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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Sep 09. 2019

모라잔의 10분 글쓰기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10분간의 자유로운 이야기 <8>

- 흔히 많은 글쓰기 창작 교육에서 하고 있는  10분 글쓰기는 10분간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주고 필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10분 글쓰기는 소설(혹은 동화)을 기반으로 한  저의 자유로운 글쓰기가 될 것입니다. 매일 10분간 쓴 글을 맞춤법 수정 이외에는 가감 없이 게재합니다. -


 하얀 운동화였다. 운동화 끈은 분홍색이었지만 선명하진 않은 파스텔 톤이었다. 전체적으로 하얗고 깨끗해 보이는 운동화……. 벽 전체에 맥주 절은 냄새가 났다. 저 운동화에선 무슨 냄새가 날까? 동아리 방의 어수선한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켤레의 운동화는 동아리방 창문턱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치 예의를 다하고 있는 사람처럼 공손하게……. 선우는 동아리 의자에 걸터앉아 아무 말 없이 운동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한 시간째다. 그런데도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저렇게 새하얗고 저렇게 가지런한 운동화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선우는 눈을 크게 뜨고 운동화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급기야 운동화의 작은 문양이나 왼쪽과 오른쪽 매듭이 묶인 분홍색 끈의 작고 미세한 차이도 알아차릴 지경이 되었다. 

 “형 빨리 왔네. 오늘 강의 없어?”

 동아리 문이 열리고 민태가 무심히 선우 옆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동아리 방이 있는 건물 전체가 금연이었지만 담배를 피우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전히 시선은 운동화에 그대로 두었다.

 “뛰어내린 사람이 수학과라고 하던데 우리 동아리 사람이었어?”

 “아니.”

 선우는 짧게 대답을 하고 왼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민태가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켰다. 담배 맛이 썼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소주병과 맥주병들, 낡은 타자기와 아무렇게나 묶어 놓은 원고지 더미로 가득 찬 동아리 방 창문은 이상하게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치 건물과 경계를 허물어 버리려는 듯이…….

 어젯밤 새벽에 선우는 학교 옆 선술집에서 잔뜩 취한 채 비틀거렸고 새하얀 눈밭 위에 자신의 추한 속을 다 게워내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어가던 그 시각 아무도 없던 동아리 방에 그가 왔고 문을 열고 창문턱을 올라갔다. 어쩌면 그는 키가 크지 않아 동아리 의자를 밝고 간신히 그곳에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경계 없이 불어오는 추운 날 그렇게 가지런히 운동화를 벗어놓은 채로 그는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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