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비처럼 쏟아지는 작은 파티

진짜배기 내 친구들에게

by 향순

" 아, 대박 신난다. 우리 드디어 내일 만나는 거야? "

" 배가 터지도록 먹고 밤새도록 수다 떨자! "

" 응. 그래 얼마 전에 네 생일이었는데 제대로 축하해주지도 못했잖아. "

" 야 무슨. 내일의 주인공은 너라고 너. 왜 그런 거 있잖아 <브라이덜 샤워>라고 외국애들 결혼하기 전에 친구들끼리 만나서 파티하는 거. "

" 음 근데 그런 거까지 챙겨서 놀 거까진 없는데. 그냥 무조건 많이 먹고 늘어지게 쉬자. 수영장도 있고! "

" 오예! "


오랜만에 함께한 친구들 두 명과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공휴일을 맞아 가고 싶었던 호텔을 십시일반 돈을 모아 예약한 우리 셋은 한 달 전부터 이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직 한의대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 힘든 실습을 하고 있는 내 친구 세희는 우리의 비밀스러운 이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먼길을 눈썹이 빠지도록 달려왔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같이 퇴사를 앞두고 있는 다른 친구 연수도 반차를 내고 막히는 도로 위에서 한참을 씨름하다가 이내 합류했다.


" S, 쟤 또 일찍 와서 나 올 때까지 서울역에서 기다린 거 있지.(ㅠㅠ) "

" 못 산다 못살아. 항상 한 시간씩 일찍 온다니까. 우리가 앞으로 약속시간을 일부러 뒤로 한 시간 미뤄서 말해야겠다. "

" 크큭 그런다고 내가 늦게 올 거 같으냐!! 와아 놀자!!!! "


세희와 연수는 그리고 나 S는 우리 모두 지방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1회 졸업생이다. 개인 생활 위주로 돌아가서 소속감이 고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대학교보다는 5개 반뿐이 안 되는 전체 클래스에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허구한 날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고민을 나눴던 이 친구들이 머리가 클수록 더 소중해지고 있다. 각자의 회사를 다니고, 각자의 꿈을 그리고, 각자의 사랑을 하느라 우리 셋이 예전처럼 겹치는 부분은 점점 사그라들어가고 있지만. 겨우 약속을 맞춰야만 모이게 되는 늙어가는 소리는 아직 얼굴에 주름 하나 제대로 잡혀보지 못한 우리 같은 풋내기들이어도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게다가 오늘은 내 결혼식을 몇 주 앞두고 만나는 더 귀한 날! 말이 쉬워 브라이덜 샤워지. 그냥 장소를 잡아서 배 터지게 먹고 싶은걸 다 늘어놓고 수백 가지 폭풍 셀프 사진을 남기는 날이다. 우리 셋 다 이제는 더더욱 만나기 어려워진다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한 건지 그날 하룻밤 동안 우리는 사진을 각각 200장씩은 찍어제꼈다. 각종 간식과 안주, 음료들을 호텔 바로 앞 마트에서 사는 도중, 만날 때마다 한 번씩은 꼭 목걸이형 카드 지갑을 잃어버리는 세 뭐 양은 이번에도 화려하게 카드를 잃어버려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우리의 의식은 막을 올렸다(문제의 그 카드 목걸이 지갑은 세희가 눈물을 뿌리며 마트 안을 헤매다가 우리 카트 안에서 발견했지만...) 내가 떠나고 나면 이제는 이런 순간들도 그립겠지.

" 야 이게 뭐야. 웬 풍선? 왜 가져왔어? "

" 응.. 이게 뭐냐면.. 비장의 무기라고나 할까. 그래도 특별한 날인데 이거 불어서 사진 찍을 거야. "

" 으아.. 오그라들게 뭘 이런 걸 다 준비했어. 근데 너무 예쁘다. 진짜 확실히 풍선 있으니까 분위기가 확 사네. "

" 연수는 너 미국 가져가라고 십자수 세트랑 스크래치북까지 사 왔어. "

" 뭐? 진짜? 그런 거 진짜 안 해도 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했는데 너네 진짜 새삼스럽게 왜 그랴. "

" 아냐. 그냥 가서 친구들 생각나고 마음 적적하고 하면 하라고. 우리 S 이제 가면 언제 보냐. "

" 고마워. 이 바보들아. 에구에구. "

" 우리 생각 많이 해라. S. 이거 바람 넣어서 저기 붙이는 거나 좀 도와줘. "

" 흐어엉. 엉. "


.......

