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메뉴를 고르는 평범한 순간조차 이제는 하나의 '정치적 입장' 표명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민트초코를 고르면 주변에선 기다렸다는 듯 비명이 터져 나온다. "치약 맛을 왜 돈 주고 사 먹어?"
혹은 "이 맛있는 걸 모르는 당신들이 불쌍해!"라는 식의 해묵은 농담들. 처음 한두 번은 가벼운 밈(meme)으로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 지독한 호들갑이 민트의 화한 맛보다 더 자극적으로 다가와 피로감을 준다.
나는 민트초코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묻는 말에 앞서, 왜 우리가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두고 이토록 유난을 떨어야 하는지를 먼저 묻고 싶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취향은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소속감의 도구'가 되었다. 민초단(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집단)과 반민초단(싫어하는 집단)이라는 이분법적인 틀은, 복잡한 개인의 기호를 단 두 개의 카테고리로 압축해 버린다.
사람들은 이 논쟁에 끼어듦으로써 손쉽게 '우리'라는 울타리를 확인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섬세한 미각은 실종된다. "그냥 가끔 먹을 만해"라거나 "초콜릿은 좋은데 민트 향이 좀 강하네" 같은 미지근하지만 솔직한 감상은 '재미없는 태도'로 치부된다. 취향이 대화의 풍성함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신을 캐릭터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민트초코에 대한 과한 리액션은 일종의 '수행적 태도'에 가깝다. 치약 맛이라며 질색하는 표정을 짓거나, 민초에 진심이라며 온갖 굿즈를 수집하는 행위는 본질적인 맛에 대한 탐구라기보다 "나는 이 밈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라는 전시적 행위에 가깝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MBTI, 탕수육 부먹과 찍먹, 깻잎 논쟁까지. 우리는 아주 사소한 차이를 거대한 장벽으로 만들고, 그 장벽 너머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타자'로 규정하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그 호들갑의 소음이 커질수록, 우리가 진짜로 서로에 대해 알아갈 기회는 줄어든다. 아이스크림 취향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삶의 가치관이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할 에너지를, 우리는 민트향 섞인 농담에 다 써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민트초코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그냥 아무 생각 없다"고 답하고 싶다. 누군가 민트초코를 먹든, 민트초코로 국을 끓여 먹든 그것은 그 사람의 영역이며 나의 정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민트초코 말고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아름답고 복잡한 것들이 천지에 널려 있다. 아이스크림 한 입에 인생의 가치관이 걸린 것처럼 호들갑 떠는 세상에서, 나는 묵묵히 내가 고른 맛을 음미하는 정적을 선택하고 싶다. 타인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의 취향을 굳이 증명하려 들지 않는 것. 그것이 밈과 가십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나만의 평온을 지키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다.
부디 다음번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는 아무런 비명도, 야유도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각자가 고른 색색의 아이스크림들이 그저 개인의 소소한 기쁨으로 머물기를. 민트초코가 치약 맛이든 천국의 맛이든, 그것은 오직 그 스푼을 든 사람의 혀끝에서만 결론 나면 될 일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사소한 것에 에너지를 낭비해왔다. 이제는 그 화한 민트 향보다 더 맑은 정신으로, 진짜 중요한 삶의 대화들을 시작해야 할 때다. 호들갑이 걷힌 자리에는 아마도, 우리가 그동안 놓쳤던 각자의 진짜 빛깔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