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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Dec 28. 2021

매일의 동화 10

나를 도와줘!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막 멀티탭에 핸드폰 충전기를 꽂을 때였죠.

 “펑!”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났어요. 그리고 그 애가 나타난 거예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주황색 티셔츠와 남색 바지를 입은 아이는 짧게 자른 머리가 시원해 보였어요.

 “누, 누구야?”

 그 애는 내 질문엔 대답도 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두꺼운 검정 장갑을 꺼내어 낀 뒤 핸드폰 충전기를 빼내었어요.

 “이거 안 보여? 

 충전기는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어요.

 “헉, 이게 왜 이렇게 됐지?”

 “쯧쯧, 멀티탭이 꽉 차있는데 여기에 휴대폰 충전기를 꽂으면 어떻게 해?”

 3구짜리 멀티탭에는 디지털 피아노 코드와 무선청소기 코드가 단단히 박혀 있었어요.

 “이게 왜? 항상 이랬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어요. 그 애는 가슴을 치며 답답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어요.

 “아휴, 10살이나 되었는데 이렇게 엉망이라니.”

 “흥!”

 자존심이 상한 나는 그 애를 쳐다보지 않고 스마트폰 게임을 했어요. 그 애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게임을 구경했어요.

 “재미있어?”

 “너도 폰 게임 해?”

 “아니.”

 “왜?”

 “엄마가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았거든.”

 그렇게 말하는 그 애의 눈이 슬퍼 보였어요.

 나는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샀어요. 엄마가 회사에 다녀서 나랑 연락할게 필요했거든요. 스마트폰을 사면 집에 혼자서 잘 있겠다고 약속도 했고요!

 나는 그 애에게 가장 좋아하는 폰 게임을 알려주었어요. 요즘 한참 유행하는 게임인데 빠른 음악에 박자를 맞추어 화살표를 누르는 게임이에요. 그 애는 금방 게임을 익혔어요. 

 우리는 신이 나서 한참을 같이 게임했어요. 그래서인지 배가 고파졌어요. 그제야 아까 하굣길에 사 온 소떡소떡이 생각났어요. 소떡소떡은 은박호일에 쌓인 채 식탁에 고스란히 놓여있었어요.

 “식었네.”

 나는 식탁에 있는 소떡소떡을 전자레인지에 넣었어요. 막 버튼을 누르려는데 그 아이가 소리치며 달려왔어요.

 “안 돼!”

 그리고 재빨리 전자레인지의 전원 버튼을 껐어요.

 “호일을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어떻게 해? 불이 나면 어쩌려고!”

 “불?”

 “그래, 호일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불이 난다고.”

 그러고 보니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했던 것 같기도 해요. 나는 접시에 소떡소떡을 옮겨 전자레인지에 넣었어요. 조리 버튼을 누르자 금세 맛있는 냄새가 풍겼어요.

 나는 그 애와 함께 소떡소떡을 맛있게 나누어 먹었어요. 

 “그런데 너는 불에 대해 어떻게 잘 알아?”

 그 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어요.

 “엄마 때문이야. 엄마는 불에 정말 예민하거든. 내가 태어나기 전에 형이 있었는데 혼자 집에 있는 동안 불이 났데. 그래서…….”

 그 애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내 마음도 가라앉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정말 조심해야 해. 불은 위험한 거야!”

 그 애의 눈에 눈물이 맺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어요.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않은 게 생각났어요.

 “이름이 뭐야? 난 담희.”

 “난, 그냥 다들 동동이라고 불러.”

 “동동이? 잘 어울린다. 푸하하!”

 “왜 웃어?”

 동동이는 웃으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어요.

 그때였어요.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요. 난 동동이에 대해 얘기해 주고 싶었어요.

 “엄마! 우리 집에 동동이가…….”

 “어, 담희야. 간식 먹었어? 영어 숙제는? 이따 늦지 말고 학원 차 타야 해.”

 엄마는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본인의 말만 쏟아냈어요.

 서운해도 어쩔 수 없어요. 엄마가 바쁜 건 우리 가족이 잘 살기 위해서라고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해해야 해요.

 “엄마, 진짜 나쁘다. 어떻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

 동동이가 화를 냈어요. 불같이 화를 내는 동동이를 보자 서운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어요. 나는 동동이에게 잘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방에 몰래 숨겨두었던 마시멜로우를 꺼내 왔어요.

 “우리, 이거 먹자! 화가 났을 땐 단거를 먹어야 한다고 너튜부에서 그랬어.”

 동동이의 눈이 동그래졌어요.

 “이거 엄마가 살찐다고 못 먹게 하는 거 아니야?”

 “너희 엄마도 그랬어? 우리 엄마도! 그래서 몰래 먹어. 내가 맛있게 해 줄게. 게임하면서 조금만 기다려.”

 나는 동동이에게 스마트폰을 주었어요. 그리고 싱크대 서랍에서 생일 때 쓰고 남은 성냥을 찾았어요. 너튜부에서 본 적이 있는데 성냥불로 마시멜로를 구우면 엄청 달콤하고 부드럽다고 했어요.

빨간 성냥을 거친 종이에 긋자 금세 불이 붙었어요. 

