 천천히.
그 숨 끝에
작은 빛 하나가 남습니다.
오늘을 견디게 하는,
적지만 오래 남는 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