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것

나이

by 한량

우리 어머니는 참 개구쟁이셨다. 초등학생이던 나보다 장난기가 많으시고, 웃음도 많은 소녀 같은 분이셨다. 어머니라기보다 큰 누나에 가까운 존재. 육 남매의 막내로 자라셔서 그런지 공주님 같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는 세월이 흘러 장난기가 줄고 주름이 많은 고리타분한 어른이 되는 걸 몹시 싫어하셨다. 아니, 무서워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마흔 번째 생일. 사건은 그날 벌어졌다.
아버지는 일터에, 누나와 나는 학교에 가 있었고, 집에는 어머니 혼자만 계셨다 아니 계셨어야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자유롭게 놀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누나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라면을 끓여 먹고 만화를 보며, 어머니의 빈자리를 걱정보다 즐거움으로 채웠다.


그러나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셨을 때, 즐거웠던 분위기는 달라졌다. 어머니의 부재보다 아버지가 화내실까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집 안을 둘러보다가 짧은 편지 한 장을 발견하셨다.


“나, 마흔이 된다는 게 너무 무서워. 더 이상 여자가 아닌 것 같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것 같아. 생각 정리가 되면 돌아올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줘.”


아버지는 편지를 읽고 아무 말 없이 앉아 계셨다. 누나는 걱정했지만, 나는 오히려 설렜다.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또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하는 기대감. 그러나 아버지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너희 엄마는 참 멋있는 사람이야.”
가출이 어떻게 멋있는 일일까? 어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루, 이틀, 사흘. 기대가 걱정으로 변해갈 즈음, 어머니는 돌아오셨다. 그 순간의 풍경은 지금도 선명하다. 하교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부엌에 서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 하지만 그 분위기는 이전과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따뜻한 코코아와 설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본 어머니는 오히려 나 보다도 더 들뜬 모습이었다.


“아들, 나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더라.”
초등학생이던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엄마는 나이가 드는 게 무서웠어. 어른답게 살아야 하고, 아이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멋진 어른 같지 않아서… 그래서 그냥 무작정 떠났어. 어른들에게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고 싶었거든.
그런데 사람들이 해주는 대답이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어. 나보다도 더 꽉 막힌 10대 친구들도 있었고, 나보다 더 성숙한 20, 30대도 있었고, 나보다 더 장난기 많은 50, 60대 분들도 계셨어. 그때 깨달았어. 나이가 크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나이는 답이 아니더라. 중요한 건 나의 세상, 나를 이루는 것들이었어.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한 거더라. 그러니 나이 든다고 꼭 재미없는 아줌마가 되는 건 아니었어.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였지.”


그때는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참 신나는 여행을 하고 왔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 이제 나이 드는 게 무섭지 않아. 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