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시작, 앞머리 자르기(밀기)

by 김하예라

엄마에게는 어떤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뭔가 내 자식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싸한 예감이 평범한 한밤중에도 느껴지는 촉 혹은 동물적 감각 말이다. 그날도 그랬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나는 물을 마시러 거실에 나왔다가 문득 딸의 방문을 열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크를 하고 딸의 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다홍이가 가위를 들고,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다홍이의 커다란 눈은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더욱 커져있었다. 유튜버 언니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 했는데, 점점 길이를 맞추다 보니 점점 짧아져서 결국 빡빡 밀어버리게 된 형국.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12세 다홍의 인생 최대 어려움을 맞닥뜨린 것이다. '월요일에 학교 어떻게 가지?' 하는 걱정과 고민으로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때 아이가 가장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따뜻한 위로와 그 머리를 어떻게 가리고 학교에 가야 할지에 대한 엄마 아빠의 세밀하고 효과적인 대책 회의였다.


먼저 다홍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괜찮아. 다홍아. 엄마도 너 만할 때, 그런 적 있어. 앞머리를 쉽게 자를 줄 알고 했는데, 길이가 너무 안 맞더라고.. 그래서 끝까지 머리를 잘랐지"

"어떻게 했어?"

"응. 엄마는 옆머리로 앞머리를 대충 가리고 갔어. 왜 대머리 감추려고 옆머리 가져와서 가리는 거 말이야"

"헐............."

더욱 암담해진 표정의 다홍이에게 나는 '옆머리로 가리고 가'라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하지만 엄마는 너를 도와줄 거야."

"어떻게에?????"

"일단 내일 예쁜 야구모자 사다 줄게. 너는 두상이 예쁘니까 모자를 써도 예쁠 거야. 그리고 담임선생님께는 엄마가 미리 양해의 문자메시지 보내놓을게. 수업 시간에 모자 쓰고 있는 것은 실례니까. 하지만 미리 양해를 구하면 분명히 이해해 주실 거야. 머리는 곧 자라니까 걱정 말고."

"정말?????!!!!"

"그러엄. 그리고 내일 모자 쓰고 미용실 가서 조금 다듬어보자. 가르마를 바꾸면 어떻게든 티가 덜 나게 가릴 수 있을지도 몰라."

"지인짜아?????!!"

"그럼! 엄마만 믿어. 그리고 너처럼 앞머리 자르고 놀라서 미용실에 온 아이들 많을걸?! 아마 미용사 언니는 그런 아이들 머리 많이 다듬어 주셨을 거야. 걱정 말고 푹 자.... 울지 말고."

"응!!!!!!"


아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들을 깨끗하게 치우고, 아이를 달랜 후에 재웠다. 눈물을 닦고, 세수하고 양치한 다홍이가 침대에 눕는 것까지 보고 안방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일어나서 인터넷으로 부분 가발을 주문했다.


다음날, 나는 외출하여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홍이가 좋아할 만한 야구모자를 샀고, 함께 온 가족이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머리를 최대한 티가 덜 나도록 다듬어달라고 부탁했다. 다홍이는 모자를 쓰고 학교를 갔고, 그다음 날 2주간 코로나로 인한 등교 금지가 이어져서 다홍이는 인터넷으로 수업을 들었다. 당시는 ZOOM으로 진행하는 쌍방향 수업도 없이 EBS 사이트에 들어가 수업을 듣는 것으로 진행되는 것이어서, 한참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고 예민해진 때에 다홍이는 조금 덜 부끄러워해도 되었다. 다행히 미용실에서 수습을 잘 해주고, 모자도 사용하여서 아이 아빠가 주문한 부분 가발은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은 대신 내가 머리숱을 더 풍성하게 해 보이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다홍이도 친구들을 만나거나, 외출을 할 때도 그렇게 머리를 신경 쓰지는 않는듯했고, 그러는 사이 점점 머리도 길러 티가 거의 나지 않게 되었다.


