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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Dec 26. 2021

매일의 동화 9

밤도깨비와 아빠

어느 날부터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그거 알아? 밤도깨비가 나타난데, 밤도깨비!”

 “밤도깨비 같은 소리. 진짜 도깨비가 진짜 어디 있어? 다 지어낸 이야기야.”

 “진짜야, 옆 반 진서도 만났데.”

 “정말?”

 밤도깨비는 밤에 나타나 아이들을 계속 괴롭힌데. 그러다 아이들이 지치면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뽑아서 도망을 간다는 거야. 머리카락을 뽑힌 아이는 깜빡 병에 걸려서 하루 종일 헤매고 다닌데. 예를 들어 실내화를 잃어버린다거나, 수학 시간에 국어책을 꺼내 논다던가, 화장실 가는 길을 못 찾기도 한데! 아주 고약한 일이지.

 처음엔 누가 엉뚱한 소문을 낸 거라고 생각했어. 학교에선 종종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거든. 

 하지만 소문은 점점 퍼져 나가고 모두 다 그 소문을 다 알게 되었어. 선생님까지도 말이야. 

 “이 녀석들, 밤에 게임하지 말고 일찍 자라. 밤도깨비가 나타날지 모르니.”

 친구들은 밤도깨비가 나타날까 걱정을 했어. 가끔 제발 나타나 달라고 장난치는 친구들도 있었지.

 하지만 난 밤도깨비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왜냐고? 난 이미 잠을 못 자고 있거든.

 그건 바로, 우리 아빠 때문이야!

 이건 비밀인데 난 요즘 아빠가 정말 싫어. 내가 처음부터 아빠를 싫어했냐고? 아니! 난 아빠를 무척 좋아했어. 아침에 출근하는 아빠에게 매달려 운 적도 있고 아빠의 퇴근시간을 매일 기다리기도 했어. 그리고 아빠의 말이라면 밤하늘에 달을 따러 간다고 해도 철석같이 믿었지.

 그런데 지금은 아빠에 대한 미움이 마음속에 가득 찼어. 누군가 나를 욕할지도 몰라. 어떻게 자기 아빠를 싫어할 수가 있어? 하지만 나한테는 이유가 있어. 

 먼저 아빠 얼굴을 마주칠 때가 별로 없어. 회사를 옮긴 후부터야. 회사에서 늦게 끝나기도 하지만 또 일찍 끝난다고 해도 회식 아니면 축구를 하러 가. 그리고 주말에는 소파에 눕기 바쁘거든. 엄마가 오죽하면 소파 늘보(소파와 나무늘보를 합친 말)라고 했을까?

 소파에 누워서 스마트폰은 잘도 보면서 나와 동생이 하는 말에는 짧게 대답만 해. 그리고 더 어이없는 건 우리는 스마트폰도 못하게 해.

 “너희는 스마트폰보다 책을 볼 나이야.”

 아빠는 씻는 것도 엄청 싫어한다! 술 먹고 온 날은 씻지도 않고 강제로 뽀뽀까지 하려고 해. 술 냄새 음식 냄새 땀 냄새가 합쳐져서 정말 최악의 냄새가 나.

 반찬투정은 또 얼마나 심한데. 식탁에 좋아하는 반찬이 없다고 엄마한테 툴툴거리다 핀잔 듣기 일쑤야. 그건 나도 안 하는 행동인데 말이야.

 그리고 아무데서나 방귀도 뀌어. 밥을 먹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나 차 안에서나 심지어 잘 때도 수시로 뀌어. 소리도 크고 냄새도 얼마나 고약한지.

 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바로 아빠의 코 고는 소리야!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니? 아니면 공사장의 커다란 드릴 같은 기계 소리는? 그러데 아빠의 코 고는 소리는 그것보다 훨씬 더 커!

 이런 말 하긴 좀 부끄럽지만 난 아직 엄마와 동생 그리고 아빠와 함께 자거든. 겁쟁이라고 놀려도 어쩔 수 없어. 난 정말 깜깜한 밤이 무서워. 불이 꺼지고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뭐가 나타날지 수많은 상상을 하게 돼. 괴물이나 귀신이 나타나면 어떡해. 그리고 가끔 이상한 소리도 들리는데 그때마다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리는데. 

 엄마는 나와 동생 사이에 누우면서 항상 이런 말을 해.

 “아휴, 이제 좁다. 너희들 언제쯤이면 혼자 잘 거니?”

 엄마한테 미안하지만 난 당분간은 절대로 혼자 잘 생각이 없어. 푹 자야 쑥쑥 큰다고 하잖아. 내가 쑥쑥 크기 위해서도 말이야.

 아무튼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안방에서 자는데 나의 단잠을 방해하는 일이 발생해. 내가 아빠보다 먼저 자면 상관없지만 혹시라도 늦게 자는 날이면, 영락없이 아빠의 코 고는 소리를 들어야 하거든.

 “드르렁 쿨 드르렁 쿨 드르렁 쿨 드으으렁 쿨.”

 그 소리는 처음엔 작았다가 점점 커져. 그러다 이상한 소리로 코를 골아.

