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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Dec 22. 2021

매일의 동화 7

'사랑해'를 찾는 아이

 “우리 딸 사랑해!”

 내가 막 눈곱을 떼고 거실로 나왔을 때였어요. 엄마는 급하게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서며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지요.

 나는 왼손으로 눈을 비비고 오른손으로 손 인사를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말한 ‘사랑해’가 갑자기 인사를 하던 내 손에 튕겨 급하게 나가는 엄마와 같이 현관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재빨리 현관문을 열어보았지만 엄마도 ‘사랑해’도 사라지고 난 후였어요.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에요. 한 번도 사랑해가 저렇게 튕겨 나간 적이 없었거든요. 나는 주방에서 식탁을 정리하고 있던 외할머니에게 달려갔어요.

 “에휴, 밥 좀 먹고 가라니까.”

 식탁에는 엄마가 손도 못된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뉘어 있었어요.

 “할머니, 할머니!”

 “나래 일어났니?”

 “사랑해가 도망갔어. 엄마의 사랑해가 말이야!”

 할머니는 조금 놀라는 듯하더니 코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흐흠, 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테니까.”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식탁에 내 숟가락과 내 젓가락을 뉘어 놓았어요.

 “언제 돌아오는데? 응?”

 “그건 나도 모르지!”

 나는 애가 타는데 할머니는 전혀 그렇지 않은가 봐요.

 “얼른 먹고 유치원 갈 준비 해야지.”

 할머니는 내가 유치원 버스를 놓치는 게 더 걱정이 되는 것 같았어요.

 ‘사랑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할머니는 몰라요.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의 ‘사랑해’를 꺼내보는지 안다면 할머니는 절대로 저렇게 느긋하지 못할 거예요.

 유치원 버스를 탈 때 다른 친구들의 엄마가 손을 흔들어 줄 때마다 난 엄마의 ‘사랑해’를 꺼내보아요. 간식을 먹을 때도 점심을 먹을 때도 ‘사랑해’를 꺼내보지요. 친구들이 엄마 손을 잡고 일찍 하원할 때도 ‘사랑해’를 꺼내보고요 엄마가 늦어 할머니와 잠이 들 때도 엄마의 ‘사랑해’를 슬며시 꺼내보며 잠이 들어요.

 그런데 오늘 사랑해가 없다니……. 난 하루 종일 슬프거나 기운이 쭉 빠져 있을 것만 같았어요.

 지금 당장 아침밥을 먹는데도 엄마의 ‘사랑해’가 없으니까 밥맛이 하나도 없어요. 

 “할머니, 나 유치원 안 갈래!”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어요.

 “왜?”

 “엄마의 ‘사랑해’가 없잖아. 그래서 가기 싫어!”

 나는 최대한 입을 내밀고 눈물을 글썽거렸어요. 이렇게 하면 할머니는 내 말을 거의 들어주거든요.

 “할머니가 줄게. 유치원 가자. 응?”

 “싫어! 엄마의 ‘사랑해’가 아니면 절대 안 가.”

 나는 팔짱을 끼고 입을 더 내밀었어요. 내가 정말로 하기 싫을 때 나오는 행동이에요.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어요.

 “그래, 그럼 이 밥 다 먹으면 할머니랑 ‘사랑해’ 찾으러 가자.”

 “야호! 진짜지?”

 나는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을 단숨에 먹어치웠어요. 양치를 하고 원복이 아닌 엄마가 사준 모자 달린 분홍색 원피스를 입었어요. 엄마는 이 원피스를 사주면서 아주 귀엽다고 칭찬을 했었어요.

 할머니와 손을 잡고 집을 나섰어요.

 “할머니, 그런데 사랑해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금세 대답해 주었어요.

 “그래, 알 것 같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어요. 할머니의 손은 거칠지만 참 따뜻했어요.

 버스정류소에 기다리다 파란색 버스를 탔어요.

 “할머니, 버스에 ‘사랑해’가 있어?”

 “글쎄…….”

 유치원 버스 말고 일반 버스는 처음 타보았는데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언니 오빠들도 있고 아줌마 아저씨들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어요. 다들 조용히 창밖을 보거나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엄마의 ‘사랑해’는 보이지 않았어요.

