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T'의 '정치경제학'
'MMT'의 '정치경제학'
- [균형재정론은 틀렸다](2015),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우리는 화폐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해줄 새로운 이야기 프레임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확산시켜야만 한다.
이 새로운 이야기 프레임은 시장, 자유교환, 개인의 선택 같은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사회라는 메타포와 공공의 이익 같은 개념들을 필요로 하며, 그런 것들로 개개인들의 사적 이익의 계산을 대체해야만 한다. 우리는 정부가 수행하는 적극적, 긍정적 역할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거기에 쓰이는 돈은 우리 모두를 윤택하게 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10. 결론 : 주권통화와 현대화폐이론',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세계적 금융 위기로 자본주의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전세계 '비주류' 경제이론가들이 이 체제의 '불평등' 문제에 천착하면서 체제 변혁의 이론인 마르크스주의와 그 실천 강령으로 '사회주의' 일반이 다시 주목받기도 하는 지금이다. 의도하든 아니든 '평등'이나 '정의', '분배'를 강조하고자 한다면 어쨌든 '사회주의' 영역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다수가 함께 잘 살려면, 자유로운 '시장'은 허상이며 좀더 평등한 '분배'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체제는 명실상부한 '금융자본주의'이기에 '화폐'라는 금융의 한 형태를 중심으로 현 체제 해석의 이론이 다시 제기되기도 한다. 이른바, '현대화폐이론(MMT : Modern Money Theory)' 이야기다.
미국 켄사스 주 미주리대학 경제학 교수인 랜덜 레이(Randall Wray)는 'MMT'의 주도적 이론가로 2015년에 이론적 연구와 블로그 소통의 내용들을 소재로 'MMT 입문서'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의 대안 경제학자 홍기빈 박사가 2017년에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국역 제목은 [균형재정론은 틀렸다]인데, 타협의 여지 없이 단호한 선언이다. 번역체도 단호하면서 시원시원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경계하면서 정부의 지출이 많아지는 것을 개인이 돈을 흥청망청 써서 거덜나는 것과 동일시하며 정부의 '균형재정'이 깨지는 것을 죄악시한다.
이 책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MMT가 확신있게 주장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주권국가의 정부재정은 가정경제 및 기업과는 다르다는 부분일 것이다. '미연방정부가 예산을 운영하는 식으로 우리집 가정경제를 운영했다가는 파산이 날 것이다'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린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의 적자를 통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MMT는 이러한 비유가 그릇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권국가의 정부는 자국통화로 지불을 행하는 한 지급불능 상태에 처할 수가 없다. 이러한 정부는 자국 통화로 가치가 매겨진 채무에 관한 한,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언제든 모두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 우리(MMT)의 주장이다."
- 랜덜 레이, 같은책, '서론'.
경제이론을 쉽게 설명하기란 난망하다. 그러므로 나는 MMT를 개념 중심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현대화폐이론'이므로 우선, '화폐'부터 시작한다. 다음으로 '주권국가', '조세', '변동환율제', '기능적 재정론', '완전고용', '인플레이션', '불평등 해소', '수입통제'와 '자본통제' 개념들을 따라 '공공성'의 정책적, 정치적 문제로 마무리된다.
MMT는 고전적인 '상품화폐'설을 부정한다. 상품들이 교환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일반적 등가물'로서 '화폐'는 그 형태가 조개껍데기든 금속이든 동전이나 지폐든 관계없이 '계산화폐'이지 '상품'을 매개하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류경제학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주저인 [자본론]에서도 근거하고 있는 '상품화폐론'을 과감하게 폐기하는 MMT 입장에서 모든 '화폐'는 케인즈식 '계산화폐'이자 '주권정부'가 발행하는 '부채의 증표'로서 '명령화폐'다. 즉, '통화 발행자'인 '주권국가'가 정식 통화로 모든 사람들이 일률적으로 받아들이고 쓰게끔 '명령'하는 것이 '화폐'의 본질이며, 케인즈에 따르면 4천년 '국가'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이야기다.