 “크르르 쿨 크르르 쿨 크르르르 쿨 크으으으렁 쿨.”

 아휴, 얼마나 시끄러운지 귀가 다 아플 지경이야. 마치 커다란 오토바이 수십 대가 내 귀를 지나가는 것 같아.

 더군다나 아빠가 술이라도 먹고 온 날이면 방안에 술 냄새와 함께 아빠의 코 고는 엄청 크게 들려. 아파트라서 다행이지 지붕이 있었다면 벌써 날아갔을 거야. 그리고 가끔은 코를 골다가,

 “드르렁 쿨쿨, 드으으으으으으으으…….”

 숨을 안 쉴 때도 있어. 그러면 엄마는 놀래서 아빠를 툭툭 쳐.

 “하아 푸, 드르렁 쿨 드르렁 쿨.”

 아빠는 아주 큰 숨을 내쉬며 다시 코를 골기 시작해. 아휴, 그럴 때마다 내 심장이 쫄깃쫄깃 해진다니까.

 아빠를 깨워보지 그랬냐고? 여러 번 깨웠었지. 엄마도 나도 번갈아 가면서 말이야. 그래도 그때뿐이야. 아빠는 눈만 감으면 바로 코를 골거든.

 아빠가 가끔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잠드는 날이 있어. 그러면 난 엄마에게 살며시 얘기하곤 해.

 “엄마, 아빠 소파에서 잠들게 두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자.”

 아무튼 난 요즘 아빠가 너무 싫어. 특히나 코 고는 소리는 더, 더, 더 싫어!

 짝꿍인 지유가 빈 가방을 들고 왔어. 지유는 학교의 독서 왕이야. 그래서 반납하는 날은 꼭 지키거든. 그런데 지유가 책을 안 가지고 온 거야. 내가 다시 빌리기로 한 책인데.

 “왜 안 갖고 왔어?”

 “응? 뭐?”

 지유는 고개를 갸우뚱했어. 

 “매직 탐정 책, 너 반납하고 내가 다시 빌리기로 했잖아.”

 “내가 책을 빌렸다고?”

 “응, 엊그제 같이 빌렸잖아.”

 지유는 가방을 뒤적이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

 “어젯밤 밤도깨비를 만난 게 꿈이 아니었나 봐. 나 책에 대해서 아무 기억도 안나.”

 지유는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진짜 밤도깨비를 만난 거야?”

 지유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나에게 이야기해주었어.

 자기 전 몰래 뉴트버 영상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자기를 툭툭 쳤데. 놀라서 쳐다보니 밤도깨비가 나타났다는 거야. 자그마한 방망이를 휘두르며 이런 말을 했데.

 “나랑 같이 게임하지 않을래?”

 지유가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데. 

 “크크크, 나랑 게임하면 말하게 해 줄게.”

 그래서 지유는 밤새 게임을 했다는 거야. 새벽까지 쭉. 날이 밝아오고 지유가 지쳐 자리에 주저앉았을 때 밤도깨비는 머리카락 한 개를 쏙 뽑더니 사라졌데. 

 “밤도깨비한테 당했어. 난 오늘 하루 엉망일 거야.”

 지유는 크게 걱정을 했어. 나는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지. 그런데 지유의 하루는 정말 엉망이었어. 

 국어시간에 45페이지를 읽어야 하는데 지유 혼자 54페이지를 읽었어. 점심시간엔 급식실 대신 체육실로 가서 줄넘기를 하고 화장실을 못 찾아서 보건실까지 갔어. 내가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지유는, 바지에 오줌을 쌌을지도 몰라. 

 “흥, 밤도깨비 따위가 뭐라고. 나한테 오기만 해 봐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척 걱정되었어. 밤도깨비가 절대로 우리 집에 오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지.

 저녁이 되었어.

 “아휴, 아빠는 또 회식이란다.”

 엄마는 저녁을 먹으면서 한숨을 쉬었어. 

 “아빠 오늘 늦게 오는 거야?”

 “그러지 않을까? 새벽에나 올 것 같아.”

 “앗싸!”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어.

 “뭐? 너는 아빠가 늦게 오는데 앗싸가 뭐니?”

 엄마가 눈을 살짝 흘겼지만 뭐 어때. 오늘은 아빠의 코 고는 소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편안하게 잠자리에 누웠어. 앗, 그런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어. 아빠가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거야. 여기저기 부딪히고 술에 취한 목소리로 크게 우리를 불렀어.

 “여보! 예민아, 정민아!”

 엄마는 이불을 걷어차고 거실로 나갔어.

 “아휴, 또 잔뜩 마시고 왔네. 빨리 들어가서 씻어요.”

 “아, 씻긴 뭘 씻어. 내가 얼마나 깨끗한데.”

 아빠는 우리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왔어. 동생은 이미 잠들어 있었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어. 

 “내 애들하고 자야지.”

 일부러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 얼굴을 내밀었다면 아마 무지막지한 뽀뽀를 받을지도 몰라.

 “아, 애들 자요. 빨리 잠이나 자요.”

 엄마는 우리 위로 쓰러진 아빠를 구석으로 밀었어. 이럴 때 보면 엄마는 천하장사 같아. 아빠의 무거운 몸을 잘도 움직이거든.

