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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언그림 Dec 02. 2019

사막에서 당신과 하룻밤

12. 인도 자이살메르

저녁을 먹는데 입에서 모래가 같이 씹힌다. 괜찮다. 여기는 사막이니까.

자려고 누우니 이상한 냄새가 난다.

"지태야 방구 뀌지 마"

"나 아닌데??"

젠장 낙타 똥냄새다. 그래도 괜찮다. 여기는 사막이니까.




가치 없는 고민


 선택의 폭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세수할 땐 폼클렌징 대신 비누를 사용한다. 린스는 안 쓴 지 오래다. 심지어 샴푸로 목욕까지 한다. 한국에서는 계절마다 머리스타일을 바꾸고 살았는데 지금은 무조건 단발이다. 로션이 떨어지면 백화점 대신 구멍가게를 간다. 서울에선 그 흔한 대형마트가 여기는 없다. 깔끔하게 진열된 마트를 찾으면 운수 대통이다.

오늘 뭐 입을까? 어떻게 코디하지?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갈아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 비루한 여행자의 가방엔 반팔, 반바지, 긴팔, 긴바지가 딱 한 벌씩만 들어있다. 거울 앞에서 가위를 꺼내 든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머리끝을 대충 다듬는다. 상상도 못 했던 삶인데 살다 보니 장점도 있다.


선택지가 단순해질수록 생각도 단순해진다.
생각이 단순해지니 걱정도 단순해진다.
크게 행복하지 않지만 크게 불행하지도 않다.
매일 소소하게 작은 행복들을 느끼며 살고 있다.



[좌] 자이살메르 성 [우] 지태의 여행 스케치



 황금도시라고 불리는 인도 자이살메르에 왔다. 황금도시란 명성답게 모든 건물이 황금색이다.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내려고 모인 사람들 때문에 도시는 북적거린다. 사막에서 하룻밤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고등학교 3학년 문학 시간이 생각난다. 교과서에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였으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사막에 가야겠다, 쏟아지는 별 아래서 손을 꼭 잡고 자야겠다. 꿈이 생긴 것은. "문학 선생님! 제가 사막 가서 편지 쓸게요! 주소 좀 알려주세요!" 선생님은 내 편지를 받을 때까지 이사 가면 안 되겠다며 웃으셨다.



[좌] 킹사이즈 침대 [우] 조식 포함 사막캉스



 사막에서 하룻밤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았다. 누운 자리가 곧 침대요, 불을 피운 자리가 곧 부엌이었다. 화장실은 사람이 없는 곳 사방 어디나였다. 이불에 누우니 이상한 냄새가 스멀스멀 코를 찌른다. 밤새도록 낙타 똥냄새를 맡아야 하다니.. 이런 것은 문학책에 나와있지 않았는데..


기대가 없으니 불평할 것도,
불만을 가질 것도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기차가 연착을 해도, 물갈이를 열흘씩 해도, 카레를 먹는데 입에서 모래가 씹혀도 그냥 웃음만 나온다. 꽤 괜찮은 것 같다. 단순해지니 머리에서 시끄러운 생각이 사라졌다. 나는 왜 사는지, 왜 태어났는지, 언제 죽는지.. 그런 것들. 함께 하며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골목에 나란히 서서 그림을 그릴 때, 카페에서 햇빛 받으며 멍 때리고 앉아있을 때, 자기 전 침대에 누워 각자 핸드폰을 할 때, 잠들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아재 개그를 날리는 지태를 볼 때.


 가지고 싶은 건 무엇이든 쉽게 가질 수 있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이곳 사막에서 만족함을 느낀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더니, 부족한 여행을 통해 마음 근육이 단련되고 있다.


[좌] 지태와 나 [우] 내 친구 낙타 삼형제


사랑하는 사람과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 아래
같은 침낭 속에서
손을 꼭 잡고
잠들고 싶다


라고 생각한 지 딱 10년 만에 이루었다.





번외

 "지태야.. 너.. 궁둥이가.."

 낙타를 타고 가는데 계속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지태였다. 아마도 딱딱한 안장이 불편한가보다 싶었는데.. 지태의 궁둥이가 시퍼렇게 까져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엉덩이가 이지경이 되도록 아무 말도 못 하고 아파했을 지태를 상상하면.. 웃겨서 견딜 수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막에서 당신과 하룻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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