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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Jul 06. 2024

가장 깊은 호흡

그리고 슬픈 호흡

본가에 왔다.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켜보았다. 평소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 내 눈을 사로잡는 제목이 있었다.  


’가장 깊은 호흡.‘


무슨 내용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예고편을 보니 프리다이버에 대한 이야기였다. 로프 하나에 몸을 맡기고 오롯이 자신을 믿으며 끝도 없이 바다 저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세이프티 다이버의 이야기였다.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스웨터 차림을 한 백발 할아버지의 인터뷰였다. 그의 딸 알레시아는 어릴 적부터 수영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재능 또한 뛰어났던 작은 소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리 다이버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그 꿈을 향한 그녀의 집념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수영장 풀에서 꾸준히 연습을 하며 점점 실력을 키워나갔다. 꾸준히 또 지독하게 연습에만 몰두한 그녀는 마침내 화려하게 프로 세계에 입성한다.


그녀의 도전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장은 수심 30m에 다 달았을 때 느끼는 폐의 압박보다 더 세게 조이고 아팠을 것이다. 대회에 참여한 딸이 깊은 바다 밑으로 한없이 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그저 스트리밍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심정은 오죽할까. 남다른 꿈을 가진 딸을 응원해줘야 하는 아버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조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포토


여기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다. 푸른색 티를 입은 지긋하게 나이 든 할아버지는 자기 아들 스티브를 추억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모험심이 강한 스티브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릴 적 사진에서 본 적 있는 콩고의 고질라를 보겠다며 집을 나선다. 그렇게 아프리카 여러 곳을 여행하다가 프리 다이빙의 성지인 이집트의 다합에서 익스트림 스포츠의 매력을 한껏 느낀 그는 그곳에서 터전을 잡게 된다.


스티브는 고국의 다이빙 기록을 깨기 위해 도전하다가 여러 번의 블랙아웃 상태를 겪었다. 블랙아웃은 수심이 매우 깊은 곳에 도달하여 산소가 부족해지면 뇌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기능을 중지하는 상태로 서둘러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블랙아웃에 빠지거나 위험에 처한 프리다이버를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바로 세이프티 다이버이다.


그들 덕분에 간신히 살아난 스티브는 그때부터 세이프티 다이버에 대한 꿈을 품게 된다. 점점 명성을 쌓아가던 스티브는 한 대회에서 세계 최고의 프리다이버인 나탈리아 몰차노바의 아들을 구한 뒤 더 유명해졌고 그는 최고들만 초청되는 대회에 세이프티 다이버로 참여하게 된다. 그곳에는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온 알레시아도 있었다.


각 선수에게는 총 6번의 다이빙 기회가 주어지는데 알레시아는 특유의 지형으로 인해 다른 곳보다 더 어두운 바다에 적응하지 못했고 여러 번의 블랙아웃을 겪는다. 스티브는 절망에 빠진 그녀를 다독이며 일대일 강습을 통해 그녀를 또 한 번 성장시킨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녀는 라이벌인 일본 선수보다 1m 더 깊은 104m로 세계 기록을 경신한다. 금메달을 받고 웃어 보이던 그녀의 표정은 보는 사람도 웃음 짓게 했다.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녀가 참 멋져 보였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소박한 즐거움


알레시아와 스티브 사이에는 프리다이버와 세이프티 다이버 그 이상의 유대감이 생겼다. 세계 기록을 경신 후 알레시아는 블루홀을 건너는 위험한 도전을 하게 된다.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했던 알레시아는 또다시 스티브를 찾았고 그들은 훈련을 계획하고 또 연습하며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대망의 그날,


알레시아는 50m 잠수 후 접영을 한 뒤 블루홀에서 스티브와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스티브는 20초 늦게 입수를 했고 알레시아는 10초 일찍 블루홀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그들은 30초 사이로 엇갈리게 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수면 위의 동료들은 불안을 안고 그들을 찾아 헤맸다.


