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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Oct 30. 2021

영국의 밤 문화를 즐기려면 조심해야 할 이것

"딸이 클럽에 갔다가 주삿바늘에 찔려 8시간이나 병원 신세를 졌어요."


몇 해 전 친구가 페이스북에 공유한 글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어 지나치려다, Spike라는 익숙한 단어가 눈에 띄어 끝까지 읽게 되었다.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관련 기사까지 찾아보았다. 


영국의 나이트클럽이나 술집, 파티장에서는 누군가의 술잔에 약물을 넣는 범죄가 간혹 발생한다. 다른 사람의 음료나 술에 약물을 몰래 넣는 행위를 Spike라고 한다. 술잔이든 음료 잔이든 몰래 넣는 행위가 모두 해당하며 약물이나 독약, 마약은 물론 술을 넣는 것까지 포함된다. 넣는 행위 자체로도 범죄가 성립되며, 상대가 이를 마신 후 정신을 잃으면 추가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 Spike는 동사이므로 범죄 의미에서 이 단어를 쓰려면 Spiking이라 해야 하고, 한국어로 옮기면 '남의 음료나 음식에 술이나 약을 몰래 타는 행위'의 뜻이 된다. 간혹, 데이트 강간이라는 단어도 쓰지만 이는 약물이나 위력을 이용하여 강간을 저지르는 범죄만 가리킨다. Spiking의 의미와 꼭 맞아떨어지는 한국어 범죄 용어가 없는 듯하니 이 자리에서는 편의상 스파이킹이라 간단히 쓰겠다.


사진: Swindon Advertiser


지금껏 스파이킹 범죄는 주로 술잔에 약물을 넣는 형태였다. 그런데, 친구가 공유한 글은 새로운 형태의 스파이킹을 당한 피해자의 사례였다. 술과 음악, 조명이 어우러져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남의 신체에 주삿바늘을 찔러 약물을 주입한다고 하니 경악할 일이지 않은가? 단순히 몸속에 주입된 약물에 의한 피해만 걱정하는 건 아니다. 불법으로 저지르는 행위인 만큼 주삿바늘의 위생도 우려할 일이다.


이 글을 공유한 친구는 당시 대학 신입생 딸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원글을 쓴 사람 또한 비슷한 나이의 딸을 두었다. 입시 부담이 끝나고 집과 부모를 떠나 처음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여대생이 이런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들의 부모와 또래 여성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딸의 사연을 공유한 것이리라. 영국에서의 스파이킹 피해 사례 증가도 대학교가 개강을 맞이한 시기와 맞물린다.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술을 마실 때 자신의 술잔을 감시하고 낯선 사람이 건네는 술을 거절하라는 주의가 내려지기도 한다. 또한, 학교 근처 업소를 대상으로 범죄 예방을 위한 홍보도 한다. 술잔에 덮개를 부착하고 클럽에 입장하는 손님의 몸수색, 소지품 검사를 실시하도록 요구한다. 


아래 사진에는 스파이킹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영국의 술집과 클럽에 등장한 음료와 술을 볼 수 있다. 스티커와 덮개 형태로 음료를 보호하고 있다.


사진: ITV News Anglia


술잔에 약물을 넣는 기존의 스파이킹 범죄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자, 아직은 소수 사례에 해당하지만, 주사기를 이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스파이킹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범인이 여대생만 노린다고 할 수 없다. 피해자 중 다수가 여성이면서 30대와 40대도 있으며 여성에게만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술집이나 클럽에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생소한 환경에서 술을 마신다면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 처음 오는 가족에게 스파이킹 범죄에 대해 경고해 준 적이 있다. 대학생 딸을 두었으니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다. 하지만, 이 집의 아버지가 그토록 엄한 분인지 몰랐다. 영국에 거주하는 동안 두 딸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집에 가거나 밤늦게 모임을 가지는 것을 극도로 반대했다고 한다. 그 모든 반대의 근거로 내가 말한 '영국의 스파이킹 주의보'가 깔려 있다. 


술집이나 클럽에 갈 때 조심하라고 했지, 아예 가지 말라고는 안 했는데...


내가 건넨 영국에서의 다른 주의사항은 선택적으로만 실천하던 가족이다. 어쨌건, 이 집 따님들에게 내가 큰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도 영국의 클럽과 술집을 범죄의 온상으로 여겨 밤 문화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가족에게 강요하지 말았으면 한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준수하면 영국의 밤 문화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1. 자신의 술잔을 감시한다.

물론 쉽지 않다. 먹고 마시고 즐기러 간 곳에서 술잔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쉽지 않지만 자신의 술잔이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염두에 두자. 낯선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에서 술을 마시다가 잔을 남겨둔 채 춤을 추러 가거나 화장실에 가는 순간을 범죄자들이 노린다. 앞서 나온 사진처럼 술에 덮개를 씌우는 업소를 이용해 보자.


2. 친구들과 함께 어울린다. 

이 항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자신의 술잔을 감시하더라도 주삿바늘에 찔리거나 다른 교묘한 신종 범죄에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귀가하기 전까지 친구들과 어울리고 귀가 후에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상 징후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범죄에 당했다 싶으면 친구와 주변 사람, 업소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낯선 곳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행위도 위험하다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 텐데 이제 세상이 무서워졌다).


3. 낯선 사람을 경계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경계를 풀면 안 된다. 낯선 이가 권하는 술이나 음료는 마시지 않는 편이 좋다. 또한, 무턱대고 이들을 따라가는 행위도 위험하다. 주변 사람을 모두 잠정적인 범죄자로 취급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지만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4. 과도한 음주를 삼간다.

누군가 내 잔에 약을 타는 일이 없더라도, 과도한 음주만으로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영국에는 청량음료와 알코올이 결합된 형태의 음료인 '알코팝'이 흔하다. 달콤한 맛과 현란한 색상에 빠져 계속 마시다가 자신도 모르게 금방 취하기 쉽다.


5. 술을 마신 후 이상 징후가 있는지 확인한다.

어떤 종류의 술에 어떤 약물을 혼합했는지에 따라 징후가 다르겠지만 지나치게 급속도로 술에 취하거나 근육 마비, 구토 등을 동반할 수 있다. 마약에 의한 환각 증세도 있다. 특히, 주삿바늘의 경우 맞는 순간 찌르는 통증과 함께 신체 부위에 바늘 자국이 남을 수 있다. 또한, 스파이킹 피해자 대부분이 만취했을 때처럼 필름이 끊기는 현상을 겪는다고 한다. 의심스러운 징후가 있으면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되도록 빨리 병원을 찾자.




1년 반가량 코로나 봉쇄령이 시행되던 영국에서는 일부 필수 업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산업이 꽁꽁 묶여 있었다. 그중 술집과 클럽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타격을 받았다. 그러다가 2021년 7월, 봉쇄령이 해제되자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사람들이 술집과 클럽에 몰려들면서 관련 업체들이 오랜 침체 끝에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틈 타 그동안 움츠러들었던 스파이킹 범죄마저 한꺼번에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안전하게 밤 문화를 즐기자.


끝커버 이미지: Photo by Anthony DELANOIX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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