 “뭐 하는 거야!”

 그때였어요. 동동이가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왔어요. 그 소리에 그만 성냥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어요. 성냥불이 순식간에 타올랐어요. 동동이는 급하게 물을 부어 불을 꺼트렸어요.

 나는 화가 났어요.

 “너 때문에 불날 뻔했잖아요! 왜 그래?”

 동동이는 나보다 더 화를 냈어요.

 “내가 아니었으면 오히려 더 큰 불이 났을 거라고! 왜 이렇게 위험한 행동만 해! 철부지처럼.”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철부지라니. 이렇게 혼자서도 잘 있는데.’

 계속 잘난 척하는 동동이도 바닥에 꺼져버린 성냥도 다 꼴 보기 싫어졌어요. 동동이는 젖은 바닥을 행주로 닦으면서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았어요.

 “성냥을 어른 허락도 없이 함부로 만지면 어떻게 해? 불은 순식간에 번진다고. 엄마 아빠 몰래 이러고 놀았던 거야? 이러니까…….”

 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어요. 그리고 이어폰을 끼고 게임을 했어요. 동동이가 문을 두드렸지만 아랑 곳 하지 않았어요.

 ‘흥, 열어주나 봐라.’

 한참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이어폰을 빼니 동동이가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게 들렸어요.

 “아래층에 불이 난 거 같아! 빨리 피해야 해!”

 나는 재빨리 문을 열었어요. 동동이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거실엔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어요. 겁이 났어요. 

동동이는 젖은 수건을 나에게 주었어요.

 “빨리 코랑 입 막아!”

 나는 동동이가 준 수건으로 코랑 입을 막았어요. 동동이는 내 손을 잡아끌었어요.

 “잘 들어. 절대로 수건을 입에서 떼면 안 돼! 허리를 최대한 숙이고 나를 따라와.”

 나는 동동이를 따라 현관문을 나섰어요.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었죠.

 문을 열자 시커먼 연기가 온몸을 감쌌어요. 눈이 매웠어요. 화재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어요. 온몸이 바르르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렸어요. 동동이는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웠어요. 

 겨우 힘을 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 하자 동동이가 소리쳤어요.

 “엘리베이터는 안 돼. 계단으로 올라가. 옥상으로 대피해야 해!”

 그제야 학교에서 배운 화재 안전교육이 생각났어요. 비상구 표시를 따라 옥상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었어요. 어둠 속에서 초록색 비상구 표시가 보였어요. 

 “펑!”

 갑자기 큰 소리가 났어요. 귀가 얼얼할 정도였어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어요. 

 “괜찮아, 위로 올라가자.”

 나는 동동이를 따라 계단으로 올라갔어요. 검고 진한 연기가 괴물처럼 우리를 따라왔어요. 우리 집은 10층, 옥상은 17층이에요. 우리 말고도 계단으로 올라가는 사람들과 현관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다들 우왕좌왕한 모습이었어요. 

 “다들 침착하세요. 허리를 숙이고 비상구 표시를 보면서 계단 위로 빠르게 올라가요. 잘못하면 더 크게 다칠 수도 있어요.”

 동동이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어요. 그런 동동이의 모습이 멋져 보였어요. 우리는 계단을 차례차례 올라갔어요. 

 드디어 마지막 계단이 보였어요. 막 발을 내디뎠는데 무언가 발에 걸렸어요. 구석에 세워져 있던 자전거였어요. 순간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어요. 

“퍽!”

그 바람에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혔어요. 그리고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요. 눈앞이 희미해져 가는데 나를 부르는 동동이의 모습이 보였어요. 동동이는 TV에서 봤던 소방관의 모습으로 바뀌어 갔어요.

 

눈을 떴을 땐 병원의 침대였어요. 내 앞엔 눈이 퉁퉁 부은 엄마와 근심 가득한 아빠가 있었어요. 

 “엄마.”

 내가 엄마를 부르자 엄마는 나를 아주 힘차게 않아주었어요.

 아빠는 나에게 일어난 일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어요.

 “아랫집에 아주 큰 불이 났단다. 아파트 전체가 대피할 정도였어. 다친 사람도 있고. 그런데 네가, 네가 무사히 대피했더구나. 그게 얼마나 감사하고 기특한지 모른다. 남희야! 아빠가 정말 미안해.”

 아빠는 몇 번이나 울음을 삼켰어요. 

 “그리고 네가 신고를 아주 잘했다고 소방관이 칭찬해 주었어. 처음 신고한 번호가 네 번호였다는 구나.”

 그제야 동동이가 떠올랐어요. 

 “동동이는? 동동이가 나를 구해줬어. 신고도 동동이가 한 거야!”

 내가 동동이를 찾자 엄마는 내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다며 눈물을 터트렸어요.

 동동이는 누구였을까요? 갑자기 나타나 나를 도와준 동동이, 나는 한동안 동동이를 잊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1년 뒤 동생이 태어났어요. 엄마 아빠는 동생에게 ‘동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하지만 나는 동생을 ‘동동이’라고 불러요. 개구쟁이 내 동생! 동동이의 꿈은 멋진 소방관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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