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당신의 소울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영화 <소울>, 지극히 개인적인 관람평



영화 <소울>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예매 후 극장으로 달려갔다.

'<소울>이란 단어가 제목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충분했다.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는
꿈에 그리던 최고의 밴드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게 된 그 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탄생 전 영혼들이 멘토와 함께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면
지구 통행증을 발급하는 ‘태어나기 전 세상’ ‘조’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지구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시니컬한 영혼 ‘22’의 멘토가 된다.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도 멘토 되길 포기한 영혼 ‘22’
꿈의 무대에 서려면 ‘22’의 지구 통행증이 필요한 ‘조’
그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을까?

- 영화 <소울> 줄거리



나에게 "소울(soul)"은 언제나 남다른 의미가 있는 단어였다.  

회사 이름을 '소울뷰티디자인'(뷰티소울디자인이 아니라)이라고 지을 정도로.

만 7년째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 이름을 '소울리딩클럽'이라고 지을 정도로.

작은 책방을 사무실에 들이면서 그 이름을 '소울책방'이라고 지을 정도로.

퍼스널브랜드 이름을 '소울뷰티코치'로 지을 정도로.


"소울"은 내 의 방향을 결정하는 단어임이 분명했다.

 


SOUL

1. [명사] (사람이 죽은 후에도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영)혼[혼령/정신]
2. [명사] (한 사람의) 마음
3. [명사] (인간의) 정신 (=psyche)




나는 인생의 방향은 우리의 영혼(마음과 정신)이 결정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언제나 내 소울이 이끄는 방향으로 걸어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이슈는 언제나 "그것이 내 영혼을 움직이는가?" 였다. 영혼이 움직이지 않는 일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꿈을 이루기 위해 살고 있는, 영화 속 조 가드너의 모습은 과거 나의 모습과도 일정부분 꽤 닮아있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시작한 계기 또한 소울의 이끌림이었다.  


.

.

.

 

    

아주 어렸을 때 TV속 뉴스 아나운서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동안 나의 꿈은 아나운서였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읽은 책의 저자가 정신과 의사였는데 그녀의 글에 반해 나도 정신과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어느 날, 대학로에서 본 연극무대에 선 배우의 모습을 보고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대학시절 내내 가슴에 품은 꿈이었지만 이후 현실적인 (경제적 자립이라 쓰고 생계라 부르는)이유로 내려놓게 되었다. 이후 오래도록 나는 이렇다 할 꿈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저 환경에 순응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첫 직업은 비서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커리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문성을 가지고 능력을 발휘해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 선택한 직업은 헤드헌터였다. 다행히 그 일이 꽤 재미있었다. 하지만 일의 모든 프로세스가 익숙해지면서부터 매너리즘에 빠졌고 나의 궁극적인 가치(아름다움과 사랑)와는 맞지 않는 영역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기쁨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만의 불꽃을 찾고 싶었던 거다.  


우연히 보게 된 일본 만화에서 내가 찾던 불꽃을 발견했다. 해피메이크업이라는 일본 만화였는데, 여주인공에 완전히 빙의가 되어서 나는 그녀가 하는 일을 똑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꽤 큰 모험을 감행했다. 32살이라는 나이에 메이크업 학원을 등록했다. 갓 20살이 된 어린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던 학원에서 나는 최고령자였다. 지금은 크게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 선택이겠지만 당시 나의 결정은 누가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나름 괜찮은 학벌과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불꽃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선택했고 그렇게 걸어온 13년이 지났다. 내가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었던 질문은 '돈을 받지 않아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적지 않은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지만.)    



정규직을 제안받았지만 기뻐하지 않는 그의 마음에 100프로 공감할 수 있었다.



언제나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살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생각했다. 그래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두근거림을 찾아 살고 있는 거야. 타고난 성향과 성격을 기반으로 두근거리는 일을 발견하게 된다면 삶의 목적은 분명해질거야.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지만, 나의 언니는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고 재능이 많았다.

빛나는 삶을 꿈꾸었다. 누구보다 멋진 인생을 살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는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식물인간이 되었다. 당시 언니의 나이는 29이었다.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녀는 작년에 삶을 마감했다.


근사하고 멋진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루고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을까.   





내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한참을 달려왔다. 어느덧 내가 바라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느끼면서부터 공허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지만 허탈한 감정이 찾아온 것에 당혹감을 느꼈다. (가드너가 느꼈던 감정이 그런 것이었을까.)     



친한 동생이 있다. 아주 오랜 인연인데 그녀는 처음 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신은 꿈이 없다고 했다. 한 때 어떤 것이 좋아보여서 그 일에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달려갔지만 어느날 그 목표가 보잘것없이 느껴졌단다.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꼭 열정이 필요한거냐고. 아마 영화속 22가 현실의 인물로 나타난다면 꼭 그 동생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어."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녀는 지금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평화롭다고 느끼며 살고 있다.      


꿈과 목표가 반드시 근사한 것일 필요는 없다. 그저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바라는 곳에 조금 더 다가간 것임이 분명할테니.




영화 소울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었다.

 

삶의 분명한 의미를 찾지 못해도,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살아 있는 이 순간이 기적이 아니냐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이 그 무엇보다 아름답지 않냐고.


와 같은 경험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지금을 다시 사는 것 처럼 살 수 있다.

지금의 삶이 두 번째 인생이라면 나는 내게 주어진 이 삶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내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다시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매거진의 이전글 그저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