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에 소설가가 되겠답시고 삼 년 동안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하며 이런저런 공모전을 준비했지만, 단 한줄도 써내지 못했다. 언제나 첫 문장이 고비였다. 한마디로 나에게 재능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딱 일년만 절간에 틀어박혀 소설 한 권을 뚝딱 써 오겠노라 호언장담 한다면, 5미터짜리 굵은 밧줄 하나를 사 보내라. 일 년 뒤엔 틀림없이 죽고 싶을 테니까.
아무튼, 나는 일자리가 절실히 필요했는데, 대학은 일찌감치 재적된 상태였고, 가진 건 쥐뿔도 없는데다, 하물며 자격증 같은 건 있을 리 만무했다.
다시 출장뷔페 일을 해볼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말이 나온 김에 그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나는 제대하고 일주일만에 무려 출장뷔페 운전기사로 취업했었다. 믿기지 않지만, 나는 운전병으로 복무했기 때문에 단번에 채용되었던 것이다. 사장이 자세한 사정을 알았더라면 절대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종종 빨간 불에 출발하고, 일차선으로 곧장 우회전하고, 고속도로 출구를 놓쳤을 땐 갓길에서 후진하는 타입의 ‘운전 경력자’였기 때문이다. 내가 군생활을 하는 동안 사람을 치어 죽이지 않은 건 기적이었다.
사장이 말 없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이 안 좋군. 자주 배가 아프지?”
사실 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고 있었지만, 사장의 점쟁이 취미가 마음에 안 들어서 부인했다.
“아닌데요.”
“에이–, 아닌 게 아닐텐데.”
나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계속 아니라고 우겼다. 그러자 사장이 씩 웃으면서 그만 가보라고 말했다. 능구렁이 같은 자식! 그래도 실력은 괜찮았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출장뷔페보다는 점집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첫날에는 전단지 돌리는 일을 했는데,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에 경비원 몰래 침투해서, 꼭대기층부터 계단을 타고 내려오며 각 호(號) 현관문에 테이프로 전단지를 붙이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게 유일한 영업 전략인 모양이었다.
매니저라는 남자가 아르바이트생 몇 명을 깜깜한 냉동탑차 뒤에 쑤셔넣고 나더러 출발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뭘 잘못 건드렸는지 와이퍼가 삐걱삐걱 마른 유리창을 긁어댔다. 보다 못한 매니저가 와이퍼를 멈추게 하고 다시 출발하라고 말했다. 이번엔 차체가 울컥하더니 시동이 꺼져버렸다. 매니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차는 처음이라.”
매니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 앞의 파리를 쫓아버리듯 손을 휘휘 저었다.
경비원의 감시망을 통과한 다음에는 아파트 각 동(洞)의 입구에 설치된 자동문을 뚫어야 했는데, 아래쪽 문틈으로 전단지를 슬쩍 밀어넣으면 센서가 동작을 감지하고 문이 스르르 열렸다. 이게 되네! 나름 스릴 넘치는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세 번째 동까지 마치고 나자 티셔츠며 속옷이 땀으로 흥건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잠시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쉬고 있으려니 다시 그 짓을 시작할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남은 전단지를 소화전에 쑤셔넣고 시간을 때우다가 트럭으로 돌아갔다.
모두 다 모이자 매니저가 한 명씩 지목하며 다시 뭔가를 지시했다.
“너는 1001부터 1010까지. 너는 1011부터…”
알고 보니 서로의 작업 결과를 확인하려는 개수작이었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공산당 같은 놈!
매니저가 나를 은밀히 불러내더니 말했다.
“어디서 시간만 때우다 오는 놈들이 있거든.”
“......”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제 들키는 건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아무도 고자질한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작업을 확인하러 가서 나처럼 농땡이를 피웠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쩌면 처음부터 나만 땀을 줄줄 빼가며 계단을 뛰어다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느님만 아시겠지.
사업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사이드 미러에 빗방울이 맺혔고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수채화처럼 번진 형체와 눈부신 헤드라이트, 그게 다였다. 유리창 안쪽이 뿌옇게 흐려지는 통에 창문을 내리자 따가운 빗발이 들이쳤다. 다들 비오는 날에 어떻게 운전을 하고 다니는 건지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차선을 변경할 때마다 빵빵, 경적소리가 죽일 듯이 나를 위협했다.
