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언언그림 Nov 26. 2019

"아빠 죽으러 간다, 잘 있어"

11. 인도 아그라



 어느 날 아빠는 우리 세 자매를 끌어안고 말했다.


 "아빠 이제 죽으러 가.. 잘 살아.. 이제 다시는 아빠 못 만나.. 나중에 천국 가서 보자.."


 그날은 그저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빠가 짐 싸서 할머니 집으로 가는 날이었다. 아빠는 지금도 멀쩡하게 살아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 셋은 집이 떠나가라 엉엉 울었다. 저녁 늦게 돌아온 엄마는 울고 있는 우리를 밀치며 소리 질렀다.


"그렇게 슬프면 너네 아빠 따라 꺼져버려!"


언언그림 _  타지마할




 사랑이 만든 무덤, 타지마할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를 입고 타지마할에 갔다. 같이 사진 찍자는 인도 사람들을 피해 "노노 노노노 노노노" 외치며 도망 다녔다. 사진을 같이 찍어줄걸 그랬나, 등 뒤로 "Please!!!" 외치던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사리 입은 외국인이 신기하게 보였을 텐데.


 예전의 나였다면 함께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나는 모르는 사람과 금세 친해지는 재주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를 신뢰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귀찮고 허무하다. 사람이 싫어 사람을 피해 다녔다. 한국인이 말을 걸면 소심한 척 단답형으로 대답했고, 외국인이 말을 걸면 영어를 못하는 척했다.



인도 전통 의상 사리를 입고 찰칵



 지구 반대편, 그것도 인도 아그라에서 나의 우울증과 사람 혐오증을 알아챘다. 도피성 세계여행은 아니었다. 세계여행은 꼬박 10년째 나의 꿈이었다. 때마침 돈과 시간 그리고 지태의 결심까지 삼박자가 맞았다. 다만 사람에게 너무 지쳐 있었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칼을 후벼 파는 가식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헌신하니까 헌신짝이 되어버렸다.





 자고로 맏이의 미덕은 첫째도 인내요, 둘째도 인내요, 셋째도 인내이다. 만 1살 때 둘째가 태어나면서 나는 부모를 잃었다. 곧이어 태어난 셋째는 내가 다 키웠다. 유치원에 다녀와서 막내의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였다. 나가서 친구랑 놀고 싶으면 막내를 업고 가야 했다. 싫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건 험한 욕과 폭력이었다. 부모 역할을 요구하면서 그게 언니의 의무라고 했다. 언니가 되길 바란 적 없는데 어쩌다 첫 번째로 태어나서 이 고생이다.


 한국에 있을 때, 텅 빈 방에 혼자 있으면 '죽어야 되는데 아직 살아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나를 혼낼 때마다 늘 하던 소리였다. 10년 넘게 들어왔던 말이라 이제는 엄마 없이도 자주 들린다.


 이런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다. 아무렇지 않은 게 더 이상했다. 뛰어난 내 연기에 나도 깜빡 속아버렸다.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서 없었던 일처럼 잊었다. 괜찮은 척 웃고 살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내면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소중한 관계에 큰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적어도 나만큼은 오롯이 내 편이 돼야 한다


 다른 사람 마음만 신경 쓰느라 내 마음 병든 걸 몰랐다. 내가 내 마음을 돌보는 게 이기적인 일인 줄 알았다. 세상에 너무 늦은 건 없다지만 내 마음 알아주는 게 너무 오래 걸렸다. 미안해




See you on the other side!


 그렇게 사람을 피해 다녔는데도 좋은 사람들은 한 마디 예고도 없이 나한테 훅- 하고 안겨들어왔다. 아그라의 라무네 가족들이 그랬다. 인도 물갈이로 보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때 라무는 자기 식당 주방을 쓰게 해 줬다. 라무가 준비해준 인도산 재료로 한국식 계란죽을 했다. 아플 때 먹는 죽이 이렇게 맛있었구나. 한입 먹을 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베트남의 조이, 발리나 네팔에서 만났던 사람들 모두 바람처럼 스쳐가는 이 나그네를 가족처럼 대해줬다.

마치 영원한 안녕은 없을 것처럼


 "See you on the other side! (지구 반대편에서 또 만나자)" 우리는 헤어질 때 이렇게 인사했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다음에도 우연히, 지구의 반대편에서 만나자고. 다시 만날 약속을 하며 기쁘게 헤어졌다. 무례한 사람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따뜻한 사람을 통해 낫는다.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아마 다시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괜찮아질 것이다. 지구 곳곳에 살고 있는 나의 가족들로 인하여.





"아빠 죽으러 간다, 잘 있어" [끝]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