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를 낳으면 모두 친정으로 가게 될까
아이를 낳고 나면 시댁과 친정이 이렇게 다른 공간이라는 걸 몸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친정에 더 자주 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시댁이 그렇고 모든 친정이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많은 며느리들이 고개를 끄덕일 ‘차이’는 분명히 있다.
아이를 낳으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해진다. 아이는 하루 종일 엄마를 찾고 엄마는 하루 종일 아이만 본다. 씻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시간을 내서 하는게 아니다. 아이가 울지 않을 때를 노려야 한다.
이럴 때 친정엄마는 손주를 보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딸을 살리러 온다. 예쁜 손주를 안고 있으면서도 자꾸 나를 본다. “밥은 먹었니?” “잠은 좀 잤어?”
주말이면 반찬을 한가득 해 오신다. 아이 보면서 후딱 먹을 수 있는 것부터 남편이랑 같이 먹으라고 챙겨준 것까지. “우리가 애기 볼 테니까 잠깐이라도 자.” “볼 일 볼거 있으면 다녀올래?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와.”
잠깐 눈을 붙이고 나오면 아이는 평온하게 자고 있고 집은 언제 손댔는지 모르게 정리돼 있다. 친정엄마만큼이나 노련한 친정 아빠가 아기를 보고 있고, 내가 깬 소리에 친정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후다닥 나온다. 애기 보고 가시라니까 왜 청소를 하고 있냐고 눈물 섞인 짜증을 내면 웃으면서 내 등을 가만히 토닥인다. 나도 이제 엄마구나 싶었는데, 나도 아직 기댈 수 있는 엄마가 있구나 싶어 힘이 난다.
아이 좀 크고 나서 가보면 친정 집은 이미 아기 집이 돼 있다. 가구 모서리마다 붙어 있는 보호대, 벽장에서 술술 나오는 아기 옷, 산책 나가라고 준비해둔 유모차, 아직 기지도 못하는데 벌써 꺼내놓은 보행기. 손주가 낯설어하지 않고 편안히 지내고 가길 바라는 할머니할아버지 따뜻한 사랑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여기가 친정이구나. 거리만 가까우면 아기띠만 매고 매일 찾아오고 싶다.
시댁은 다르다. 예쁜 손주를 보러 잠시 다녀가는 손님같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평가가 시작된다. “집이 너무 덥다.” “애 손을 왜 그렇게 꽁꽁 싸맸니.” “인형 치워라, 먼지 많다.” “베넷머리 한 번 밀어야지.”등등. 산모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다. 그마저도 집으로 오시는 건 그 때 뿐이다. 결혼한 아들 집에 자주 가면 싫어한다더라며 아이를 데리고 직접 찾아오길 기다린다.
시댁에는 아이 물건이 전혀 없다. 한 번 갈 때마다 바리바리 여행가듯 짐을 챙겨야 한다. 젖병, 분유, 기저귀, 아이 내려놓을 이불, 울까 봐 챙기는 장난감까지. 한 짐을 챙기면 이미 몸이 지쳐있다.
아기가 울자 이럴 때는 기저귀를 봐야한다고 시어머니가 노련하게 기저귀를 풀었다. 서늘한 공기에 아기가 놀랐는지 쉬야를 해서 아기 옷이 다 젖었다. 시어머니가 웃으면서 아기 갈아입힐 옷좀 달라신다. “여벌옷 안 챙겼어? 여벌 옷은 기본이야.” 그리고 꼭 덧붙인다. “앞으로 애 잘못되는 건 다 엄마 책임이야.”
같은 엄마인데 어떻게 이렇게 말씀하실까 서럽다.
지적받지 않으려면 아이를 데리고 한 짐을 다 짊어지고 가야하니 시댁은 남편이 함께 있는 주말에만 갈 수 있다. 어렵게 가서 아이를 보여드리면 시아버님이 한 말씀하신다. "낮에 집에서 놀면 뭐하니, 데리고 와서 자주 좀 보여줘". 손주가 예쁘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를 볼 줄은 모른다. 아이가 울면 며느리를 부른다. “애 운다. 와서 달래라.”
그때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과일을 깎고 후식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를 달래고 다시 가서 부엌일을 마치고 와보면 아기 품평회가 끝나 있다. “인물이 훤하네." "코가 오똑한게 딱 우리 집안이다.” “우리 아들 어릴 때랑 똑같네.” 그리고 식곤증이 오는지 모두 낮잠을 주무신다. 부엌일을 마친 나는 아기띠를 메고 서서 집안을 왔다 갔다 한다. 낯선 환경에 보채는 아이를 혼자 재우며 서럽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밤이 깊어져서 집에 돌아온다.
평일에는 아기가 보고싶으니 사진을 보내라 하신다. 단톡방에 아기 사진을 보내면 아기에게만 인사를 건넨다. 나에게 오는 말은 없다. 지난번에 아기를 너무 꽁꽁 싸놓았다고 지적하셔서 사진을 보낼 때 속싸개를 풀어놓고 사진을 찍어 보낸다. 이제 개월수가 좀 크기도 해서 속싸개를 슬슬 풀어주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번엔 꽁꽁 싸맸다 혼나고 오늘은 풀어놨다 혼난다. 사진 하나 보내는 것도 일이다.
평일 내내 혼자 아이를 보다 주말엔 남편이랑 같이 쉬고 싶지만 주말이 되면 “손주 보고 싶다”는 말에 또 간다. 그러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울면서 말한다. 매주 식사를 차리던 시어머니가 며느리도 봤는데 아들며느리 식사까지 챙기고 있는게 한스러우셨단다. “나도 이제 지쳤어. 다음부턴 바리바리 싸들고 올 거 아니면 오지 마.” 그날 집에 돌아와 나도 울었다. 나는 쉬러 간 적이 없었는데.
그 이후로 시댁에 가려면 짐도 싸고 외식 장소도 정하고 산책 코스까지 미리 찾는다. 식성이 서로 다른 시부모님이 모두 만족하실 식사를 해야해서 뷔페나 한정식집에 가야한다. 모두가 식사를 하고 나는 한 켠에서 아기 분유를 먹이거나 안아서 재운다. 식사를 후다닥 마친 남편이 아기를 재우겠다며 받아 들고 얼른 식사를 하라고 한다. 한 술 뜨려고 하면 이미 식사를 마친 시부모님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멀뚱멀뚱 헛기침을 하고 계신다. 시어머님이 다 먹은 반찬그릇들을 내쪽으로 밀어주며 말씀하신다. "많이 먹어. 엄마가 잘 먹어야 애를 돌보지."
친정에 가면 나는 딸이지만, 시댁에 가면 나는 손주의 엄마다.
그러면서 남편의 아내여야하고, 시부모님의 며느리여야한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나면 친정을 더 찾게 된다.
도움을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
엄마이기 전에 잠시라도, 나로 돌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