“야! 이 개새끼야!”
옆 차선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그렇게 소리질렀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고, 대꾸할 정신도 없어서 나는 그냥 액셀을 밟았다. 매니저는 사색이 되어 작은 플라스틱 손잡이에 두 손으로 매달려 있었다.
냉동탑차 짐칸에서 내린 알바생들이 나를 째려보며 무슨 말을 속닥거렸다. 그중 한 녀석이 바닥에 가래침을 뱉었다. 임마, 이 상자에 너희 애새끼들을 감금한 건 내가 아니라고!
도로변에 위치한 작은 철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면 출장뷔페 사업장이 있었다. 계단 통로는 두 팔을 완전히 펼 수 없을 정도로 좁았고, 한쪽 벽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는데, 그 옆을 지날 때마다 후다닥 바퀴벌레가 도망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출입구 위에 걸린 간판이 아니라면, 문을 열었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도로 문을 닫아버릴 정도로 지저분해서, 그곳에 음식에 관련된 뭔가가 숨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
지하 공간은 조리실과 창고, 사무실, 그리고 식당이 경계 없이 어울려 있었는데, 늘상 곰팡내와 음식 냄새가 풍겼다.
접이식 테이블에 직원들이 빙 둘러앉아 점심 식사를 기다렸다.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가 뚱한 표정으로 음식이 담긴 접시를 양손에 들고 내왔다. 그리고 다시 주방으로 가서 또 접시를 양손에 들고 왔다. 같은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됐고, 우리는 배식을 기다리는 노숙인들처럼 얌전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평일에는 한 명만 출근해서 직원들 밥을 챙겨주는 모양이었다. 잘난 체 하기 좋아하는 범생이가 주방 여자를 도와 접시를 함께 나르기 시작했고, 여자의 표정이 천사라도 본 것처럼 밝아졌다. 매몰찬 세상과 엿 같은 삶에 지쳐 목을 매달기 직전인 한 여자가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다. 불쌍한 녀석.
점심을 다 먹고 나자, ‘관리부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직책을 맡고 있는 대머리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운전에 좀 더 신경 써 줘. 말 나오지 않게.”
내가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관리부장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오후에는 다른 매니저가 나와 동승했다. 짧은 머리에 덩치가 산만하고 팔뚝에는 문신이 가득한 남자였다. 나보다 기껏해야 한두 살 많아 보였지만 꽤 오랫동안 이 일을 해 온 것 같았다.
그 남자가 운전석에 앉았고, 나는 쭈뼛쭈뼛 조수석에 올라탔다.
“올 때는 니가 운전하는 거야. 알겠냐?”
깡패 같은 자식이 다짜고짜 반말로 내게 통보했다. 기분이 나빴지만 물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새 매니저는 레이서 출신이거나 스피드광, 혹은 미친 놈이 분명했다. 그 자식은 아슬아슬 차들 사이를 곡예 운전하며 서행 중인 앞 차 뒷범퍼를 들이받는가 싶더니, 갑자기 휙 핸들을 꺾어 고속도로 출구 램프에 길게 줄을 서 있는 차들 맨 앞으로 끼어들었다. 새치기를 당하자 분노에 찬 경적이 고막을 찢을 듯 길게 울렸다. 완전히 정신나간 놈이잖아! 냉동고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이 사이코패스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제발 한 명이라도 살아있길.
냉동탑차는 큰 길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 마을로 들어섰다. 근처에 아파트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차가 멈춘 곳은 어느 폐건물 뒤편의 주차장이었다. 사이코패스가 냉동고 문을 열자, 새하얗게 질린 알바생들이 흐물흐물 미끄러지듯 탑차에서 내려와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니저는 전단지 묶음을 끄집어내 어깨에 메고 건물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에 매니저가 종이박스 십여 장을 양손으로 받쳐 안고 돌아왔다. 그는 우리 앞에 종이박스를 툭 던져 놓더니 다시 몇 장을 집어 들고 그늘진 공터로 향했다. 그가 박스를 바닥에 깔고 드러누웠다.
우리는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다가 하나둘씩 사이코패스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멀리서 매미가 울었고,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았고, 솔솔 잠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