" 푸하. 빵. "

" 뭔 일이야. 풍선 터졌어? "

" 헐. 이거 어떡하지. 테이프 테이프. "

그 날 세희는 풍선을 불다가 몇 번씩 터뜨려서 테이프로 대 수술을 집도하고 지나가는 하우스 키핑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아, 물론 세희답게 테이프 가져오는 걸 까먹어서 입실하자마자 로비에 스카치테이프를 빌려달라는 신고식을 치렀다.) 그냥 사진 몇 장 찍고 추억이나 만들어보자고 만난 모임인데 참 이것저것 많이도 바리바리 챙겨 온 아이들. 예쁜 풍선에 작은 케이크에 선물, 맥주, 게다가 머리에 쓸 화관과 꽃팔찌, 옷 색깔까지 파란색, 노란색으로 맞춰서 입고 왔다. 미리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니 나는 참 엄청난 선물을 받은 셈. 예전에 SNS의 어떤 웹툰에서 그리길, 슬플 때 같이 슬퍼해주는 친구들보다 기쁘고 행복한 일이 있을 때 진정하게 축하해주고 같이 기뻐해 주는 친구들이 있으면 그게 진짜배기라고 했는데. 내 친구들은 같이 기뻐해 주는 걸 넘어서서 함께 행복함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다. 나는 사실 정말 친구가 몇 없다. 소심하고 혼자 지내길 좋아해서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몇 달이고 잠수 타버리는 내게는 가끔씩 너무 고마운 마음에 버거운 이 아이들뿐이다.

따뜻한 수영장 물에 반쯤 몸을 담그고 머리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해가 지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이 친구들의 행복을 빌어보았다. '삶이 이렇게도 다채롭고 행복한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내 마음 한편에 덧칠되어 있는 우울한 감정을 이렇게 쉽게 날려버려 주다니. 우울함에 사람만 한 약은 없나 보다. 그 날 우리가 함께한 호텔에는 값비싼 조식과 최신 게임을 할 수 있는 시설, 아름답고 웅장한 푸른 나무들이 가득했지만 내 마음속 최고의 브라이덜 샤워는 세희와 연수가 나를 위해 준비해준 야식 테이블과 우스꽝스러운 사진들이었다. 이런 추억들을 만들어 선물하고 또 지켜내기 위해서 나는 돈을 벌었던 것이라고 지난날을 위로도 해보면서. (썩 괜찮은 직장 생활이었다!) 또 한 번 멋있게 재기해서 이 아이들이 어려울 때도 거뜬하게 이런 추억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는 친구이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밤새도록 수다는 계속되었다.


" 우리 퇴사 겸 생일 겸 결혼 겸 축하파티네 완전. 연수야 곧 있을 퇴사를 축하한다. 원래 자존감 넘치는 용감한 애였잖어. 어딜 가도 지금보다는 잘할 거야. "

" 응 그래서 관뒀어. 잘 되겠지 뭐. 지금 당장은 엄청 신난다. "



" 야 이거봐. 조식 먹고 왔더니 양말에 구멍 났어. "

" 뭐야. 두 번째 발가락만 나왔냐 겁나 길다. 크큭 "

" 으악 저리 치워어. "

" 푸핰. "


