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인 내가 130만 원 내고 PT를 시작했다
작년 연말 수습 기간 3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퇴사했다. 퇴사 과정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고 이미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퇴사 이후 백수로 지내며 취업 준비를 하는데도 초조하고 불안했다. 또 실패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시달리며 점점 우울해지던 찰나, 어느새 그냥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확실히 그때 나는 죽고 싶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영상을 찾아보다가 내가 극심한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덜 아프게 죽을까 생각했지만, 내가 죽으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놀라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결국, 죽음은 보류하기로 했다.
일단 살아있기라도 해야 죽을 생각을 그만둘 것 같았다. 하지만 매일 아침 눈만 뜨면 죽을 생각만 했기에 조금이라도 덜 생각하고 싶었다. 그나마 몸을 움직이고 있으면 조금 나았다. 그러다 운동을 떠올렸다. 몸을 힘들게 하면 효과가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우울증에 운동이 좋다는 말을 수없이 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울증의 짝꿍인 무기력증도 심했기에 강제성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PT를 끊어볼까.
PT는 이미 여러 번 해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다이어트 목적이었고 딱히 의미를 찾으려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살고 싶어서 PT를 받기로 했다.
집 가까이 PT샵이 있었다. 처음 뵙는 트레이너 선생님은 나보다 훨씬 어린 20대 후반이었다. 열정 어린 눈빛과 신뢰가 가는 말투에 홀린 듯이 그의 말에 경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바디로 내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역대 최고치 몸무게였다. 처음에는 10회만 끊으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20회의 PT를 13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끊었다. 백수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혹시 내가 화려한 언변에 놀아나 쓸데없는 낭비를 한 것은 아닐까. 기껏해야 죽을 생각 좀 덜 하려고 시작한 운동인데. 그래도 큰돈을 들였으니 아까워서라도 PT 받는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억지로라도 살아있겠지. 복잡한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운동의 가치를 모르고 어쭙잖게 이용할 생각만 했으니, PT 선생님께 참 죄송한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인생 수업이 될 PT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