"... '화폐'는 본래 지배자들이 신민들이 내야할 수수료, 벌금, '조세'의 가치를 정하기 위해 창조한 측량단위이다. 신민들 혹은 시민들을 부채 상태로 몰아넣게 되면 실물자원들을 동원하여 '공공'의 목적에 쓸 수 있게 된다. '화폐 유통의 추동력은 조세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창출된 자원들을 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화폐가 창조된 것이다. '조세'는 우선 실물의 재화 및 서비스 판매자들을 창조하기 위해 기능하며, 그 다음에는 '공공' 목적의 추구를 비롯한 여러 더 심화된 결과들로 만들어내게 되었다."
- 랜덜 레이, 같은책, '5. 주권국가의 조세정책'.
'명령화폐'성의 본질이 밝혀지면, 다음은 이 '통화 발행자'인 '주권국가'가 부과하는 '조세'의 역할이 밝혀져야 하는데, 예로부터 '국가권력'에 의한 강탈인 벌금이든 '십일조'든 모든 형태의 세금, 즉 '조세'는 1) '통화 유통을 추동'하고, 2) '총수요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화폐 유통의 추동력은 조세"라는 명제는 이 책에서 수십번 반복되는 말인데,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비유 역시 수십번 등장한다. 바로 '거시경제학'에서 '항등식' 이야기다. 즉, '거시경제학'의 주체들의 관계에서 '통화 발행자'인 국가(정부)는 '통화 사용자'인 '가계(개인)'와 '기업'과 달리 대차대조표상 '적자'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것인데, 정부의 '지출(적자)'은 금융자산의 형태로 중앙은행의 준비금으로 쌓이고 이는 각 운행의 준비금으로 이전되면서 다른 민간 주체들의 '소득(흑자)'이 된다는 '항등식'이다. 두 사람이 맞춰 추는 '탱고'처럼, 공적 정부의 '적자'는 민간의 '흑자'라는 얘기다. 통화를 발행하는 정부는 '소득'이 있은 후에 '지출'을 행하는 민간 주체들과 달리 '지출'을 먼저 행하고 '조세'를 걷는데, 정부가 행한 '지출'을 전부 '조세'로 거둬들여 '균형재정'을 이루면 민간 주체들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짠돌이 국가'의 국민들은 '가난하다'.
"... 그냥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이야기야? 그렇다. 바로 그거다."
- 랜덜 레이, 같은책, '서론'.
'통화 발행자'인 국가는 무한대로 '돈'을 찍어낼 여력이 있다. 재무부는 '포인트'와 같은 '주권통화'를 "엔터키를 때려서" 은행의 준비금으로 쌓는다. 이 얘기를 들은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민간 주체들은 경악하면서 '인플레이션'을 걱정한다. 여기서 '변동환율제'는 국내 통화 가치의 무한정 하락을 방지하는 유효한 정책이 되고, '균형재정론'의 대안인 '기능적 재정론'은 경기변동에 따라 재정정책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면서, 이렇게 '무한정' 발행되는 '돈'들은 케인즈식 '유효수요'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의 노동과 소득을 창출하는 '완전고용제' 정책으로써 국가의 '총수요를 안정화'한다. 물론 '일자리 보장/최종 고용자'로서의 국가의 역할은 20세기 중후반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외 다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채택되지 않은 정책이다. 그들은 거대 금융기관에 천문학적 '공적 지출'을 행하면서 한편으로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잡는 정책들을 시행했는데, MMT는 정부의 무한대 '지출 여력'을 통해 노동대중의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최종 고용자'로서 '완전고용'을 통해 '총수요를 안정화'하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한다. 소득과 임금이 일정하게 오르는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할 뿐더러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게 MMT의 입장이다.
