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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Nov 13. 2020

나혜석, 이상, 데이비드 보위의 팬픽

신중선, <문학으로 덕질하다> 리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0760


‘문학으로 덕질하다.’ 이 책의 내용을 정말 잘 요약하고 있는 제목이다. ‘덕질’은 무엇인가? 덕질의 어원은 특정 분야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오타쿠(御宅)’이다. 한국에서는 이 단어가 ‘오덕후’, ‘덕후’ 등으로 사용되고, 여기에 ‘무언가를 한다’는 뜻의 ‘질’을 합성한 것이 ‘덕질’의 어원이다. 주로 연예인과 팬의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덕질은 기사나 방송에서도 자주 등장할 만큼 흔한 표현이 되었다. <문학으로 덕질하다>에는 저자 신중선이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 17명에 대해 쓴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인물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저자의 덕질 방식이다.







<문학으로 덕질하다>에는 바스키아, 데이비드 보위, 나혜석, 이상 등 국내외의 예술가 17명이 등장한다. 각각의 소설은 10페이지 내외로, 주인의 삶의 한 장면을 상상하여 재구성한 이야기, 주인공에게서 영향을 받은 팬의 이야기, 주인공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 주인공과 고양이의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책을 보자마자 팬픽(fan fiction) 문화가 떠올랐는데, 이 글도 실존 인물에 대해 팬이 2차 창작을 했다는 점에서 팬픽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팬픽은 주로 드라마나 영화, 배우, 가수 등 동시대의 대중문화 팬덤에서 활발하게 창작된다면 이 글의 저자는 과거의 위인들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각각의 글은 원고지 10매에서 30매 내외의 짧은 분량이고, 위인전처럼 인물의 삶 전반을 훑는 것이 아니라 한 장면을 간결하게 보여주며 그림과 함께 저자가 직접 그린 드로잉이 실려 있다. 단순한 선으로 그려졌지만 인물의 특징을 잘 포착한 드로잉은 인물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금홍'이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신 셰프가 새삼 남자를 유심히 뜯어봤다. 이 사람이 기생 금홍을 만났다고? 금홍이 하면 이상이고 이상 하면 금홍이 연상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이상_<술집 광> 中


펠린의 시 암송이 끝나자마자 보들레르가 어이없다는 듯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펠린은 자존심이 상했으며 즉각 토라졌다. 더 이상은 보들레르의 무릎고양이로 있고 싶지 않았다. 이따위 재롱이 다 무슨 소용이람! 펠린은 그의 무릎을 벗어나 널따란 창 아래에 자리 잡고는 네발을 접어 식빵자세를 취했다.

 보들레르_<집사 애인> 中




읽으면서 느낀 것은 책의 저자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해 대단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데이비드 보위나 보들레르, 나혜석, 이상 등 저자가 주제로 삼고 있는 인물들은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유명한 이들이지만 모두가 이들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인물에게 관심이 있다고 해도 인물 전기를 찾아보는 등 조사를 하는 건 쉽겠지만 이들의 삶을 가지고 글을 쓰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애초에 누군가에 대해 조사하고,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는 건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이 폭넓은 분야의 인물들에게 깊은 관심을 두고 있고 그에 기반한 창작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저자가 가진 타인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인물 전기와 소설의 경계에 있는 이 글이 독자들에게는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단점이다. 작가의 개인적 흥미에 기반한 소설이다 보니 인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저자처럼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에게 공감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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