 “안녕하세요!”

 하얀색 장갑을 낀 기사 아저씨께 인사하니 아저씨가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해주었어요.

 “안녕, 꼬마 아가씨가 할머니와 어디를 갈까?”

 “엄마의 ‘사랑해!’를 찾으러 가요!”

 내가 크게 대답하자 차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어요.

 “허허허, 꼭 찾으면 좋겠구나!”

 아저씨는 기분 좋은 웃음으로 나를 응원해 주었어요. 붙어 있는 의자 두 개위에 할머니와 나란히 앉았어요.

 버스는 조금 흔들거렸지만 꽤 재미있었어요. 사람들이 벨을 누르면 아저씨가 정류장에서 버스를 멈추었고 헌 사람들이 내리면 새 사람들이 탔어요. 

 “할머니 아직 멀었어?”

 “응 조금만 가면 돼.”

 “또 조금 만이야. 아까도 조금만이라면서!”

 “이번엔 진짜 조금 만이야.”

 “그럼 내가 벨 눌러도 돼?”

 “그래, 할머니가 알려 줄 때까지 기다려.”

 나는 할머니 입에서 지금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렸어요.

 “지금이야!”

 할머니가 나에게 신호를 보냈어요. 재빨리 손을 뻗어 벨을 누르려고 했는데 내 앞에 있던 아줌마가 먼저 벨을 눌러버렸어요.

 “으잉, 저 아줌마가 벨을 눌렀어.”

 나는 할머니에게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어요.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어요.

 “이따가 집에 갈 때 다시 도전해봐.”

 할머니는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내 손을 꼭 잡고 버스에서 내렸어요.

커다랗고 높은 건물이 여기저기 있는 곳이었어요.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두리번거리며 건물 사이를 걸어갔어요.

 “할머니 여기에 ‘사랑해’가 있어?”

 “글쎄…….”

 하지만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랑해’는 보이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SLK 통신회사’라는 큰 건물 앞에 멈췄어요.

 “할머니 여기에 ‘사랑해'가 있어?”

 “글쎄…….”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내’라는 글자 앞에 서 있던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어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우리 엄마의 ‘사랑해’를 찾으러 왔어요.”

 내가 큰 목소리로 말하자 아저씨가 허리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 아주 중요한 것을 찾으러 왔구나. 하지만 그건 아저씨가 도와줄 수 없겠는데.”

 그러자 할머니가 아저씨에게 엄마 이름을 이야기했어요.

 “00 부서의 김예진 씨 가족인데요.”

 할머니와 나는 안내 글자 앞에 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았어요. 할머니의 손은 약간 축축해졌어요. 할머니는 피곤해 보였죠. 사실 나도 조금 힘들었어요.

 바닥에 있는 무늬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래야!”

 “엄마!”

 엄마가 나에게 달려오고 나도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엄마는 나를 꼭 않아 주었어요.

 “무슨 일이야? 회사까지 찾아오고! 엄마 놀랬잖아.”

 “엄마의 ‘사랑해’를 잃어버렸어. 아까 엄마랑 같이 문밖으로 나갔는데 찾을 수가 없었어.”

 엄마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미안, 엄마가 급하게 나가느라 ‘사랑해’가 따라 나오는 줄도 몰랐네. 우리 나래 사랑해.”

그러자 엄마의 사랑해가 내 품속으로 쏙 들어왔어요. 가슴이 따뜻해지고 힘이 불끈 솟았어요. 얼굴에는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지요.

 엄마는 할머니의 손도 잡았어요.

 “엄마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같이 밥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회사일이 바빠서…….”

 “괜찮다. 우리 이제 돌아갈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들어가.”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어요. 엄마에게도 ‘사랑해’가 필요할 것 같았어요.

 “엄마, 사랑해! 이따가 봐.”

 그러자 엄마가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 우리 딸 사랑한다.”

 할머니도 엄마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어요. 엄마는 더 크게 미소를 지었어요.

 엄마는 진짜 좋겠어요! 내 ‘사랑해’도 있고 할머니 ‘사랑해’도 있으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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