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기념공
간만에 보는 공연에 기대감이 앞섰다. 지난해는 한주에 하나씩 공연을 보는게 작은 취미였는데 일이 바빠지면서 한동안 뮤지컬을 본 기억이 없다. 평일이지만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혜화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친숙한 대학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날씨에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도 많아진 듯 보였다. 나 역시 혜화역 인근 스타벅스에서 지인을 만났다. 직장인 극단에 다닐만큼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최근 퇴근 후 뮤지컬 연습을 한다고 했다.
공연 전 먹을 밥집을 찾느라 잠시 걷는 동안 도란도란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별 이야기 아니었지만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기분을 환기하는 시간이 간만이라 반가웠다.
일이 바쁜 와중에도 거리에 나와보면 다가오는 계절의 온도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뛰어나지 않은 실력이어도 마음을 모아 좋아하는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고, 얼마 없는 시간을 쪼개 하고싶은 일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새삼스레 퇴근 이후의 삶을 돌아본다. 공연을 보는 일에는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과 공연장을 오가며 발생하는 여러 이벤트까지 포함돼있는게 아닐까. 밥을 먹은 후 기대감을 안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대학로 우리카드홀에서는 지난 1월 30일부터 오는 4월 26일까지 은밀하게 위대하게 10주년 기념 뮤지컬이 열리고 있다. 원작 웹툰이 2010년부터 2011년에 다음에서 연재됐던 이력이 있다.
김수현 배우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판도 2013년 6월에 개봉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3년 후인 2016년 뮤지컬이 초연돼고 점차 그 규모를 키워오더니 이번에는 기존과 비교대 비교적 큰 공연장에서 기념 공연이 진행중이다.
필자는 원작의 팬으로써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까지 재밌게 봤던 장면들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북한의 비밀 특수부대인 5446의 요원들이 남한에 내려와 임무를 수행하며 겪는 일상의 에피소드들. 점차 심화되는 갈등과 액션 등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동네바보 역할을 연기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원류환과 그를 따라 달동네에 파견받은 리해랑, 리해진 등이 함께 등장한다. 일상물의 코믹한 분위기와 작품 후반부에 발생하는 사건들로 인한 진지한 모습과의 간격이 관객들로 하여금 극적인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이번 뮤지컬에서 그런 모습들이 제대로 표현됐는지는 아쉬움이 남았다. 작품이 가진 매력의 특성 상 앞부분과 뒷부분의 간극이 클수록 그 효과가 극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극적으로 큰 분위기의 격차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웹툰 특유의 코믹함, 영화 특유의 편집을 통해 살릴 수 있는 요소들을 현장에서 직접 연기해서 표현하려니 어색한 부분도 있었다. 작품이 만들어진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보니 기존 작에서 느꼈던 요소들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들도 함께 보기 좋은 가족 뮤지컬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면 뮤지컬의 특성에 맞춰 연출을 조금 더 다듬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작품을 초기부터 관람했던 입장에서는 작품의 내용을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인물들의 감정 표현에 있어서 빈공간도 있어보였다. 인물의 서사와 매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연출의 고민이 더해지면 좋지 않을까 싶다. 스토리 구조 상 액션신이 상당히 많은데 이 역시 공연 현장에서 극적으로 표현되기에는 제약이 있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찾아온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반가운 작품이었다. 오래전에 세상에 나왔던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며 관객들에게 소비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었다. 학생 때부터 봐왔던 작품을 뮤지컬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다만 작품이 탄생한 후 시간이 지난만큼 현대적인 요소에 맞게 표현 방식에 발전을 거듭하면 앞으로도 볼만한 작품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그간 작은 공연장 위주로 극이 진행돼왔던 만큼 변화된 크기의 공연장에서도 그 매력을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음향이나 연기도 보강이 되면 좋을 듯하다.
흔히들 오랜 역사를 가지고도 지속적으로 관객들에게 소비되는 작품을 고전이라 부른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고전으로 남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한국적인 정서과 특수한 환경을 담아낸 작품들이 오래오래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10주년 기념공연이라는 말은 1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작품이라는 점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 10년동안 달라진 시대와 관객의 수준에 맞춰 설득할 수 있는 작품을 내놔야한다는 뜻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