"... '노동'은 모든 생산 과정에 들어가는 투입물이므로 이 (일자리 보장/최종 고용자) 프로그램으로 임금이 안정화되면 그에 비례하여 모든 생산물의 생산 비용 또한 더 안정화될 것이다... 우리(MMT)의 주장은 이 '일자리 보장/최종 고용자' 프로그램이 통화의 국내적, 대외적 가치 변동에 있어서 하나의 무게중심을 제공하며, 이렇게 하여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실제로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얻어 보수를 지급받을 권리는 '인권'의 일부라는 것이다."
- 랜덜 레이, 같은책, '8. 완전고용 및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
MMT는 스스로의 정책을 "좌파도 우파도 아닌" 이론으로 "실제 현실의 묘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공공성'을 추구한다는 명확한 선언을 하면서 '진보'와 같은 편임을 천명한다. MMT는 자신들의 정책이 개발도상국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현실의 묘사"로서 피할 수 없는 형태이며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재정적자를 내는 미국 정부가 전세계 무역에서 다른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도할 수도 있다는 다분히 '윤리적'인 결론을 비추기도 하나 이 지점은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더라도, '주권국가'들의 주체적 '재정적자'를 통해 노동대중들의 소득을 안정화하면서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으면, 만일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해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 방지를 위해 "부자들에게 전가"하는 '불평등 해소'의 적극적인 계급적 정책을 내놓기도 한다. 단, 토마 피케티식의 '누진세'나 '부유세' 등의 지출 사후적 조세적 형태보다는 다수의 '소득 안정화' 등의 사전적 조치를 선호한다.
MMT가 '진보'의 편인 이유는, '노동'을 중요한 '인권'으로 인식하고 다수 '노동'의 가치를 무엇보다 정치(정책)적으로 중시하기 때문이다.
"MMT의 여러 원리는 모든 '주권국가'에 해당된다. 그렇다. 모든 '주권국가'는 국내의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무역적자를 낳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통화 환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이것이 인플레이션 전달장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권통화'를 발행하는 정부라면 이러한 결과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많이 갖게 된다. '수입 통제'와 '자본 통제'가 그 예이다. 국가의 직접고용, 직접투자, 그리고 전략적 발전 등의 정책들도 취할 수가 있다."
- 랜덜 레이, 같은책, '10. 결론'.
이 책은 어쨌든 '경제학' 책이므로, '경제학'이 어려운 독자는 '서론'과 '결론'을 먼저 읽고 '본론'은 나중에 순서대로 읽되 중간 박스 기사들은 이해 안되면 건너뛰는 게 좋을 듯 싶은 게 내 독후감이다. 그만큼, 같은 명제들이 여러 번 반복되며, 이 내용들은 '서론'과 특히 '결론'에서 강조되고 있다.
"실제 현실의 묘사"이자 "금융 공공성"을 지향하는 MMT의 화두는 결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며, "화폐의 본성에 대한 이해로 시작하는 하나의 '세계관'을 내놓고 있다(같은책, '9. 인플레이션과 주권통화')."
그러므로, 노동대중 다수의 '소득 안정화'를 통해 함께 잘 사는 '정치경제학'을 지향하는 MMT의 또 다른 결론 중 하나는 '자유 시장'의 허상을 깨는 "자본 통제"일 수 밖에 없다. 20세기 중반의 케인즈와 칼 폴라니, 현재의 장하준 등의 '진보' 경제학이자, 수학 공식과 '균형재정'에 기반한 주류 '경제학'을 넘어서 국가권력의 적극적 '정치(정책)'를 강조하는 또 하나의 '진보'적 '정치경제학'인 것이다.
"... 우리 모두가 우리 스스로를 돌보는 것...
정부가 돈이 떨어지는 상황이란 있을 수가 없다. 정부는 우리 모두를 돌볼 재정적 여력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기술적으로 현실성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행해볼 재정적 여력이 있다. 문제는 기술, 자원, 정치적 의지이다. 우리에게는 기술과 자원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를 굳건히 하여 정치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 프레임이 필요하다."
- 랜덜 레이, 같은책, '10.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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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 화폐의 비밀과 현대화폐이론(MMT)](2015),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