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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센티 Dec 31. 2021

매일의 동화 11

소리 모으기

“토독 토독 토독 토독.”

크고 작은 빗방울들이 우산 위에 내려왔어요. 저마다 멋진 소리를 만들어 내며 우산 미끄럼틀을 타고 있어요.

“투둑 투둑 투둑 투둑.”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밑을 지나갈 때는 신나게 팝콘을 터트리기도 해요.

“촤르르르 쏴 쏴.”

도로 위에 자동차들이 멋진 슬라이딩을 보여주며 지나가고 있어요. 가끔 짓궂은 자동차 때문에 옷이 살짝 젖기도 해요.

재빨리 주머니에서 소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어 좌우로 흔들었어요. 한 손으론 우산을 잡아야 해서 미끄러지지 않게 최대한 조심했어요.

“토독 토독 투둑 투둑, 촤르르르 쏴 쏴.”

빗소리의 화음이 절정에 다다르자 소리병의 색이 파랗게 물들어 갔어요. 병 입구까지 파란색이 되어갈 때 재빨리 뚜껑을 닫았어요. 다행히 지난번처럼 새어나가지 않은 것 같아요. 발길을 재촉했어요. 엄마에게 이 소리를 빨리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빠빠빠빠 뽀뽀뽀 삐삐삐.”

아빠, 엄마, 내 생일이 현관문 도어락에서 빠져나와 조용한 계단에 크게 울려요. 아빠가 알면 주의를 줄 테지만 난 이렇게 소리 나게 누르는 게 좋아요. 그래야 엄마가 내가 오는 걸 알 테니까요. 문을 열고 들어가 큰 소리로 인사했어요.

“다녀왔습니다.”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거실 벽의 동그란 시계가 나를 맞이했어요. 무소음 시계라 재미가 없어요.

“똑똑.”

안방 문을 두드렸어요. 역시나 답이 없어요. 

문을 살짝 열었어요.

“끼익.”

엄마 대신 문이 먼저 대답을 해줘요.

“엄마!”

엄마를 불렀어요. 엄마는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살그머니 다가갔어요. 내 인기척에 엄마가 살짝 눈을 떴어요.

“왔니?”

“응, 엄마 자?”

난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응, 조금 피곤하네. 식탁에 빵 있어. 간식으로 먹어.”

엄마의 눈을 더 보고 싶었지만 엄마는 금세 눈을 감아버렸어요. 

“엄마, 밖에 비가 와. 그래서 오늘은 비 오는 소리를 담아왔어. 이따가 꼭 들어봐.”

난 조금 전에 담아온 파란색 소리병을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서랍장 안을 살그머니 열어보았지요. 서랍 안에는 아직 열어보지 않은 소리병이 가득 있었어요. 마음에서 굵은 우박들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들키지 않게 꾹 참았죠. 

 식탁의 투명한 봉지 속에 둥글둥글 모닝빵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요. 한 개를 꺼내어 입안에 가득 넣었어요. 부드러운 빵 안이 입안에 가득 차더니 금세 퍽퍽해졌어요. 냉장고 문을 열어 급하게 우유를 꺼내 마셨어요.

“꿀꺽꿀꺽꿀꺽.”

 예전의 엄마라면 이 모닝빵을 가지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을 거예요. 아무리 바빠도 빵 사이에 직접 만든 달콤한 딸기잼을 잔뜩 발라 주었을 거예요. 예전의 엄마였다면…….


“이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벌써 오래전일이에요. 그날은 우리 집에 놀러 온 세정이 와 구구단을 외우고 있었죠. 엄마는 귀가 먹먹하다며 병원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아빠와 통화를 했어요.

얼마 뒤 엄마는 큰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고 한참 뒤에야 퇴원을 했어요. 몸에 나쁜 세포를 없애는 수술을 받았데요. 아빠는 나를 불러 조용히 이런 말을 했어요.

“엄마의 몸에 나쁜 암 때문에 후유증으로 귀가 잘 안 들릴 거야.”

“아무것도 못 들어요?”

“아니, 조금은 들을 수 있어. 가까이에서.”

아빠의 얼굴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어요. 내 마음엔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어요.

 엄마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어요. 우리 집은 캄캄한 동굴이 되어버렸어요. 엄마는 동굴 속에서만 지내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어요. 겨울잠만 자는 곰처럼 늘 침대에만 누워 있었죠. 밖에는 봄을 알리는 소리가 한창인데도 엄마의 추운 겨울은 끝나지 않았어요.

아빠는 가끔 깊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어요.

