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이별을 준비하며


지난달 9일, 아버지를 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진료 후에 흡인성 폐렴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숨이 다시 편해지고, 기력이 서서히 돌아올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의료진도, 주변의 내과 의사 선배도 “조금 더 지켜보자”라고 했고, 저 역시 그 말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입원한 지 한 달이 되어가며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말속에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쉽게 놓이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더 지켜보자는 말은 제 마음을 붙잡아 주는 마지막 끈 같았습니다.

아주 실낱같은 희망이었지만, 그마저도 없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다렸고, 버텼고, 하루하루 수치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분명해졌습니다.

폐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가래는 쉽게 줄지 않았습니다.

치료는 더 이상 회복을 향한 과정이라기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는 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연명치료의 국면에 들어섰다는 말을 이해하는 순간, 마음이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혹시라도 염증 수치가 의미 있게 내려가 준다면, 그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수치가 더 이상 회복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그 마지막 남아 있던 희망조차 제 손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는 느낌이었고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담당 의료진의 설명과, 여러 의사 선배들의 의견을 들으며,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은 쉽게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 내내, 혼자 있을 때 눈물이 자주 났습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크게 울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보면 눈물이 흘러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이렇게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그때마다 느꼈습니다.


지금의 저는 이별을 서두르려는 것도, 외면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으로 천천히 준비하려고 합니다.

회복을 기다리던 자리에서,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자리로 옮겨온 것뿐입니다.


아버지와의 기억은 이미 충분히 깊고, 충분히 많습니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습니다.

지금은 그 기억들을 마음에 가만히 안고,

이별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려 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마음을,

주님 안에서 하나씩 내려놓으며 버텨보려 합니다.

무엇을 더 붙잡기보다, 허락하신 시간 안에서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남은 시간을 정직하게 함께하며,

주님 품으로 잘 떠나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 시간을 지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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