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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석호 Nov 14. 2024

당신은 당신 인생의 블랙박스인가?

의식 없는 데이터의 무가치함

 주말 대구 간송미술간에 방문하였다. 휴일을 맞아 방문객들이 북적였다. 신윤복의 미인도 전시장에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신윤복이 바라본 미인의 형상을 따라가려는 눈보다, 그것을 저장하는 카메라의 눈만이 그림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초기 카메라는 필름의 제한성과 장당 비용이 발생하여 대부분 특별한 날에 찍었다. 이젠 기술력이 발달하여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만 있다면 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덩달아 성장한 SNS. 이제 우린 장당 

비용과 필름 개수에 상관 없이 마음대로 찍고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어찌 과거 몇 번 찍어보지 못해 어설프게 남긴 필름카메라 사진보다 개성이 없는 걸까?

 지금도 SNS를 열면 기술적인 사진 잘 찍는 법에 대한 정보는 쉽게 얻을 있다.

 - 인생샷 찍는 방법 10가지

그리고 그 산물이 전시된 SNS의 사진들은 대부분이 유명한 장소와 비슷한 구도와 서로 다른 주인공의 

지루한 변주이다. (그 때문에 희소성이 없어 외모나 외관에 용을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해가 갈 수록 드라이브에는 어마어마한 사진들이 쌓인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에도 엄청난 

사진들이 쌓인다.

  과연 그렇게 지나간 한해 중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언제이며 그 사진들은 몇 번 다시 꺼내 보는가?


 데이터와 기억은 다르다. 데이터는 기록이다. 그것은 불변하며 그 정보를 반복 재생한다. 기억은 움직인다. 기억은 의미를 통해 몇 번이고 해석된다. 해석마다 결과는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우린 특별한 기억엔 추억이란 마크를 해놓는다.

 이 차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굿 윌 헌팅>영화에 나온다.

// 주인공 윌은 정식 교육을 마치지 못한 MIT의 청소 노동자이다. 어느날 MIT의 교수가 것을 푼다면 

학기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A+를 주겠다며 복도에 공개 수학 문제를 낸다. MIT의 학생은 열열히 

덤비지만 그 누구도 그 문제를 풀지 못했다. 윌은 새벽에 복도를 청소하다 문제를 보고 가볍게 증명을 적어 

놓는다.

 윌은 이렇게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으며 늘상 책을 읽어 무수한 지식을 갖춘 인물이다. 이 이유는 유년기 

가정학대로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느끼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지적능력을 이용한 무안주기로 방어하기 

때문이다.

 MIT 교수는 수소문 해 문제를 푼 윌을 찾아 그를 제자로 삼지만 윌의 트라우마로 인한 공격성에 둘의 사이가 

틀어진다. 재능이 아까운 MIT의 교수는 자신의 친구 심리학자 숀에게 윌의 치유를 부탁한다. 똑같이 윌은 

숀을 만났을 때 방어기재로 온갖 지식을 통해 그를 공격한다.

<Good Will Hunting> (1997) -  심리학자 숀(좌측)과 양아치 천재 윌(우측)이 공원에서 대화하는 장면

 숀은 윌의 무례한 말을 듣고 그냥 공원으로 나가자고 한다. 나란히 앉은 둘. 그리고 숀은 윌이 열거한 

트라우마, 정신치료, 심리적 불안 같은 지식을 얘기하지 않는다. 담담히 아내와 유럽에 여행 간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숀이 시스티나 성당에서 <천지창조>를 보았던 기억까지 나아간다.

 그때 숀은 윌에게 부드럽게 묻는다. 

"<천지창조>에 대해 당연히 알겠지?"

 그러자 윌은 웃는다. 머릿속엔 이미 <천지창조>의 화가, 구도, 색, 배경, 조명 어느 미술학자만큼의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숀은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마치 지금 머리 위에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이 보이는 듯이 시선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윌에게 말한다.

"너가 아무리 <천지창조>에 대해 잘 알아도, 직접 그것을 봤을 때의 느낌은 몰라."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윌은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

 윌이 가진 것은 <천지창조>의 데이터다. 그것은 <천지창조>를 재생할 뿐이다.

 반면 숀이 가진 것은 <천지창조>의 기억이다. 그는 <천지창조>를 통해 아내와 떠난 유럽 여행. 유럽의 날씨와 음식. 천장을 올려보았을 때의 황홀함 무엇이든 꺼낼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몇 번이고 다시 해석된다.


 당신이 찍은 사진들은 데이터인가, 기억인가. 쉽게 찍을 수 있는 기기가 생기며 우린 너무도 쉽게 공포에 

빠진다. '이 순간이 지나면 기억도 못하며 사라질 거야.'

 스스로의 유년기를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명석한 머리로도 자신이 유년기에 받은 학대로 

인해 공격성을 마구 내뻗치는 자신을 모르는 윌처럼, 우리의 유년기 경험이라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연속적으로 우리의 성격과 적성으로 남아있다. 결국 무수한 타임리프를 다루는 이야기처럼 과거 아주 사소한 것을 

바꾸더라도 돌아온 현재의 나는 달라지는 것이다. 사소한 변화로 이후의 모든 시간을 아주 조금이라도 

다르게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가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아무런 의식없이 담기만 한다면 그건 블랙박스 메모리카드에 

불과하다. 그 데이터 더미가 아무리 쌓인들, 당신은 사고가 났을 때만 그것을 통해 실증적 증거만을 뒤적일 

뿐인 것이다.

 너무도 멋진 순간을 마주했을 때 사진을 못 찍어도 좋다. 그림을 못 그려도 좋다. 글재주가 없어도 좋다.

 아예 아무것도 못해 너무 아름다운 순간을 그대로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어차피 기술적으로 아무리 그 순간을 손실 없이 담으려 해도 그 모든 감정을 기록할 수 없다.

 오히려 용기를 갖고 오롯이 즐기는 것을 먼저하자. 그리고 그 후 마음이 가장 머무는 곳에 카메라, 연필, 붓 아무것이든 꺼내자.

 그럼 그곳엔 누구도 따라할 없는 당신만의 <미인도>가 빛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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