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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펄 Feb 19. 2019

너한테 돈 받아서 뭐해

2월 19일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사진관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빠가 사진 인화를 부탁하셔서 오랜만에 방문한 우리 동네 오래된 사진관은 3평 남짓한 아주 작은 가게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아저씨께 사진 인화하러 왔다고 했더니, 오히려 놀라셨다. 요즘 사진관에 그런 손님이 없다면서.    


사진관 아저씨는 내 백일 사진, 돌 사진, 학생증, 주민등록증, 증명사진, 운전면허증, 여권 사진까지 모두 찍어주신 분이다. 한 동네에 살면서 나의 모든 성장과정을 지켜보셨고, 중요한 순간마다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내게 백일 사진 찍을 때가 눈에 선해서 다 큰 아가씨가 됐는데도 여전히 애처럼 느껴진다고 하셨다.


한 동네에서 45년째 사진을 찍고 계시는 아저씨는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디지털카메라가 급속도로 퍼지던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큰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기에 존경스럽다.    


사진 인화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첫 번째 사진이 나왔는데 아저씨의 실수로 크기가 잘못 나왔다. 그래도 절대 당황하지 않으셨다.   

 

“급해? 바빠? 좀 기다릴 수 있지? 다시 해볼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인화를 시작했다. 사진은 원하는 크기대로 인화되었다.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돈을 받지 않으셨다. 아무리 남 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사진을 그냥 받을 순 없었다. 테이블에 돈을 놓고 나가려는데 아저씨께 뒷덜미를 잡혔다. 아, 좀 더 재빨랐어야 했다.    


“내가 너한테 돈 받아서 뭐해. 그거 몇 장이나 했다고. 아빠한테 안부나 전해.”    


“저희 아빠 여기 매일 지나다니시는데, 못 보셨어요?”   

 

“봤어. 봤어도 우리 나이쯤 되면 오늘 인사해도 내일을 알 수가 없는 겨.”    


집에 와서 아빠께 사진을 드리며 사진관 아저씨의 안부를 전해드렸다. 그러자 전혀 생각지 못한 말씀을 하셨다.

    

“아빠가 가면 돈 다 받는데, 딸이 가니까 프리패스네. 아이고, 치사해라.”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얼굴에는 ‘우리 딸 이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다 보였다.

이런 게 우리 동네 정(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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