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Girl> 감상 후 바라본 트랜스젠더에 대한 시선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며 살아갈까?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각자의 바쁜 일상 속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해 딱히 인식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다.
트랜스젠더가 우리에게 처음 접해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 연예계에 트랜스젠더 하리수가 등장하면서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하리수의 등장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트랜스젠더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TV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이와 비례하게 사회는 성 소수자와 마찬가지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경계적인 시선이 허물어지고 포용적인 태도도 늘고 있다고 한다. 갤럽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성전환 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에 ‘개인 사정이므로 할 수 있다’라는 답변이 51%에서 2020년 60%로 늘었다. 특히 조사에 참여해준 20~40대의 80%가 이에 해당되었다. ‘트랜스 여성(MTF)은 여성이다’는 데에도 응답자 절반이 동의했고, 20~30대는 약 70%가 동의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는 트랜스젠더에게 무관심하다. 앞서 설문 결과를 보면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고 트랜스젠더가 살기 좋은 시대가 찾아왔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트랜스젠더에 대해 정의하지 않는다. 성별 정정에 대해서도 대법원의 규범이 지나치게 엄격해 법적 성별을 변경하는데 몇십 년이나 걸린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많은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사회로부터 끔찍한 차별 대우와 무관심 속에서 외로이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주변에 직접적인 트랜스젠더 지인이 있거나 트랜스젠더의 가족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갤럽의 설문조사를 보더라도 질문의 답변 자체가 ‘개인 사정’이라는 전제하에 긍정적인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도 트랜스젠더는 대부분 온라인상에서 접해온 사람들이고 우리 생활과는 별개의 사람들이라고 느껴진다.
우리는 그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차별받는 그들을 ‘약자’라고 생각하기에 인간으로서 동정하고 있던 건 아닐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랜스젠더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100년 인생 중 한 번쯤은 사회 속 어딘가에서 그들을 마주할 만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동정하는 것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의 입장에서 사회의 시선을 바라보고 입장을 고려하며 그들을 위해 목소리 낼 줄 알아야 한다.
영화 ‘Girl’은 사춘기 소녀이자 트랜스젠더인 라라를 시선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는 시청자에게 트랜스젠더의 입장이 솔직하고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시선은 잔인하다. 말로 행하는 폭력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라라는 아직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고 호르몬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 때문에 남자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꿈인 발레를 할 때마다 신경 쓰여 제대로 옷을 갈아입지도 씻지도 못한다. 겉모습이 중요한 사춘기 소녀에게 이 부분은 아주 큰 콤플렉스이다. 그녀가 여자가 되고싶어하는 욕구는 영화 중간중간에 여자를 상징하는 빨간 조명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은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 라라의 담임선생님은 갑자기 그녀의 앞에서 "라라와 같은 탈의실을 쓰기 불편한 여자들은 손을 들어."라고 한다. 라라의 같은 반 학생들은 라라에게 “너는 남자야, 여자야? 여자라면 우리의 벗은 모습은 다 보면서 왜 너는 옷을 못 벗어?”라고 한다.
만약 그녀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면 이 상황이 이해될 수 있을까. 우리는 당장 심한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며 교육청에 신고하거나 국민청원에 올렸을지도 모른다. 영화 끝에 라라가 생식기를 가위로 절단해버리는 장면을 보자 트랜스젠더에게 느껴지는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 가늠이 안 된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적인 시선을 받아야 했고 자신을 방어하지도 못한 채 그녀는 추락했다.
