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이해받을 수 있다는 위로
"저희 아이는 영어를 전혀 못하고 자폐성 장애가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도 요리랑 만들기 수업을 무척 좋아해서 세부에서도 경험해보고 싶은데요. 저희 아들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괜찮으시면 가장 한가한 시간에 방문할게요"
막탄에는 아이를 돌봐주는 시터 시스템도 잘 되어있고, 다양한 키즈클럽이 있다. 아이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다 보니 지금까지 여행을 가서 아이와 떨어져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요리나 만들기는 1:1 수업이고, 센터에서 하는 것이니 한국과 비슷한 환경이고 혼자서도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연락을 했다.
'어차피 그동안 한국어 잘 못해도 수업을 들었는데 영어 못해도 눈치로 하면 다 통하지 뭐. 빵 만드는 방법이 다른 것도 아닌데...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용기를 내어 연락을 하면서도 거절당하지 않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이 가장 적은 시간에 참여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죄송하지만 안 될 것 같다는 거절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여전히 그 순간은 아프니까.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아무런 도전이나 시도를 하지 않고 원망하거나 아쉬워만 하는 것은 더 후회가 남으니까 늘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으면 걱정보다 행동을 먼저 하게 된다.
“네, 물론 가능하죠. 그럼 좀 더 경험이 많은 선생님을 배정해 드릴게요. 걱정 말고 오세요~”
너무도 쉽고 빠르게 걱정하지 말고 오라는 대답을 들으니 체증이 가신 듯 마음이 후련해졌다.
단단한 척하며 살아왔지만,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든 칼 같은 거절이든 아이가 클수록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보니, 그 상처가 차곡차곡 쌓였나 보다. 들뜬 마음에 서둘러 채비를 하고 키즈클럽으로 향했다.
“이제 준영이가 좋아하는 쿠키랑 케이크 만들러 갈 거야. 오늘은 엄마랑 같이 안 하고 준영이랑 선생님이랑 둘이 만드는 거야”
아이는 쿨하게 엄마, 아빠랑 헤어지고 요리수업을 들어갔고, 여행지에서 처음으로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 우리는 천천히 차를 마시며 오후를 보냈다.
수업이 끝날 시간에 가보니 퍼즐을 맞추고 있던 아이는 선생님이랑 만든 케이크를 예쁘게 포장해서 들고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달콤한 초코 케이크라니!
낯선 환경이었을 텐데 잘 적응하고 참여해서 케이크를 만들어온 아이가 대견했다.
평소 요리하기를 즐거워하는 아이가 또 만들겠다고 해서 이번에는 2가지 클래스를 예약했다.
이 때도 나는 혹시 첫날은 모르고 받아줬지만, 아이가 중증이라 두 번째는 안 된다고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얼마나 깊은 세상에 대한 경계심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스스로 놀라웠다.
하지만 이런 내 걱정이 무색할 만큼 선생님과 아이는 활짝 웃으며 우쿨렐레를 만들고, 머핀을 만들어 왔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티셔츠 만들기까지 했다며 I LOVE CEBU 스탠실이 찍힌 하얀 티셔츠를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해 주셨다.
다른 키즈클럽은 어떨까? 우리가 받아들여질까? 운동을 할 수 있는 다른 키즈클럽에도 전화를 해 보니 괜찮다고 오라고 해서 새로운 곳을 방문했고 그곳에서는 남자 선생님과 축구도 하고 쿠키도 만들었다.
물론 수입을 올려주는 관광객이다 보니 더 친절하게 대했겠지만, 여느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 경험이 얼마만인지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세상과 단절되어 우리만의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있으니 비용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로 낑겨가는 느낌이 아니라
“장애가 있다고? 그게 뭐 어때서?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나는 또 나아갈 힘을 얻었다.
물론 불편한 분들이 있겠지만 아이가 사회 경험과 매너를 익힐 수 있도록 더 부지런히 세상 밖으로 나와아겠다.
우리 더 즐겁게 세상 속으로 스며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