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다
나는 의자에 조용히 앉아, 마음속 오래된 시간들을 꺼내본다. 방 안은 고요하고, 먼지 냄새와 느린 심장박동만이 존재한다. 창밖 가을빛이 느리게 부서져 방 안으로 흘러들고, 나는 그 은은한 빛 속에서 숨죽인 채 스스로를 바라본다.
“왜 나는 늘 이렇게 되는 걸까.”
후고의 택배 사건이 떠오른다. 어린 그가 감당해야 했던, 사랑이라고 믿었던 과잉된 배려의 무게. 무심한 폭력처럼 느껴졌던 그 순간들. 나는 알면서도 알지 못했던 나 자신과 마주한다. 깊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경주, 베로니카와 단둘이 떠난 여행. 계획에 없던 진주 외가 방문 제안. 그녀의 눈빛 속 당혹과 불편. 순간의 감정에 휘둘린 나와, 그 속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화. 나는 내 마음속 긴장과 이해를 동시에 느낀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 엮이는 감정의 실타래가 손끝처럼 느껴진다.
정신과 상담실에 앉아 있는 듯 상상한다. 벽 너머 조용히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다. 말을 걸지 않아도 좋다. 그 시선은 내 숨결과 눈빛, 작은 손짓 하나까지 기록하며, 나는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읽는다. 후고와 베로니카, 나의 선택과 내적 갈등이 조용히 오간다.
“나는 왜 늘 내 마음대로였을까.”
조용히 속삭이며,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 겹쳐진다. 여행지 호텔의 어둑한 복도, 사라진 외가의 집, 남강의 흐름, 후고의 작은 창가, 베로니카의 눈빛.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어진다. 나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관찰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과거의 교훈과 현재의 현실이 만난다. “부모 말을 안 듣는 아이가 결국 스스로 길을 찾는다.” 늘 강조했지만, 현실 속 아이들을 바라보니 그것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었다. 후고와 베로니카는 각자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성장한다. 나는 그 흐름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그 모습에서 감사함과 기특함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기억은 떠다닌다. 사라진 외가의 집, 남강의 물결, 호텔 복도, 베로니카의 당황한 표정, 후고의 작지만 단단한 존재감. 나는 모든 것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다. 내 마음은 그 속에서 호흡하며, 균형을 찾아간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과거의 나는 그때 최선을 다했고, 현재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완벽한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택과 사랑, 마음을 담은 이해와 관찰은 남는다. 내 마음속 상담자의 시선을 빌려, 질문과 답을 오가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흐름 속에서 작은 평화를 발견한다.
조용히 눈을 감으면, 모든 기억과 선택, 내적 갈등과 평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간다. 나는 그 흐름 속에 내 마음을 맡기고, 인간 존재가 가진 섬세한 균형과 조화를 느낀다. 후고와 베로니카, 그리고 나. 서로를 비추며, 불완전함 속에서도 충분히 빛나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과거의 선택과 부족함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여기 있다.”
과거의 과오와 현재의 관찰, 아이들의 성숙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삶의 균형과 아름다움 속에서 조용히 숨을 고른다.
진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쌍둥이 외삼촌 사진
1960년 진주에서 태어난 쌍둥이 외삼촌 상준, 상봉의 어린 시절을 담은 귀한 가족사진이다. 사진 속 외조부모님은 정갈한 옷차림으로 나란히 앉아 두 아기를 품에 안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단정한 흰 셔츠에 긴 바지를 입고, 발에는 고무신을 신은 채 단단하고도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외할머니는 흰 저고리와 통치마 차림으로 같은 고무신을 신고 있으며, 품 안의 아기를 감싸 안은 손끝이 유난히 다정하다. 두 분의 얼굴에는 시대의 고단함 속에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묻어난다. 바닥에 닿은 고무신 한 켤레 한 켤레가 그 시절의 검소함과 성실한 삶을 말해주는 듯하다. 흑백 사진 속의 배경은 단출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가족의 온기와 생의 흔적은 선명하다. 지금은 외조부모님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이 사진 한 장은 그 시절의 숨결과 사랑을 고스란히 품은 채 우리 곁에 남아 세대를 잇는 기억으로 빛나고 있다.
나의 외조부님은 단정하고 강직한 분이셨다. 사진 속에서도 고무신을 신은 채 꼿꼿이 앉아 두 아기를 품에 안고 계신 모습이 한결같다. 말수가 적으셨지만 눈빛은 따뜻했고, 가족을 향한 책임감이 언제나 얼굴에 배어 있었다. 흰 셔츠의 소매와 단정한 자세에서 성실한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 진주 시절, 그는 새벽부터 밭으로 나가 묵묵히 일하시며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셨다. 손은 거칠었지만 그 손으로 밥상을 차리고, 어린 아기들의 등을 다독이셨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사진으로만 뵐 수 있지만, 그 고요한 미소와 굳건한 자세는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외조부님의 존재는 나에게 근원 같은 따뜻함이다. 시대의 고단함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던 그분의 삶은, 지금의 나에게도 쉼 없이 성실하라는 조용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