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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Sep 10. 2019

모라잔의 10분 글쓰기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10분간의 자유로운 이야기 <9>

- 흔히 많은 글쓰기 창작 교육에서 하고 있는  10분 글쓰기는 10분간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주고 필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10분 글쓰기는 소설(혹은 동화)을 기반으로 한  저의 자유로운 글쓰기가 될 것입니다. 매일 10분간 쓴 글을 맞춤법 수정 이외에는 가감 없이 게재합니다. -



“나랑 사귈래?”

민성이가 카톡으로 보내온 말은 단 두 마디뿐이었다. 나는 두 마디 말의 자음과 모음을 따로따로 떼어서 하나씩 세어 보았다. 물음표까지 합해도 열세 개밖에 안 된다. 다시 세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카톡에 대답을 다는 대신 핸드폰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가방이 무거워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가방에서 다시 희미한 진동이 느껴지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다시 핸드폰을 꺼내면 무심한 듯 정 없이 보이는 그 두 마디 말을 나는 다시 하나씩 세기 시작할 게 분명하다.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직선이 아니었다. 길고 긴 곡선들이 이어져서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길……. 그 곡선들 사이사이에는 여러 학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와 우리 집 사이 거리는 채 200미터도 안되는데, 나는 이 짧은 길을 오늘도 멀리 돌고 돌아 한참의 항해를 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민성이랑 사귀게 되면 이 기나긴 항해가 짧게 느껴질까? 민성이의 속없는 웃음을 보면, 나도 따라 웃게 된다. 그러면 내 마음속 근심도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건 효과가 지속적이지 않은 처방전에 불과하다. 게다가 민성이란 처방전에 지독하게 중독될 만큼의 시간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항해에서 손님을 타고 내리게 하는 선장은 내가 아니니까. 

 그러기에 민성이의 카톡을 농담쯤으로 웃어넘기고 다시 길고 긴 항해 길을 재촉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 테지만,  나는 암초에 걸린 배처럼 일부러 버스 한 대를 보내버리고 윤기 나는 정류장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뭘 어쩌자는 것인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당황스러운 마음과 달리 내 손은 기어이 다시 가방을 열어 핸드폰을 꺼내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핸드폰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화면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 나는 잠시 눈을 찡그리고 카톡을 다시 살펴보았다. 

“나랑 사귈래?”

 역시 이 말 외엔 다른 메시지는 없었다. 민성이는 내가 이미 그 메시지를 읽었고 몇 분 동안 반응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민성이었지만 나는 괜히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내가 민성이에게 듣고 싶은 말이 단지 열세 개의 자음 모음으로 이루어진 차가운 글자 조각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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