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 문과출신 N잡러 이야기
사실 저는 막연하나마 비자발적 백수가 되기 전 저의 미래를 구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직을 위해서 수차례의 서류 지원과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어렴풋이 기업, 특히 스타트업들의 니즈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스타트업에서도 HR은 필요한 직무입니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은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일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굳이 시니어 HR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타 업무의 담당자가 HR을 겸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초기의 HR은 주로 비용과 4대 보험 등 행정에 관한 이슈가 많기 때문에 회계파트에서 겸직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혹은 인사총무 업무를 모두 할 수 있는 주니어 담당자를 채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스타트업은 인사보다는 총무에 더 많은 이슈가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는 총무경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성장이 시작될 때입니다. HR을 해보신 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3과 10의 법칙입니다.
조직의 규모가 3배씩 커질 때마다, 즉 10명에서 30명, 30명에서 90~100명 등으로 성장할 때마다 인사관리 방식, 의사결정 방식 등 조직의 모든 시스템과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성원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지요. 또한, 준수해야 할 각종 법령과 규제도 많습니다.
특히 순식간에 성장을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이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주니어 담당자가 맡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바로 이때 팀장급의 시니어 HR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미 구성원의 수가 100명이 된 이후에는 HR팀장을 새로 채용한다 해도 이미 때는 늦습니다. 구성원의 숫자가 많아지기 전에 선제적인 대응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스타트업은 비용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서 시니어 HR의 채용을 어려워합니다. 이럴 때 HR팀장 구독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저렴한 비용으로 HR 팀장급 시니어와 함께 일을 할 수 있고, HR 시니어는 일주일 1~2일 정도 대면과 비대면으로 일을 하기에 복수의 스타트업에 겸직이 가능합니다.
물론 저만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이미 실행하신 분들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시니어 특히 HR시니어는 연차가 쌓일수록 조직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 방식으로 일을 하면 그야말로 일석이조, 다다익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스타트업의 만남에서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의 형태가 이제 현실로 저에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