그들의 친구와 직장 동료들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 젖은 인터뷰를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함께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다큐멘터리 초반부터 지금까지 알레시아와 스티브의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만 나왔는데 드디어 알레시아의 인터뷰가 나왔다. 슬픔으로 굳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직감했다.


아, 스티브가 죽었구나…


깊은 바닷속에서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있던 알레시아는 가까스로 스티브를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깊은 바다에 오래 머문 그들은 이미 블랙아웃 상태로 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둘 중 한 명은 죽는다는 것을 안 스티브는 알레시아를 살리기로 마음먹는다. 꺼져가는 자신의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그녀를 살리기 위한 그의 마지막 몸부림은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한 수중 사진작가의 사진으로 남았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소박한 즐거움


필사적으로 그녀를 수면 밖으로 밀어내려는 스티브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 저 끝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울렁이듯 마음이 저릿한 동시에 감동과 슬픔이 몰려왔다. 세이프티 다이버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녀를 살리고 바다의 품에 안기는 것을 선택한 스티브.


그의 프로페셔널한 직업 정신과 그녀에 대한 사랑에 절로 숙연해졌다. 그 둘은 공식적인 연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들이 서로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알레시아와 스티브는 바다와 프리다이빙을 사랑했고 그 뜨거운 열정이 그들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했으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꽃피우게 했을 것이다.


스티브의 아버지는 말한다. 슬픔은 이기적인 면이 있다고. 그 이기적인 면 때문에 스티브가 그립다고 말이다. 슬픔에 이기적인 면이 있다는 게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슬퍼도 죽은 아들을 잊지 않고 싶은 마음일까, 아니면 스티븐 자신이 잊히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일까. 39살의 스티븐은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을 바다를 만났고 그 여정을 함께할 사람, 알레시아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를 구하고 바다 깊은 곳에 잠들었으니 그는 후회가 없을 것이다.


알레시아는 특히 그의 눈을 좋아했다. 다이빙하기 전 바다의 푸른빛을 담은 듯한 스티브의 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눈빛이 생생하다고 했다. 그녀는 스티브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그날의 자신을 원망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그녀의 눈물에서 그날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스티브는 영원히 자신과 함께할 것이라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한 그리움이 묻어있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소박한 즐거움


그리고 뜨겁게 도전하고 자기 스스로를 믿어라는 그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겠다고 했다. 알레시아와 스티브는 각자 자신들의 꿈을 위해 나아갔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만나 뜨거운 도전을 함께했다. 목숨이 위험한 극한의 스포츠지만 그곳에서 그들이 만나 함께 한 찰나의 시간들은 그 둘에게도 또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우리들에게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다큐멘터리와 ‘가장 깊은 호흡‘이라는 제목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갈수록 바다와 자신만 남겨진다고 한다. 프리 다이버들은 고요한 바닷속에서 폐가 조여 오는 그 순간을 이겨내고 마침내 바다 밖으로 나와 깊은 호흡을 내뱉는다.


알레시아의 깊은 호흡은 스티브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세계 신기록을 무려 23개나 달성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모든 걸 스티브에게 바치고 있다. 스티브의 가장 깊은 호흡은 그날에 멈추었지만 그 호흡은 가장 깊으면서 슬프고 의미 있는 호흡이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내 호흡을 멈출 수 있다니... 그의 직업 정신과 또 그녀를 향한 사랑이 내 마음을 울린다. 귓가에 물이 찬 것처럼 멍하게 가슴을 울린다.


문득 나의 마지막 호흡은 언제가 될까 생각해 본다. 그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 예견할 순 없겠지만 나의 마지막 호흡은 후회와 미련 없이 후련하게 내뱉고 싶다. 스티브의 마지막 호흡처럼 영웅적이고 희생적인 호흡이 될 순 없겠지만 나의 생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만큼은  편안하게 마지막 숨을 내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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