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난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세상에 주어야 할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바닷물이 차오를 때와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소리만 듣고도 알아챌 수 있는 사람, 아침이 솟아오르는 소리와 밤의 어둠이 세상에 쏟아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살 뿐만이 아니라 공포를 안겨주는 회오리 바람도 찬양할 수 있는 사람, 비가 내리는 다양한 소리를 뼛속 깊이 새겨지도록 유심히 듣는 사람, 막대기와 풀로도 얼마든지 세상이 내다보이는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 진정한 집은 전부 흙으로 되어 있고 문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개가 살아있는 새끼 들쥐들을 먹더라도 가볍게 개 머리를 만져주며 판단은 스스로 내리라고 지나갈 수 있는 사람, 질주하는 개의 몸짓에서 하나의 시를 읽어내는 사람, 풀밭은 떨림조차 거의 없지만 위대한 일이 자신에게 행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 등등. 이런 사람만이 삶을 찬미할 수 있게 되는 걸까요?
2. 워즈워스의 산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그럼에도 그 억양들은 우리에게 최고의 활력소가 된다. 우리가 그것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말이다. 우주에는 빛나는 암시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을 걷는다고 말하는 시인.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무수한 걸음, '무엇을 위해서였나'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시인의 문장을 읽고서야 내가 걸어야 할 이유는 오직 하나,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에 가 닿아 봅니다.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우주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암시하고 있다는데 얼마나 찾아내고 있을 지 저 자신도 궁금합니다. 오늘 하루는 어떤 경이로움에 사로 잡혀볼까요? 가을날이라 퍽 쉬울 듯 합니다. 암시가 아니라 드러내놓고 사실적인 빛깔로 외치고 있어서 바로 "너!"라고 콕 찝어 볼 수 있겠네요.
3.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들
"나는 가치 있는 일을 시작할 때마다 에머슨을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수준 이하의 상태에 있을 때도 그는 내 곁에서 자애롭고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나를 바로잡아준다."
시인은 랠프 월도 에머슨과 너새니얼 호손을 존경하나 봅니다.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두 사람을 깊이 언급하는 건 그녀가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서겠지요. 에머슨을 알지 못했다면 문학적, 사색적, 감정적, 공명적인 부분에서 자기 삶의 궁핍은 100가지도 넘을 거라는 그녀의 말에 부러움이 생깁니다. 어쩌면 나는 한 가지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지 않을까요? 대학교까지 공부도 했고 책도 읽어가려고 하지만 한 작가의 세계도 깊이 공명하지 못 하고 나무 한 그루에서도 공명하지 못 하는 그런 삶, 삶의 진수에 가닿지도 못 하고 이리저리 휘젓고만 있지 않은지 걱정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삶은 부요물들이 떠올라 엉키고 썩어서 고요하고 깨끗할 틈이 없을 거 같은데요. 하루에 한번쯤은 깊이, 오랫동안 잠잠해져야 할까 봅니다.
"그는 부와 권력을 쥐고 있지만 고차원의 세계에서는 가족으로부터, 우정으로부터, 사랑으로부터, 진정한 노동으로부터, 삶을 원만하고 빛나게 만들어주는 모든 것들로부터 추방되어 떨고 있는 부랑자일 뿐이다. 온종일 돈과 만찬, 악의와 자만에 대해 생각한다고 상상해보라!"
사악한 사람의 행위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강탈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친절한 행위는 그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영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반대로 생각해 봐도 될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사악할 때와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할 때의 삶의 지도는 너무나 달라지네요. 생각을 재배치하며 잘 살아야겠어요.
4. 먼지
"나는 기쁨과 생산적인 찬미로 나를 가득 채웠던 사건, 시간, 생물체들을 100가지 쯤 댈 수 있다. 체험! 신비! 비, 나무들, 그런 모든 것들과의 체험은 내게 위안과 겸허함, 세상의 모든 산에 묻힌 모든 금과도 바꿀 수 없는 일체감을 가져다 주었다. ...세상이 제공하는 그런 아름다움에는 위대한 의미가 있으리란 신념, 그리하여 나는 세상이 사실적일 뿐 아니라 상징적이기도 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우주의 주파수에 내 마음의 주파수가 맞추어져야 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거 같아요. 슬픔과 고통을 거쳐서 존재의 진정한 기쁨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는 그대들. 그들은 우주와 주파수를 저절로 맞추며 지낼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한 최고의 가능성들과 우리의 창으로 보이는 경치의 관계를 충분히 소중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풍경 사진을 찍으며 생각해 봐요. 우주가 내게 건네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뭘지, 참 이상하죠? 내가 풍경을 봐 주는 게 아니라 풍경이 나를 보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는 사실을 상상해 보세요! 가을날은 왜 더 부지런히 걸어야 할 지 답이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