이 영화가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노라 몽세쿠흐의 실화라는 것을 알고나니 결말을 봐서일까, 그녀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그녀의 극단적 선택은 충격적이고 안쓰럽게 보이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정체성 전환의 선택지이다. 그녀는 생식기 절단을 선택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고 사회 인식으로부터 벗어났다. 그 선택과 의지가 그녀를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 인생은 라라처럼 정체성 전환을 보이기 힘들다. 나는 우리나라 트랜스젠더의 현실을 다룬 두 사건이 생각났다. 하나는 숙명여대 입학취소 사건이다. 약자의 편에 서는 변호사를 꿈꿔왔던 한 사람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여대 입학에 대한 사회적 반대 여론에 부딪히게 되었고 결국 그녀는 숙대 입학 취소해야만 했다. 또 다른 사건은 육군 변희수의 자살사건이다. 변희수 씨가 군 휴가 때 성전환 수술을 하자 군대 측에서는 그녀에게 심신 장애 3급을 내리고 강제전역을 시켰다. 그 후 그녀는 트랜스젠더에게 불공정한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군대를 상대로 여러 차례 소송 준비를 하지만 사회는 그녀의 편에 서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극단적 선택을 택했다.
최근 우리나라에만 해도 누구나 알만한 큰 사건이 있었고 현재 두 사건 외에도 수많은 트랜스젠더의 슬픈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일이 세계적으로는 얼마나 많을까. 트랜스젠더 유럽(TGEU)의 2009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는 사흘에 한 명꼴로 혐오 범죄로 인해 살해당한다고 한다. 실제 트랜스젠더 라라의 경우처럼 2011년 미국 트랜스젠더 평등센터가 6,450명의 트랜스젠더와 비 규범적 성별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참가자의 78%는 괴롭힘을 경험했고 26%는 일자리를 잃었으며 주거 계약을 거절당한 사람도 19%나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트랜스젠더에게는 기념일이 아닌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brance, TDoR)이 존재한다. 1998년 11월 28일 트랜스젠더 여성 리타 헤스터가 증오 범죄로 살해당하며 생겨난 날이다. 가시화의 날(트랜스젠더의 날) 역시 기념보다는 추모의 대상이 되어왔던 날이다.
트랜스젠더는 왜 추모되어야 하는 대상일까.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의 인식에는 트랜스젠더가 성전환을 택하면 그 정도의 사회적 인식은 각오하지 않았을까 싶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들도 우리와 다를 게 없는 여리고 상처받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트랜스젠더의 우울증과 극단적 선택은 성전환에 대한 부적응이 아닌 사회의 혐오에 의한 것이다. 그들은 자살이 아닌 사회로부터 살해당해왔다.
나는 이 글 초반의 설문조사처럼 트랜스젠더에 대해 응원하는 사람 중 한 명이였다. 그냥 그들의 뜻이 그러하니 나는 트랜스젠더를 존중하고 응원하기면 되는 줄만 알았다. 그러다 뉴스에서 육군 변희수 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생각으로만 응원하는 무관심의 시선과 그들을 혐오하는 시선들이 결국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지 않았고 제삼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왔다.
이런 점에서 영화 ‘Girl’은 실화이기에 더욱더 트랜스젠더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들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흑인도, 유대인도 그들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움직였고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벽을 없애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 응원했기에 그들은 차별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단순히 학창 시절을 상상해보아라. 반장은 반장선거를 함께 준비한 사람들의 투표로 반장이 되었는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학생들이 그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한 표를 던지며 반장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은 사회 구성원을 꾸리기 때문에 우리들의 인식 변화와 그걸 보여줄 수 있는 힘은 중요하다.
아는 지인이 근무하는 이태원의 한 치과에는 트랜스젠더 손님이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실제 트랜스젠더를 접해본 지인은 그들이 정말 재밌고 유쾌한 사람들이라 말했다. 요즘 유튜브와 TV에 자주 등장하는 유튜버 풍자 역시 항상 밝고 당당해 보인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트랜스젠더는 밝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사회 부적응자, 우울한 사람, 힘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건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우선 우리가 그들을 약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녀가 ‘그녀’라고 정당하게 불리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와 우리의 인식 때문이다. 그녀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니 말이다. 이제 자신이 <girl> 시청자가 아니라 영화 속 등장인물이자 라라의 주변 인물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해보자. 라라의 편에 서서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구원해주고 그녀를 응원해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