“언제까지 네 엄마를 기다려야 할까?”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바로 바깥의 소리를  들려주는 거예요. 엄마가 동굴 밖의 다양한 소리를 듣는다면 밖에 나가고 싶어 할 것 같았어요. 멀리 있는 소리는 잘 못 들어도 가까운 소리는 들을 수 있으니까요.

 난 학교 앞 “뭐든지 다 있어” 문구점으로 갔어요. 산타할아버지처럼 하얀 머리와 하얀 수염을 가진 주인 할아버지가 나를 반겼어요. 

“할아버지, 소리를 모을 수 있는 게 있을까요?”

할아버지의 눈이 한참 내 눈에 머물렀어요. 

“아무렴, 여긴 뭐든지 다 있으니까.”

할아버지는 스케치북만 한 나무 상자를 가지고 오셨어요. 상자 안에는 길고 작은 유리병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어요. 앙증맞은 나무마개 모자도 쓰고 있었죠.

“이게 바로 소리병 이란다. 담고 싶은 소리가 있을 때 뚜껑을 열고 좌우로 흔들면 소리를 모을 수 있을 거다.”

딱 내가 찾던 거예요! 정말 기뻤지요. 할아버지는 나무상자를 나에게 안겨주었어요.

“이건 너와 네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다. 열심히 소리를 모으렴. 허허허”

할아버지의 넉넉한 웃음소리에 봄 햇살처럼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그때부터 난 엄마가 좋아할 만한 소리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소리를 모으러 간 곳은 마트였어요. 주말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마트에 갔었거든요. 엄마는 마트에만 가면 눈이 반짝반짝 빛났어요. 작은 메모지에 사야 할 것을 빼곡히 적어놓고 이것저것 골랐죠. 기분이 좋으면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스티커들을 살 수 있었어요.

 마트 안에 다양한 사람들의 소리들이 들려요. 

“라라라라라 참 좋은 마트, 뭐든지 다 있어 참 좋은 마트, 이곳으로 놀러 와요. 참 좋은 마트”

마트 로고송이 인사를 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움직여요.

“양념 불고기, 타임 세일!”

사람들을 모으는 소리도 들리고

“시식해 보세요. 무방부제 유기농입니다.”

입맛을 다시게 하는 소리도 들려요.

“이거 사줘! 응 이거 사줘!”

“안 돼!”

“이거 사주 세요! 네? 제발요? 엄마 말 잘 들을게요.”

“너 집에도 장난감 잔뜩 있잖아!”

아이와 엄마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만 항상 결과는 아이의 승리예요.

주머니에서 미리 챙겨둔 소리병을 꺼내었어요. 여기저기 다니며 소리를 모았지요. 병은 곧 주황색으로 변했어요. 


외할머니 집에도 갔어요. 

외할머니는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 주었지요.

뽀글뽀글 파마머리의 할머니가 알록달록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주방은 늘 포근한 느낌이 들어요.

“칙칙칙 칙칙칙 칙칙!”

압력밥솥의 추가 정신없이 달리고 있어요.

“탁탁탁 탁탁탁 탁탁.”

나무도마 위에 호박 감자 양파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차례대로 모양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보글보글보글보글 뽀글뽀글뽀글.”

가스레인지 위 뚝배기 화산 안에 된장찌개가 터질 듯 말 듯 푸짐하게 끓고 있어요.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러요. 소리병에 할머니의 된장찌개 냄새를 담을 수 없는 게 무척 아쉬웠어요. 

요리가 끝날 무렵 소리병의 색은 따뜻한 빨간색이 되었어요. 


 동네에서 조금만 더 가면 강을 끼고 있는 산책로가 있어요. 엄마가 살을 뺀다며 나를 데리고 종종 산책했던 곳이에요.

“쓱 쓱 쓱 쓱.”

강을 따라 바람이 지나가요. 바람의 멋진 스케이트를 보고 강물과 강둑에 있는 풀들이 온몸을 흔들어 환호를 해줘요. 금메달 깜이예요.

산책로에 아줌마 두 분이 빠르게 랩을 하며 내 옆을 지나갔어요.

“아랫집, 옆집, 윗집, 드라마.”

준비해온 병 하나를 꺼내어 천천히 팔을 저었어요.  

“휙 휙”

소리와 함께 병의 색이 초록색으로 변했어요.


이렇게 모은 소리병이 벌써 한가득이에요. 이제 소리병도 몇 개 남지 않았어요. 하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소리병을 열어 본 적이 없어요. 

내가 소리병을 가져다주고 설명도 했지만 엄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어요.  예전엔 내가 종이접기 하나를 해와도 온갖 칭찬을 해주며 냉장고에 붙여두었는데…….

