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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끝에도 온기가 있다.

특수교사의 단호함과 원칙이라는 가시

by 이열하





특수교사는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살아야 할 때가 있다.

통합교육을 하는 학교현장은 소스라칠 만큼 차가운 시선일 때가 많고,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려면 가시를 세워야 한다. 그 가시는 공격의 아니라 보호의 도구다.


공립 초등학교에 일반학급은 대체적으로 20~40 학급 규모이지만, 특수학급은 1-3 학급에 불과하다.

또한 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는 유치원특수학급이 있는 곳이 있다. 일반학급이 4 학급이라면 특수학급은 1개 학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리자는 특수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그 속에서 특수교사의 목소리는 종종 ‘이해심이 없는 주장’ '이기적인 요구'로 비춰진다. 그러나 특수교사는 말한다.

그 목소리는 다름이 아니라 ‘권리’를 위한 외침이라고.


입학식 날의 일이다.

“아이들이 적응을 못할 테니 한 달간 급식실 대신 교실에서 식사하도록 하세요. ”

또 친절한 아량을 베푼다는 식으로 "식판에 밥 담아 가져다줄게요. 선생님은 아이들만 지도해 주세요."

한 관리자의 말이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아니요. 우리 아이들도 함께 가야 합니다. 적응은 같이 해야 해요.”

결국 협의 아닌 소리 높인 언쟁 끝에 일주인간만 교실에서 급식하기로 하였다.

그 일주일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함께’의 시간을 연습하는 기회였다. 무슨 권위로 그 권리를 박탈하려 하는 것인가? 시작조차 안 하고 급식실에서 벌어질 상황들이 염려되어 특수교육대상유아들을 거머리처럼 떼어내어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으려고만 하는가? 나는 가시를 더더 단단히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다른 날, 통합교사가 병가를 냈을 때 담임대신 강사가 수업을 하게 되었다.

특수교육대상자 아이들은 “오늘은 통합 없이, 특수학급에서 분리수업 하세요."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유인즉슨 일반학급에 민원을 심하게 제기했던 엄마의 자녀들을 담임선생님이 없는 상황에서 특수교육대상유아들이 밀거나 치거나 때리거나 등의 행동의 우려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수업권은 조용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정원 내에 포함되어 있는 일반학급 속 특수교육대상유아들을 말이다.

수업권보다 ‘관리의 편의’가 우선되는 현장을 마주하며,

나는 분노와 무력감 사이에서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특수교육의 현장은 ‘유연함’보다 ‘원칙’으로 지켜야 할 때가 있다.

그 원칙이 곧 아이들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단단하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체온이 있다. 그 가시는 아이들의 손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거친 말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울타리다.

아이들의 배움은 함께일 때 완전해진다.

그 자리에서, 고슴도치 마음으로 서 있는 모든 특수교사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단호함은 아이들의 따뜻한 내일을 지키는 일입니다.”


특수교사는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일로 종종 외로움 속에서 싸우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융통성 없는 사람’ 사이의 경계에 선다. 아이를 지키려는 내 말은, 종종 '불편한 고집'처럼 들릴 수 있다.


이렇듯 가시를 세운다는 건 외로움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러나 가시가 없다면, 아이들의 배움터에는 상처가 남는다.

오늘도 교실 문을 열며 다짐한다.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따뜻하지만 흔들리지 않게 나는 다시 고슴도치 마음으로 선다.

그 통합교육 뒤에 숨어있는 외로운 길로 걸어 들어간다.





특수교사의 단호함 속에는, 우리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배우며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교육의 진정한 통합은 이해에서 시작되지만, 그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늘 쉽지 않다. 고슴도치 마음으로 오늘도 학교 현장을 지켜내는 특수교사들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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