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옳음과 옳음 (1)

왜 토론인가?

by 백창인

* ‘물음의 눈’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질문에 질문을 더하며 깊게 내려갑니다.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글을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물음 자체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입니다.

* 풍부한 지식보다는 논리를 지향하는 글입니다. 제가 해박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나,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길은 철저한 사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물음의 눈’에서는 경어(敬語)를 사용합니다. 소통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혹 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부담 없이 댓글에서 이야기 나누기를 희망합니다.


1. 여태껏 글에서 나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기억은 없습니다. 연령이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편의 글을 읽어보시면 제가 학생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확히는 열아홉으로, 고등학생으로서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물음의 눈’을 시작하며 느닷없이 나이를 밝히는 이유는, 아마 토론의 의지를 보다 드러내고 싶은 마음 때문인 듯합니다.


2. 학생의 신분쯤은 짐작하셨겠지만, 제 지향점에 대해서는 알기 어려웠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밝히건대 저는 언론에 관심이 많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의사소통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로 해결하자, 너무나 진부한 명제입니다. 너무 진부한 나머지 진지함이 사라지는 비극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그래, 대화로 해결해야 되는 거 누가 몰라? 그런데 지금은……”

대화의 중요성, 토론의 중요성은 그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저는 ‘토론지상주의자’입니다.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세계의 핵심으로 이해하듯이, 저는 토론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3. 이에 동의하실 분은 많지 않을 것으로 압니다. 꽤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임을 인정합니다. 토론이 필요한 이유를 논하기에 앞서, 토론을 기피하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 봅니다. 우선 피로감이 있겠습니다. 저도 여러 번 느낀 바가 있듯이, 치열한 토론을 한두 시간 연달아 했을 때의 체력 소모는 엄청납니다. 상대방의 논리에서 허점을 찾고, 자신의 논리를 방어하며, 때로는 전제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등의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토론의 피로감은 사회의 차원에서 비효율성으로 확장됩니다. 모든 것이 급박하게 이루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토론에 힘을 빼고 있기에는 다소 무리라는 것입니다.


4. 비효율성을 야기하는 또 다른 원인은 결과가 가시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바탕 토론을 끝내고 나면 결국 남는 게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한 번의 토론을 통해 완벽한 합의점에 이르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토론을 하다 보면 어떤 논점에 대한 논의가 끝나지 않은 채 다른 논점으로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이러다 보니 사회에서 토론을 통해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우는 찾기 어렵습니다.


5. 이러한 경향은 사극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명량’이나 ‘광해’, ‘밀정’ 등의 영화는 모두 한 개인의 결단이 바꾼 역사를 그리기 때문입니다. 최근 히어로 영화가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기준이 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며칠 전 감상한 ‘남한산성’은 제게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의지의 일방향성을 강조하던 기존 영화들과 달리, ‘남한산성’은 토론의 한계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토론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옳음과 옳음 (2)에서 계속


17.10.09.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