 아빠는 그대로 밀려서 잠이 들었어.

 “어휴.”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 이불에 누웠어. 얼마나 지났을까.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어. 오늘도 일찍 자긴 그른 것 같았어.

 나는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꺼냈어. 이번 생일에 조르고 졸라서 받은 거야.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늦게 잘 바에 게임이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았거든. 나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트롤 워’ 게임을 시작했어. 

 한창 게임에 집중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머리를 툭툭 치는 거야. 처음엔 잘 몰랐어. 그런데 이번엔 더 세 개 내 머리를 쳤어. 등골이 서늘해지고 손이 떨렸어. 살며시 고개를 들었는데 글쎄 내 옆에 누군가 앉아 있는 거야!

 그건 바로 밤도깨비였어. 지유가 말한 그 모습으로 말이야. 강아지보다 크고 동생보다 작은 체격에 몸에는 이상한 천 하나를 두르고 머리엔 작은 뿔이 달려있었어. 그리고 손에는 울퉁불퉁한 나무 방망이가 들려있었는데 크진 않지만 단단해 보였어.

 나는 소리를 질렀어. 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 거야! 

 밤도깨비는 나를 비웃으며 방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어.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지.

 그때 밤도깨비의 시선이 내 손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향했어. 

 “너 게임하고 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럴 줄 알았어. 요즘은 밤에 게임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내가 심심하지 않단 말이야. 큭큭큭 ”

 밤도깨비는 무척 신나 보였어.

 “나랑 게임하자. 나 제법 잘해.”

 나는 고개를 저었어. 지유가 하루 종일 넋이 나간 게 생각났거든.

 “흥, 그래도 해야 할걸.”

 나는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고 했어.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 마치 스마트폰이 내 손에 붙어 버린 것 같았어. 

 “넌 그냥 손만 움직여. 내가 조정할 테니까.”

 밤도깨비는 방망이를 허공에 대고 휙 움직였어. 그러자 내 손이 마음대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어!

 “그래, 그래, 에잇! 더 빠르게 잡았어야지.”

 밤도깨비는 신이 난 듯 내 스마트폰을 보면서 게임을 구경, 아니 조정하고 있었어.

 그때였어. 

 “드르렁 쿨”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어. 밤도깨비가 움찔했어.

 “드으으렁 쿨, 드으으렁 쿨, 드으으으으렁 쿨.”

 아빠의 코 고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니 오토바이 소리가 되었어. 

“크으으렁 쿨. 크으으렁 쿨. 크으으렁 쿨! 크으으렁 쿨.”

“악, 이건 ‘피곤해’ 코골이야!”

 밤도깨비가 얼굴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어.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어. 마치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 같았어.

“두두두두두 쿨, 두두두두두 쿨.”

“악! 이건 ‘힘들어’ 코골이잖아! 에잇, 안 되겠다.”

 밤도깨비는 아빠에게 다가가 방망이를 휘두르려 했어. 

 ‘아빠, 조심해요!’

 소리치고 싶었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그때 아빠가 몸을 돌리더니 요란한 소리로 방귀를 뀌는 거야!

 “뿌앙! 뿡뿡뿡! 뿌앙!”

 그것도 밤도깨비의 얼굴에 정면으로 뀌었어.

 “으악! 이건 ‘스트레스 발사’ 방귀야!”

 밤도깨비는 코를 막았어. 아빠의 방귀 폭탄을 직격으로 맞다니, 밤도깨비가 불쌍할 정도였지.

 “드르렁 쿨 드르렁 쿨 드으으렁 쿨.”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다시 들리더니

 “드…….”

 또 멈추는 거야. 밤도깨비가 뒷걸음쳤지. 엄마는 무의식적으로 아빠를 툭 쳤어.

 “하아 푸!”

 아빠의 입김이 밤도깨비의 얼굴에 닿았어.

 “웁! 이건 ‘눈치코치 술 냄새’잖아!”

 밤도깨비는 뒤로 나자빠졌어. 코 고는 소리, 방귀, 술 냄새를 동시에 맞은 밤도깨비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어.

 “으앙, 도저히 안 되겠다.”

 밤도깨비는 주문을 외우더니 ‘뿅’ 하고 사라져 버렸어.

 “아휴, 다행이다.”

 다행히 목소리가 다시 나왔어. 이건 분명히 꿈이 아니야. 

 밤도깨비가 사라진 방안은 아빠의 코 고는 소리와 술 냄새만 가득했지. 

 “드르렁 쿨, 드르렁 쿨, 드으으렁 쿨.”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줄어드는 것 같더니 다시 커지기 시작했어. 

 “크르렁 쿨, 크르렁 쿨, 크으으으렁 쿨.”

 하지만 평소처럼 짜증이 나지 않았어. 오히려 자장가처럼 잠이 솔솔 왔지.

 아빠는 참 대단해! 밤도깨비를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물리치다니.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꼭 알려줄 거야. 밤도깨비가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말이야. 

 당분간 아빠의 코 고는 소리를 참아봐야겠어. 시끄럽지만 뭐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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