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5

뽀리 , 고냉냉 , 슈슈

by 안순나

〈시절인연,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저녁은 유난히 적막했다.

남편은 친구들과 늦은 약속에 나갔고,

아들과 딸은 이미 제 삶의 속도로 멀리 나아갔다.

나는 불을 끄고 앉아 있었다.

집 안은 너무 조용했고,

냉장고의 낮은 진동만이 살아 있는 소리처럼 울렸다.


그 속에서 나는 오래된 이름들을 떠올렸다.

뽀리, 슈슈, 냉이.

그 아이들이 없는 집은

사람이 다 떠난 집보다 훨씬 더 텅 비어 있었다.


후고의 방에는 아직 뽀리의 유골함이 있고,

베로니카의 방에는 슈슈와 냉이의 유골함,

문을 열면, 그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 듯하지만

나는 더 이상 모르겠다.

정말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걸까,

아니면 내 마음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뽀리와의 여름


뽀리가 죽던 날은 한여름이었다.

나는 부엌에서 아욱국을 끓이고 있었다.

된장의 구수한 냄새와 들기름 향이 퍼지는 사이,

베로니카가 품에 안은 뽀리는

숨을 고르듯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열아홉 해를 함께 산, 긴 시간의 끝이었다.

뽀리는 후고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였다.

작은 손바닥 위에서 간질거리던 털,

아이의 웃음 속에서 함께 자라던 생명.


후고는 뽀리의 꼬리만 봐도 웃었고,

뽀리는 그 웃음에 꼬리를 더 흔들었다.

두 존재의 세월은 한 화면에 담긴 풍경 같았다.

시간은 흘렀고, 아이는 화가가 되었고,

뽀리는 어느새 노견이 되어 있었다.


그날, 내가 국을 저을 때

베로니카는 조용히 말했다.

“엄마, 뽀리가 이상해요.”

나는 불을 끄지도 못한 채 부엌을 뛰어나갔다.

뽀리는 이미 조용히 숨을 거두고 있었다.


그 눈은 여전히 맑았다.

살아 있는 생명의 마지막 빛이 서려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눈동자가 내 마음을 깊게 꿰뚫는 듯했으나

말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뽀리의 장례는 후고와 베로니카, 그리고 슈슈가 함께 했다.

한낮의 햇살 속에서, 삶과 죽음이 같은 공기 속에서 섞여 있었다.

작은 항아리 안의 뽀리는

햇살 아래 잠든 듯 고요했다.

그 순간의 고요함이 아직도 내 마음 속을 떠돌고 있다.





슈슈,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


슈슈는 원래 우리 집의 아이가 아니었다.

베로니카의 친구가 “일주일만 돌봐달라”던 강아지.

그 아이는 단 일주일만 머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연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슈슈는 뽀리가 떠난 집의 공기를 조금씩 데워주었다.

작은 발자국 소리가 마루를 가로지를 때마다

집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낯선 이별의 틈을 부드럽게 메워주는 존재였다.


십여 년을 함께 살았다.

하루의 끝마다 그 아이는 내 곁에 있었다.

내가 식탁에 앉으면 내 발 아래 머리를 기대고,

내가 울 때면 말없이 옆에 앉았다.

인간의 위로는 말로 시작되지만,

동물의 위로는 존재 그 자체로 완성된다.


올해 봄, 슈슈는 떠났다.

5월 1일의 밤이었다.

자다가 슈슈의 비명소리를 듣고,슈슈곁에가서 안고 물도먹여보려고해도 물도옆으로 다새서 토닥토닥 두드려재웠다 그리고방에 들어 왔다. 얼마후에

후고의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 숨이 멎었어.”


그 말 한 줄로 세상이 멈췄다.

슈슈의 장례는 후고와 친구 채은이가 함께 했다.

작은 상자에 꽃잎을 넣으며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삶이란, 이렇게 또 한 번의 작별로 완성되는구나.





냉이, 작은 용기와 신뢰


냉이는 후고가 데려왔다.

어느 겨울날, 지하실에서 나는 작은 울음소리를 따라

후고가 한 마리 고양이를 안고 뛰어왔다.

그 아이는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더럽고 말라 있었지만, 후고는 따뜻한 수건으로 감싸 안았다.


냉이는 처음엔 모든 것을 두려워했다.

사람의 손길조차 믿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작은 눈빛 속에 신뢰가 피어났다.

처음으로 내 손등을 핥던 날,

나는 그 행위의 의미를 오래 곱씹었다.

아마 인간이 동물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인간을 믿어주는 일이 아닐까.


냉이의 마지막은 너무 빨랐다.

지난해 6월 6일, 24시간 동물병원에서

“이제 곧 떠날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급히 달려갔지만, 이미 냉이는 조용히 숨을 거둔 뒤였다.


그날 밤, 거실 한가운데 냉이를 놓았다.

베로니카와 후고, 그리고 양 작가님이 함께 장례를 치렀다.

꽃잎과 함께 덮은 천 아래, 작은 체온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빈자리에서 깨달았다.

이별은 언제나 너무 늦게 도착한다는 것을.





남은 자리, 마음의 빈틈


이제 그들은 모두 떠났다.

후고의 방에는 뽀리가

베로니카의 방에는 냉이와 슈슈가 있다.

가끔 문을 열어도, 냄새도 기척도 없다.

그저 시간만이 그들이 살던 자리를 조용히 덮는다.


나는 이따금 생각한다.

이 집에 남아 있는 건 정말 ‘나’일까,

아니면 그들의 흔적 속에 살아가는 나의 그림자일까.

불금의 저녁, 남편이 없는 집의 적막은

이제 그 아이들의 부재보다 더 깊은 고요로 다가온다.


하지만 가끔은

불 꺼진 거실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린다.

착각일지라도,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안다.

그 아이들은 여전히 이 집 어딘가에 있다.

바람 속, 그림자 속, 내 마음 속.





삶이란


삶이란 결국,

누구를 위해 살았는지를 묻는 긴 여정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들을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안다.

그들이 나를 살게 했다는 것을.


뽀리의 눈동자 속에서 배운 신뢰,

슈슈의 조용한 숨결에서 느낀 평온,

냉이의 두려움 속에서 피어난 용기.

그 모든 시간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


가끔은 묻는다.

그들이 사람을 위해 존재했던 건지,

아니면 사람이 그들을 위해 존재했던 건지.

하지만 이제 그 답은 묻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내 인생의 한 시절을

완성해준 인연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모두 시절인연이 된다.

그 인연이 끝났다는 것은

사랑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모양을 바꾸었다는 뜻일 뿐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뽀리, 슈슈, 냉이.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들.

그러나 그 이름들이 내 입술에 닿는 순간,

나는 그들의 숨결을 느낀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해 살았던 걸까,

아니면 그 아이들이 나를 위해 와준 걸까.


세상에는 많은 포메라니안, 시츄, 고양이가 있지만,

시절인연으로 만난 이 아이들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들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 내가 살아가는 날마다,

집 안의 적막 속, 바람 속, 그림자 속,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그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