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조세핀 Feb 07. 2021

요리하려고 먼 곳에서 시집 온 것은 아닙니다.

외국 시월드와 요리

  시어머니는 유별난 성향이 있으셨다.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던 브라이덜 샤워 파티를 해주기도 하셨고, 생일 파티를 거하게 열어주시기도 하셨다. 나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이벤트에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시어머니는 경조사 때마다 특별히 챙겨주셨다. 나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마다 카드를 직접 써서 주시기도 했고, 선물도 주셨다. 그런 시어머니께 빈손으로 갈 수 없어서 또 신경을 써서 선물을 해드렸다. 그냥 주는 선물은 특별하지 않는 것 같아서 한국에서 직접 산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사진을 넣어 만든 카드를 드리기도 했다. 시댁은 나의 그런 노력에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해가 가면 갈수록 번거롭고 힘들었다. 그런 것에 대해 누누이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네가 안 하면 그만이라는 대답밖에 없었다.


  시어머니는 내가 결혼하고 나서도 크게 태도를 바꾸시진 않으셨다. 다만, 자신의 생활방식이나 철학을 좀 강요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꾸 요리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주셨다. 집에서 요리를 충분히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에 안 차신 것 같았다. 이민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요리의 연속이다. 어딜 가서 배달 음식 구하기도 쉽지 않고, 외식비는 팁에다가 세금까지 내야 하니 한국과 비교하면 비싸고 맛없어서 외식도 잘 안 하게 된다. 거기다가 밖에서 음식을 계속 사 먹다가 비만이 되기도 쉽기에, 건강을 생각하려면 집밥을 챙겨 먹어야 했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미국식을 강요하셨다. 자신의 아들에게 미국식 요리를 해먹여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시어머니에게 "왜 당신의 아들은 요리를 배우지 않았나요?"라고 반문했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사과를 하시면서도 "남편이 돈을 벌어오니 너는 요리를 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나도 전업주부니 놀고먹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직장에서 돈을 벌어오기 시작했을 때도 "남편이 너보다 일하는 시간도 더 많고, 더 돈을 많이 벌어오니 네가 요리를 잘해서 둘이 밥을 잘 챙겨 먹어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전 남편은 요리를 전혀 할 줄 몰라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하나둘씩 하라고 시켜서 요리를 하게 되었다. 간단한 볶음밥도 처음에 할 줄 몰랐던 그는 나중에는 요리 초급은 벗어나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미국에 시집왔으니 미국식 요리를 해야 한다며 영어로 된 레시피도 엄청 많이 주셨다. 그 나라에 왔으니 그 나라 문화를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루 세끼 니글거리는 양식을 먹으려니 내 위장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도 남편을 위해 무엇인가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시도해보기는 했지만, 결국 남편은 자기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면서, 시댁에서 음식을 들고 와 먹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은 날은 한국 음식을 해서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점점 남편은 한국 음식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시댁에서 싸온 음식들로 냉장고를 채워 넣게 되었다. 물론 시어머니도 내 냉장고를 막 열어보시기도 하셔서, 나는 시어머니께 주의를 줘야 했다.




  시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요리와 관련된 선물을 지속적으로 해주셨다. 부담스러울 만큼이었다. 나는 베이킹도 즐겨하지 않고, 요리도 간단한 요리만 하는 스타일이라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음식을 하지 않았다. 전 남편이나 나나 둘이서 먹는 양도 적어서 많은 양의 음식이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는 자신의 집처럼 갖추어 식사를 하는 것을 기대하셨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내 생일이라던지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같은 날이나 특별한 날에는 요리 도구를 선물하기 시작했다.


  속이 상했던 것은 미국의 명절인 크리스마스 때였다. 시어머니는 시누이에게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것을 선물했는데, 나에게는 요리 냄비나 요리에 관련된 것만 선물을 하셨다. 아마도 시누이가 결혼 전이라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좀 속상하기는 했다. 그리고 시누이가 결혼하고 나서도, 어김없이 나한테는 집안에 필요한 용품들만 선물로 가득했다. 시누이도 집에 필요한 용품들을 선물 받기는 했지만, 나한테 하는 것만큼 노골적으로 주방용품이 쏟아지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께 나도 옷을 선물로 받고 싶다고 했다. 선물로 비싼 냄비를 받는 대신, 그 가격에 옷을 받고 싶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그다음 해에는 나의 요구를 받아들여 옷을 선물해주셨다. 대신 내 생일에는 또 주방용품이 선물로 들어왔다.


  선물을 안 주는 것보단 나은데, 요리하려고 시집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예쁘게 보이고 싶고, 꾸미고 싶은데 무슨 선물이 다 냄비며 국자며, 식칼이며 달걀 삶는 기계 같은 것만 있으니 싫었다. 이것이 아줌마와 아가씨의 차이인 걸까. 아니면 며느리라서 자기 아들 더 잘 챙기라는 시월드의 바람인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에게는 딱히 주방용품을 선물로 주지 않으면서 남녀 차이가 있는 걸까. 이것도 문화 차이인 건지 잘 모르겠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photo: https://www.eatthis.com/cooking-tips-for-weight-loss/

이전 08화 국제결혼 후 남편 성 따르기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국제 이혼 일기2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