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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Feb 14. 2019

선 넘어오지 마

2월 14일


아침 먹고 나가서 줄곧 이어지는 미팅과 회의로 차(tea)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 못했다. 서울의 한 중심에서 만난 건 모두들 집이 멀어서였다. 누구 하나 마음 급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배가 고파도 참고 일을 끝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또다시 만나 일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살고 있어 한 번 만났을 때 끝장을 봐야 한다.    


배가 고파도 서로 다독이며 겨우겨우 끝냈다. 그 와중에도 집에 가는 길에 배고플 텐데 음료수라도 가는 길에 먹으라고 서로의 가방에 넣어줬다.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에서 간단한 간식이라도 먹으며 가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하며 급하게 헤어졌다. 이미 몸은 서로 가야 할 길을 가고 있는데 대화는 끊이질 않았다.


“조심히 가세요.” “먼저 가세요.” “오늘 너무 고생했어요.” “피곤할 텐데 얼른 가서 뭐 좀 먹고 쉬어요.”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급히 뛰어 놓치지 않고 탔다. 눈꺼풀이 무겁고 피곤해 스르륵 감겼다. 내릴 곳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부여잡고 간신히 버텼다. 수시로 눈을 부릅떠야 했다. 다시 버스로 환승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저 멀리 한강에 불빛들이 아름다워 바라보고 싶은데 눈은 계속 감겼다. 손에 꽉 쥐고 있던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원수 같은 친구였다.    


“뭐해? 밥 먹었어?”    


“아니. 아직 못 먹었어. 집에 가는 중이야. 얼른 가서 먹고 쉬고 싶네.”    


“뭐 하느라 이 시간까지 밥도 안 먹고 다녀?”    


“회의가 길어져서 다들 집이 머니까 밥이 문제가 아니라 일을 빨리 끝내는 게 서로 위해주는 길이야.”    


“그래도 그렇지. 왜 그렇게 센스가 없냐? 사람을 밥도 굶겨 가며 일을 시켜.”    


“나만 굶긴 것도 아니고, 다 같이 못 먹은 건데 뭐.

밥까지 먹었으면 집에 12시 다 돼서 도착할 텐데 그게 더 힘들어.”    


“그래도 그런 게 아니지. 네가 베스트셀러 유명 작가여도 걔네들이 너 굶겼겠냐?    


“베스트셀러 유명 작가도 시간이 없으면 굶을 수도 있어.

그리고 내가 밥 못 먹은 게 네가 막말할 일은 아닌 것 같으니 그만해.”    


“작가면 손님인데 밥을 대접해야지.”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일 하는데 누가 손님이고 주인이고가 어디 있어.

넌 이 쪽 일 잘 모르잖아. 잘 모르는 일 함부로 말하지 마.”    


“이게 알고 모르고 할 일이냐. 걔네들이 널 무시 안 했으면 어떻게 해서든 식사를 대접했겠지.”    


“피곤하니까 그만하고 더 이상 선 넘어오지 마. 친구 사이라도 무례하게 선 넘고 불쾌하게 하는 거 싫으니까.”    

“이제 알겠다. 우리가 왜 싸우는지. 네가 선을 긋기 때문이야. 왜 선을 그어?”    


“선을 그었으니 그나마 너하고 나하고 친구인 거야. 그것마저 없었으면 원수 됐어.”    


항상 남의 속을 박박 긁고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친구는 상대를 화나게 해 놓고 혼자 천하태평이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연락한다. 어릴 땐 얄밉고 싫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이제는 그러는 친구를 보고 있으면 내가 부끄럽다. 유유상종, 끼리끼리, 초록이 동색이라고 하는데 내가 비슷하니까 저 친구를 상대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이든 내 감정의 테두리 안에 아무 때나 불쑥불쑥 들어와 휘젓고 가는 건 불쾌하다. 마음의 휴식이 필요할 땐 쉽게 넘어오지 못하도록 테두리를 좀 더 단단히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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