연수는 붙임성이 좋고 사람을 배경으로 판단하지 않는 녀석이다. 정말 두루두루 잘 친해지고 한번 마음을 연 상대라면 상대와 오랜 기간 연락이 끊어졌더라도 웃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먼저 알뜰살뜰하게 챙긴다. 우리 중에 제일 먼저 직장생활을 했고 아르바이트도 엄청 다양하게 국제적으로 했다. 우리는 돈과 시간, 용기가 없다는 핑계로 선뜻 가지 못하는 해외도 착실하게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몇 달씩 훌쩍 떠나기도 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 친구가 한 명쯤은 있는 용감한 친구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특별하게 연수에게 연락을 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참 유쾌하고 귀여운 구석이 엄청 많은 애라고 생각해왔었지만 몇 년 후에 무심코 먼저 연락을 걸어온 건 역시나 연수 쪽이었고 내가 직장을 잡지 못해 방황했을 시기에 진심 어린 위로를 참 많이도 해줬었다. 이번 파티에서도 십자수 세트와 스크래치북을 사 온 걸 보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는 참 능력 있는 친구다. 게다가 이 녀석의 차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 바다에 가지도 못해봤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연수가 가진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고 서글서글한 매력에 빠져서 무심코 나도 그런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연수는 보통 내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듣는 때가 종종 있다. 흐흐. 재미난 녀석.


세희는 물건을 자꾸 잃어버리고 어디론가 곧잘 혼자 사라져서 곁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친구다. 두 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참 잘 챙기면서도 어머니 아버지 속 한번 잘 안 상하게 하는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바늘 같은 소리를 무심코 했다가는 풍선처럼 터져버리는 어린이 같은 순수함이 묻어 나온다. 과외하러 간 학생의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학생의 운동화를 신고 나와서 길가다 자기 발을 보고 깜짝 놀라 미안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하루 종일 그것만 신경 쓰는 묘한 감성의 소유자, 세희.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서 한의사보다는 심리학자가 되었다면 참 조곤조곤하게 잘했을 거 같다. 물론, 지금도 가끔 맥을 짚어주면서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진단해주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종종 열리는 이 몇 초간의 세션을 참 좋아한다.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지, 세희와 나는 고등학교 때 윤리 선생님을 같이 좋아했었고, 청춘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그런 장면을 둘이서 참 많이도 연출했었다. 그래서 우리가 고등학교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 엄마가 내게 옛날 학창 시절 떠올리며 이야기해주는 옛날 추억의 그 시절 친구 같은 파장이 일곤 한다. 사진 찍는 것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아직도 소녀 감성이 충만해서 같이 있으면 나까지 정화되는 느낌을 주는 따뜻한 친구.




꼭 친구들이 칠공주파를 이루어야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쭈욱 늘어서서 비싼 양장을 맞춰 입고 아이돌 같은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아도 썩 괜찮다는 말이다. 내 카카오톡에는 직장에서 만난 인연을 제외한다면 채 오십 명도 안 되는 가족 친구들밖에 없다.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참 손에 꼽을 정도다. 곱씹어보면, 사람들은 제각각 살아가면서 수많은 타인들을 만나며 자신의 울타리에 넣는 방식을 전부 다르게 가지고 있다. 나는 다만 내 울타리에 내가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람들만 넣어서 최대한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무관심으로 상처를 주는 일은 막고 싶을 뿐이다. 아무튼간에 이렇게 변덕스럽고 까다로운 나랑 어울려주는 세희나 연수 같은 아이들은 꽤 고마운 친구들이지만.

지난번에 나는 결혼식에 올 내 인연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남편에게 맥락 없는 하소연을 했었다. 결혼을 준비하기 전에는 나도 이런 소리를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때가 되니 외부 사람들의 눈총이 두려우니 나의 하객 아르바이트라도 신청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가벼운 말을 꺼내버린 것이다. 하지만 내 두 soul mate들이 준비해준 이 작은 파티는 내 불안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내가 가진 짧은 시간은 원래 있었던 소중한 인연들을 더 챙겨주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지속적으로 근절해야겠다고 말했던 지난날의 어느 글에서처럼 나의 귀한 인연들도 보여주기 식으로 만들어 가지는 않겠다. 이번 생에 친구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를 준 내 동무들. 두 명, 아니 단 한 명으로도 우정이 비처럼 쏟아지게 하는 마법은 언제나 가능하다.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 : ‘신부에게 우정이 비처럼 쏟아진다’라는 뜻으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신부를 축하하기 위해 여는 파티를 말한다. 16세기 유럽에서 결혼을 올릴 형편이 되지 못하는 신부를 위해 신부의 친구들이 결혼 자금을 모아 선물한 것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