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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몽 Oct 18. 2021

제주살이를 하면 귤 부자가 된다.

제주살이 10일 차

친구들 자주 오가는 통에 제주살이 중인지 제주 여행 중인지 헷갈린다. 그래도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귤 부자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펜션은 서귀포시에서 동쪽으로 차로 15분, 귤 밭 안에 있다. 내가 묵는 2층에는 40평 테라스가 딸려있고 매일 서귀포 먼바다와 한라산을 볼 수 있다. 밤에 테라스에 돗자리를 깔고 별구경을 한 적이 있다. 불빛 하나 없는 고요한 동네에서 온 하늘이 다 내 것만 같아서 1시간을 넘게 누워있었더란다.

  주인 부부는 펜션  주변으로 널찍한 귤나무 농사를 짓는다. 처음 펜션을 예약할 때 안내문에 귤 따기 체험이 가능하다고 했으나 아직 철이 일러 11월 20월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귤 밭 체험을 보고 예약했노라고, 이 담에 꿈이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짓는 거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부탁해 조생귤과 청귤을 따주셨다.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자길 시키냐고 투덜거리시지만 언제나 아주머니의 부탁을 들어주신다. 방금 딴 귤은 무척이나 맛있었다. 귤순이에겐 어떤 귤이든 맛있지만 아직 안 익어서 따기 아깝다면서도 십여 개나 따주신 아저씨의 인심에 따스함을 느껴본다. 조생귤은 달지만 조금 밍밍하고 청귤은 조금 시지만 농도가 짙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제는 손에 꼽히는 좋은 바다라 하여 스쿠버 다이빙을 다녀왔다.(다이빙 이야기는 곧 따로 해보도록 하겠다.) 생각보다 좋지 않은 바다에 시무룩해 있던 차에 친구 가족이 제주에 와있노라고 연락이 왔다. 다이빙 갈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잊고 있었다. 오랜만에 오는 가족 여행이라 스케줄이 꽤나 빡빡하여 저녁식사 때나 만나자 한다. 무엇을 하느라 그리 바쁘냐 하니 어린이 테마파크, 귤 따기 체험을 했다고 한다. 네 식구가 귤 네 바구니를 땄는데 다 먹을 수도 서울에 가져갈 수도 없어 나에게 남기고 간다고 한다. 조생귤 한 봉지 가득이었다. 곧 올 친구들과 함께 나눠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다.


  오늘은 늦잠을 자고 브런치를 먹고 싶었다. 혼자서 사람이 붐비는 곳 웨이팅 하는 곳에 가고 싶지는 않아 위미항의 작은 브런치 카페를 방문했다. 손님은 나 혼자, 쉬림프 에그 샌드위치와 아이스라테를 시켜본다. 조용히 식사를 하고 싶었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놀러 오셨다. 아주머니 목소리가 꽤 크다. 조용히 먹고 싶었는데... 주인아주머니도 친구분께 약간의 주의를 주신다. 얼른 정리하고 친구분 앞에 자리를 잡았지만 친구 분 목소리는 원래 큰 듯하다. 가만가만 이야기를 엿듣다 보니 알아듣기도 알아들을 수 없기도 하다. 제주 방언인 듯하다. 그 순간 정겨운 느낌이 든다. 제주에 자주 오지만 관광객에게 방언으로 얘기하는 경우는 없다. 아주머니들 수다 속에서 제주를 느끼던 중 주인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제주 분이세요?" "아니요." 그치만  한 달 살기 중인 걸요 하려던 차에 "그러면 가실 때 귤 가져가세요." 라며 문 앞에 바구니를 가리키신다. 그렇게 청귤 5개를 또 얻었다.


  제주도에는 어디에나 귤나무가 있고 귤을 사서 먹지 않는다더니 진짜인가 보다.(물론 친구가 준 귤은 체험해서 얻은 거지만) 귤 부자가 되어가며 제주살이가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여행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제주도민들의 따스함을 느낀다. 어느 곳에 산다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취를 느끼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제주에 점점 녹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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