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야 할 사람들이 망하지 않는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겉으로는 끈기 있게 버티는 것이 멋져 보이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그것은 종종 비효율입니다. 뉴스에선 잘 말하지 않는 한국 경제 버블의 이면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5수 끝에 합격한 학생을 보면 우리는 끈기의 승리라고 말합니다. 개인의 서사로 보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 시간은 다른 진로를 탐색하거나 다른 역량을 개발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이런 사례는 “끝까지 버티는 것” 자체가 미덕이 되는 문화를 강화합니다.
자영업 시장도 비슷합니다. 매출이 줄어도 대출 완화와 각종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구조가 반복되면, 퇴장해야 할 공급이 남고 시장은 포화됩니다. 한 블록에 카페가 세 곳씩 들어서는 현상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시장 왜곡에 가깝습니다. 같은 업종의 과잉 진입은 원자재 비용을 밀어 올리고, 경제 전반의 효율을 떨어뜨립니다.
부동산도 다르지 않습니다. 부도 위기의 시행사들이 추가 자금 투입으로 연명하고, 청산이 미뤄지면서 가격 조정이 지연됩니다. 겉으로는 시장이 버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실 자산이 정리되지 않은 채 떠돌고 있는 셈입니다. 거품은 유지되고, 리스크는 뒤로 밀리며, 마지막에는 최종 소비자가 그 비용을 떠안게 됩니다.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망해야 할 것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을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매몰비용의 덫이 한국 사회를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시간과 돈, 관계를 너무 많이 쏟아부은 뒤에는 멈추는 것이 손실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개인도 조직도 계속 버팁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자원의 재분배는 멈추고, 새로운 도전의 공간도 함께 사라집니다. 실패가 정리되지 않으면 새로운 성공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버티면 이긴다”는 신념 위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성장기에는 이 믿음이 실제로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는 같은 태도가 오히려 비효율을 고착화합니다. 실패를 사회가 제도적으로 분담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는 낙인이 되고 도전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 됩니다. 그 결과 새로운 시도보다 모방이, 위험 감수보다 현상 유지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여기에 한국 사회 특유의 관계 중심 구조가 이 문제를 더 악화시킵니다. 한국에서 실패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사회적 소속의 해체에 가깝습니다. ‘대표님’이 사업에 실패하면 돈만 잃는 것이 아니라, 그 호칭과 함께 사회적 위치도 무너집니다. 한 번의 실패가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고 다음 기회까지 함께 사라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더욱 망하지 않으려 하고, 망해야 할 순간에도 버팁니다. 결국 시장 전체의 회복 탄력성도 약해집니다.
그렇다면 이 구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실패를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 배분의 문제로 보는 시선입니다. 실패는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때로는 더 나은 배치를 위한 정리 과정일 수 있습니다. 망하지 못하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패가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실패가 제때 정리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사회가 부여한 호칭과 정체성을 자기 존재 전체와 겹쳐놓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회와 조직 차원에서는 실패를 단절이 아니라 전환으로 다루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실패 이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금융, 세제, 재도전 구조가 있어야 하고, 한 번의 실패가 관계망 전체의 퇴출로 이어지지 않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이건 복지가 아니라 회복력의 문제입니다.
결국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는 성장의 경로를 스스로 차단합니다. 지속 가능한 사회는 성공의 횟수를 늘리는 사회가 아니라, 실패 이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사회입니다. 개인의 실패가 사회적 자산으로 순환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원은 다시 배분되고 혁신은 다시 시작됩니다.
실패를 제도화할 수 있는 사회만이, 다음 성장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