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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Sep 17. 2019

모라잔의 10분 글쓰기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10분간의 자유로운 이야기 <13>

- 흔히 많은 글쓰기 창작 교육에서 하고 있는  10분 글쓰기는 10분간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주고 필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10분 글쓰기는 소설(혹은 동화)을 기반으로 한  저의 자유로운 글쓰기가 될 것입니다. 매일 10분간 쓴 글을 맞춤법 수정 이외에는 가감 없이 게재합니다. -



 아주 고요한 날, 비가 내리면 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비 냄새가 아니라 빗방울이 땅에 부딪히고 다시 튀어 오르면서 한 움큼 가져오는 흙냄새다. 나는 이 냄새가 좋다. 쿰쿰하고 뭔가 생명이 꿈틀거리는 냄새……. 그 냄새를 맡고 있는 날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고 눈은 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보게 된다. 

 풍경이 아득하고 서글프다. 물기를 가득 품은 도화지에 그려지는 수채화처럼 점점 번져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나는 그와 마셨던 커피 한잔 이 생각난다. 

 그와 마신 커피 향은  비 냄새보다 더 진하지 못했다. 마시는 커피에 흙 맛이 났다. 그때 그는 이미 예정된 이별을 알고 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내 마음에도 무거운 비가 내렸다. 

 “이제  만나 수 없는 거지?”

 한 참의 침묵, 그리고 거실 가득 피어오른 비 냄새 끝자락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조차 없었다. 그저 애꿎은 커피 잔을 손으로 계속 어루만질 뿐이었다.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의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커피를 반이나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피 향은 이미 비 냄새로 지워져 있었고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유실물 센터에 찾아온 사람처럼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는 울고 있었을까? 아니면 아무 표정이 없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그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5년이 지났다. 그때처럼 아주 조용한 날,  비가 내리고 있다. 바닥에서부터 비 냄새가 조금씩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창문을 열고 진하게 베어 나오는 옛사랑의 기억을 천천히 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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