다홍이의 당황스러운 앞머리에 대해 내가 나름 현명한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경험 덕분이다. 나도 딱 다홍이만한 나이에 거울을 보고 스스로 앞머리를 끝까지 잘랐다. 내 생각과는 점점 달라지는 모습에 당황하여 머리빗을 들고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당시에는 할아버지 방에만 전화가 있었는데, 내가 전화를 쓰는 것을 싫어하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당시 신학공부를 하시는 아버지를 뒷바라지하시기 위하 작은 식당을 하고 계셨다. 한창 바쁜 시간이었던지 '나 앞머리를 다 잘라버렸어....'라는 긴급하고 애절한 전화에 '바쁘니까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라고 하시고 엄마는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공중전화 앞에 한참을 서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다음날 머리에 어떠한 후속 조치를 하지도 않은 채 다만 옆머리로 앞머리를 덮는 식의 우수꽝스러운 머리를 하고 등교를 했다. 그리고 머리를 기를 때까지 그냥 그 상태로 학교에 다녔다. 그때 나는 같은 반에 한참 관심이 가는 남자아이도 있었는데, 내 이상한 머리 스타일 때문에 그 아이 곁에는 가지도 못했다. 그때의 나는 엄마의 도움이 없다면 그냥 머리카락이 자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어린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시간이 흐르고, 나는 어른이 되었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한밤중에 혼자 앞머리를 다 잘라버리고 난감해하는 열두 살 여자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 줄지 알았다. 그 어린 날 나의 어머니가 해주셨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던 일을 난 딸에게 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딸이 자신의 어려움을 부모의 도움을 받아 극복하고, 다시 해맑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며, 나는 지난날 나의 '앞머리 상처'를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내가 받고 싶었던 세심한 관심을 아이들에게 쏟는 편이다.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를 거쳐 사춘기와 청소년기까지 때에 맞는 사랑과 관심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나의 각기 다른 모양의 사랑에 아이들은 햇빛보다 환하게 웃으며 미소로 반응해 준다. 바로 그 순간, 나의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해주는 방식으로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사랑해 준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자녀에게까지 대물림되는 것은 참 싫은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부족하고 목마르다 느꼈던 부모님의 사랑을 부모교육, 심리학 공부, 교육학을 전공하며 책으로 배우고 강의로 보충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깊게 패어 여전히 마음에 남아 혼자서는 도저히 극복이 불가능한 상처는 전문가를 찾아가 심리 상담을 받으며 치유의 시간을 보냈다. 혼자 고민하고, 아파하는 것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당 매우 비싼 비용을 치렀지만, 마음이 아팠던 나와 아프면 안 되는 우리의 두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래, 돈은 벌어서 그런데 쓰는 거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렇게 사랑을 새로 배운 나는 자녀에게 크고 작게 실천해 보며 성공도 실패도 하고 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나에게 기회가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상처는 회복하고,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유년 시절의 기억을 선물할 기회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이적이 부른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 중에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렇다. 지나간 나의 앞머리는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다. 예민한 사춘기 여자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미리 배우는 기회였다고 생각해 본다. 모든 일은 아팠던, 좋았던 상관없이 지나간다. 그런데 혹시나 아직도 지나가지 않은 현재의 아픔이라면? 정답은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법을 찾아보면 어디에나 길은 있고, 나는 내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힘이 있다. 지나간 상처가 오늘까지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책임도 나에게 있다.


그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려 대한민국 아줌마니까... '그깟 상처 따위, 너나 가져!' 이렇게 호탕하게 소리도 치지만 금방 쫄리기도 하고, 숨고 싶기도 하고, 또다시 쪼그라들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본다.


머리 자르는 것을 시작으로 다홍이의 사춘기도 시작되었지만, 시작이 좋았던 탓인지 생각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심하지 않게 그러나 건강하게 사춘기를 보내고 이제 막바지에 이른 듯한 느낌적 느낌이 든다. 또 더 남아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해도 그날의 사춘기는 또 그날 해결해 볼 생각이다. 사춘기가 지나가고 앞으로 다양한 선택지, 어려움들이 다홍이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다홍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 든든한 뱃심으로 씩씩하게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힘들 때는 가정이라는 둥지에서 쉬고, 도움도 받고, 또 배터리를 완충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앞머리를 싹둑 자르던 자신감과 패기로 새로운 도전을 할 다홍이의 튼튼한 엄마가 되어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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