오늘 담아온 비 오는 소리도 열어보지 않을 것 같아요. 빨리 열어보라고 재촉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어요.  


 다음날이 되었어요. 하루 종일 엄마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엄마의 동굴이 더 깊어질까 불안해졌어요. 엄마를 하루빨리 동굴에서 꺼내야 해요. 소리병이라도 듣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집에 가는 길 아파트 단지 입구에 아줌마들이 모여 있었어요. 예전엔 우리 엄마랑 자주 어울리던 아줌마들이에요. 

“안녕하세요.”

힘없는 인사가 삐져나왔어요.

“응, 학교 갔다 오니?”

아줌마들이 일제히 아는 척을 했어요. 조용히 그 옆을 지나갔어요. 아파트 현관에 들어가는 순간 주머니에 있던 소리병이 삐죽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어요. 뚜껑도 열렸죠. 소리병을 주우려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소은이 엄마, 아직도 안 좋은가 봐.”

걱정이 엄마가 말했어요.

“그러게, 누가 그러는데 귀가 안 들린데. 그러니 오죽 답답하겠어.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던 사람이.”

밉상이 엄마의 말이 가슴에 콕콕 박혔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 좋았지. 저렇게 되니 안타까워. 애도 불쌍하고.”

걱정이 엄마가 밉상이 엄마를 나무라며 말했어요.

“어휴, 애도 이상하던데! 지난번에는 무슨 병을 한참 휘젓고 다니더라니까.”

참견이 엄마가 마지막 화살을 날렸어요. 그 화살이 마음속에 있던 큰 풍선을 터뜨렸어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어요. 아줌마들 앞으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뒤에 숨긴 소리병을 보여주며 소리쳤어요!

“이건 소리를 모으는 거예요!”

아줌마들의 눈이 동그래졌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 하나도 불쌍하지 않아요! 지금은 아주 잠깐, 잠깐 쉬는 거예요.”

말을 하고 나니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어요. 

 재빨리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어요.

“우리 엄마는 괜찮은데, 나도 괜찮은데, 엄마는 정말 괜찮은데, 나도 정말 괜찮은데.”

참았던 눈물이 흘렀어요. 손에 들고 있던 소리병이 어느새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

소리 나지 않게 비밀번호를 눌렀어요.

“끽! 쿵!”

인사도 하지 않았어요. 소리 없는 시계가 여전히 나를 맞이했어요.

“끼익.”

안방 문을 열었어요. 엄마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어요.

“쿵쿵쿵쿵.”

조용한 방에 내 발소리가 울려요.

“투둑 툭!”

주머니에 남아있던 소리병을 모두 꺼내어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어요.

엄마가 나의 인기척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어요.

“왔니?”

 난 엄마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어요.

“엄마는 멀리서 들리는 소리가 중요해? 중요한 건 가까이 있는 거랬어. 나는 늘 가까이서 얘기할 수 있는데.”

그리고 안방을 나와 버렸어요.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내 방까지는 12걸음이면 충분해요.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웠어요. 아무것도 듣지 않고 눈을 감아버렸어요. 안 그러면 눈물이 계속에서 터져 나올 것 같았거든요.


깜빡 잠이 들었나 봐요. 커다란 웃음소리에 눈이 떠졌어요. 그 웃음소리는 안방에서 나는 소리였어요.

“하하하하 호호호호 깔깔깔깔.”

아주 오랜만에 듣는 소리, 내 귀를 의심했어요. 곧바로 엄마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어요.

엄마는 회색 소리병을 듣고 있었어요. 앗! 거기엔 엄마를 흉보는 아줌마들의 소리가 있는데....

“하하하하하, 아이고 여편네들, 여전하네!”

엄마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어요.

“엄마, 괜찮아?”

“응?”

엄마는 잘 안 들리는 듯 내 눈을 바라보았죠. 웃고 있는 엄마의 눈엔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어요.

“엄마, 진짜 괜찮냐고?”

“당연히 괜찮지.”

화장대 위에는 내가 그동안 모아놓은 소리병의 뚜껑이 몇 개 열려있었어요.

“내가 가져온 소리병 들은 거야?”

“그래, 아직 몇 개 남았는데 같이 들을까?”

난 엄마가 앉아있는 침대 옆에 나란히 앉았어요. 엄마는 빨간색 소리병의 뚜껑을 열어 귀에 가까이 데었어요.

“보글보글보글보글”

 할머니의 요리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어요. 엄마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나갔어요. 동굴 같던 방 안이 환해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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