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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Feb 12. 2020

신선한 문화 충격, 영국의 수영장

 초등학생 아들을 여자 탈의실에 데려가도 된다고요?

가족 세 명이 늘 같이 가던 수영장에 아들과 나, 단 둘만 간 적이 있다. 혼자 탈의실을 보내도 될 듯한 나이지만, 아빠와 함께 가던 곳을 혼자 보내는 건 처음이라, “저 나이의 애를 혼자 탈의실에 보내도 되나?”라는 뜻으로 리셉션 직원에게 물었더니,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내 의향을 넘겨짚었는지, 엉뚱하게도 “지금 사람이 많이 없으니 여자 탈의실에 같이 가도 된다”는 답변이 나왔다.  


엉? 9세 남자를 여자 탈의실에? 애가 너무 어려 보이나?  


아쉽게도, 두 어른의 대화도 옆에서 듣고, 탈의실 입구에 적힌 연령에 관한 문구까지 다 읽어 내린 아들의 극렬한 거부로 두 모자의 여자 탈의실 잠입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내 수영장, Hadrian Swimming Pool 웹사이트


영국의 수영장은 겉보기엔 한국과 다를 바가 없지만, 탈의실에 들어갈 수 있는 이성의 나이가 만 8세 미만이라는 점이 크게 다르다. 현재 만 5세에서 4세로 낮추려 하는 한국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관대한 셈이다. 이마저도 탈의실까지 따라갈 동성의 보호자가 없는 아이는 이성의 탈의실에 갈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 때문에 아들의 여자 탈의실 입장이 허용될 뻔한 것이다. 


민망스럽게 왜 그 나이까지 허락하는지 영국의 수영장에 한 번이라도 가보면 알 수 있다. 


샤워장 

일정 간격으로 달려 있는 샤워기를 한 사람씩 이용하는 점은 한국과 같다. 그런데 씻고 있는 사람을 보면 거의 다 수영복을 입은 채다. 특히나 수영을 끝낸 후 머리도 감고 몸을 다 씻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라서, 주로 연세가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분들은 개의치 않는 듯하길래, 갓 서른이 된 나이에 이 분들의 행동에 편승해 한국에서의 습관을 꿋꿋이 지킨 적이 있다. 그러다가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일을 맞닥뜨린 적이 있다. 


15-6세 전후인 듯한 남자가 여자 샤워장에 들어온 것이다. 갑자기 뛰어든 것도 아닌 자연스럽게 갈 길을 가듯, 내 옆을 스쳐가는 것이다. 순간 너무 놀라서 샤워기 밑에서 하던 행동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다행히 소리는 안 질렀다). 놀랍게도 나 말고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곧이어 온화한 표정의 중년 여성이 따라 들어오는 걸 보고서야 약간이나마 진정이 되었다.  


당시 남자가 쓰고 있던 독특한 구조의 안경과 그를 따라온 여성의 행동으로 보아, 장애아 아들과 어머니 (혹은 도우미)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내가 다니던 수영장에서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다. 


영국 수영장에서 알몸 샤워하던 나의 습관은 이때부터 끝내버렸다. 


어린 학생을 위한 배려

“학생들이 이용하는 시간에는 수영복을 입고 샤워를 해주십시오”라는 안내문을 붙인 수영장이 있다. 수영 강습이 정규 과목으로 지정된 영국의 초등학교는 근처 수영장을 강습장으로 이용한다. 같은 여자/남자라도 어른의 벗은 몸을 아이에게 보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 수영장과 학교 측의 요청이다. 


초등학교에서 수영 수업도 받았고 지금은 또래 청소년들처럼 중등학교 체육 수업도 받는 아들의 말에 따르면, 같은 반 남학생들끼리도 알몸으로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목욕탕 문화가 없는 영국에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탈의실

사물함과 옷걸이, 거울, 헤어 드라이기 등이 배치된 것은 한국과 비슷하다. 그런데 샤워를 마친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은 탈의실 벽면의 화장실 칸막이처럼 생긴 또 다른 공간이다. 바로 개인 탈의실이다. 기저귀 교환대와 아이를 안전하게 앉혀둘 수 있는 붙박이 의자도 있어서 자녀를 데리고 들어가도 된다.  


남과 여로 구별되는 탈의실 외에 가족 탈의실도 간혹 있다. 이곳은 당연히 남녀 공용이고, 가족이 다 들어가니 칸막이 탈의실 공간도 넓다. 온 가족이 수영장에 가는데 샴푸 한 통만 챙겨도 되지, 혼자서만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족 탈의실을 애용했다. 


엄마 따라 목욕탕에 오는 남자아이의 나이가 오랜 세월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었듯, 영국의 독특한 수영장 문화에도 불만의 목소리는 있다. 여성의 경우, 탈의실 이성 출입 연령으로 만 8세는 너무 많다, 남성의 경우, 애들 앞에서 옷 벗고 샤워하는 걸 왜 막느냐가 불만이다.  


술 깨려고 사우나에 들렀다가 화들짝 놀라다.

머물고 있는 호텔에 사우나가 있다고 하길래, 전날 마신 술도 깨고 휴식도 취할 겸 사우나에 들렀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사우나로 향하는 문을 열려는 순간, 문 너머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의 소리, 물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어, 문틈으로 엿보니 수십 명의 남녀노소가 모여 있는 수영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영국의 호텔에서 사우나를 이용하려다 낭패를 볼 뻔한 한국인 남성의 경험담이다. 술 깨러 사우나에 들렀다가, 술이 저절로 깨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분의 이야기다. 우연히 같은 행사 때문에, 같은 날 같은 호텔에 머물다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들은 사연이다.  


영국에는 수영장과 호텔, 헬스장, 온천 등의 부대시설로 사우나를 운영한다. 수영장 한편에 작은 방으로 된 사우나는 입구 전체가 투명 유리이거나 아예 문이 없는 곳도 있어서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수영하다가 들어가 잠시 쉬거나 운동을 마치고 피로를 풀기 위해 혹은 다이어트의 목적으로 땀을 내는 곳이다.  


헬스장과 온천에 딸린 사우나 (풀장 옆, 파란색으로 보이는 곳이 사우나), Balance Health Club & Spa 웹사이트


수영장이나 헬스장의 한편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 사우나 시설이 운영되는 곳은 완전히 개방된 구조가 아니라서 여성 전용과 남성 전용 사우나도 있다. 하지만 요일제로 ‘남자 사우나의 날’, ‘여자 사우나의 날’, ‘남녀 공용 사우나의 날’로 구분하는 곳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용 방법을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어떤 형태의 사우나를 가더라도 수영복이나 가운, 큰 수건 정도는 걸치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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