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2016)〉에서 태풍이 몰아치는 날, 동네 놀이터 미끄럼틀에 앉아 아들 싱고가 아버지 료타에게 물었다. 료타는 아직 되지 못했다고 답했다. 되고 못 되고는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직’ 되지 못했다는 료타의 말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자신이 되고 싶었던 어른에 대한 메시지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은, 당신이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어린 시절 자신이 꿈꾸던 모습의 어른이 되지 못했다. 영화는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지 못한 그들이, 어른이 되고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우리는 어떨까?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10대 고교생에게 “당신 같은 어른은 정말 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들은 료타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발끈하는 모습은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운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시나리오 맨 앞장에 썼다고 알려진 문장처럼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바라던 어른의 모습이 아니어도 괜찮다. 당신의 기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알게 된다면 내가 바라던 모습에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 다행히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모습을 꿈꾸는 일에는 어떤 이의 간섭도 방해도 없지만, 실제 삶에는 수많은 난관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부모님의 기대와 그에 따른 책임감, 친구와 지인들의 관심을 가장한 충고와 참견, 동료들과의 경쟁, 세상 사람들의 시선,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까지, 신경 쓰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
다 보면 진정 내가 타고난 모습으로, 꿈꾸는 모습대로 살아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초반에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인간의 타고난 기질을 이해하는 일이 대부분 아이 기질을 파악해서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양육법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다.
기질은 유전자에서 나오는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인격의 일부로 여겨진다. 유전으로 물려받은 특질에서 나오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 남아 있다. 이미 성인이 되었고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기질을 파악하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기질은 늘 자신 안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외부로 어떻게 발휘할지는 스스로 조율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질 파악과 이해,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훈련이 필요하다. 현재 성인들은 어린 시절에 이런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기질은 나의 바탕이자 기초가 된다. 기질에서 성격이 나오고 성격에서 행동이 나온다. 그래서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질을 먼저 알아야 한다. 강의와 심리검사, 상담, 코칭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나는 습관적으로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그것을 통해 기질과 성격, 감정에 대한
힌트를 얻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기질로 보는 심리학〉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강의를 통해 수강생들에게 성인들도 기질의 의미와 자신의 기질을 탐색하고 이해하기에 늦지 않았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고, 기질이 우리의 삶과 대인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전달하고 싶었다. 한 학기 동안 진행되는 강의를 통해 모든 것을 알기란 어렵지만, 적어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놓치고 있었던 중요한 한 부분을 알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 가족, 친구, 동료, 지인에 대한 이해와 대인 관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강의 첫 시간에 이 강의를 신청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모르겠다(자기이해)’, ‘어느 분야로 취업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진로)’, ‘배우자와 자꾸 부딪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부부 관계)’,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들다(사회생활)’, ‘이상하게 항상 친구한테 당하는 기분이 드는데 애매해서 뭐라 말도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한다(친구 관계)’, ‘자꾸만 반복되는 연애 패턴에 지쳤다(연인 관계)’, ‘기질 이해로 자식들과 갈등을 줄이고 싶다(부모-자녀 관계)’, ‘모임에서 유독 나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는데, 나 때문에 모임이 깨질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고민이 된다(대인 관계)’ 등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기질 이해를 통해 관계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중에서 제일 오래 여운이 남았던 말이 있었다.
“저는 그냥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배우고 노력하고 싶어요.”
내가 되고 싶었던 진짜 어른이 되는 방법은 자기를 이해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는 〈기질로 보는 심리학〉 수강생들의 질문과 함께 나눈 이야기, 심리검사 워크숍 참여자, 개인 심리검사 해석 상담, 코칭 등의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재구성되었으며 일부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혀 둔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기질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할 수 있었고, 실제 우리가 겪으며 살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강의 시간 내내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열심히 필기하고 질문하던 수많은 수강생의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덕분에 이 책의 내용을 강의하고 저술하는 동안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수강생들과 함께해 주신 참여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부디 이 책이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에게 자신과 관계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관계와 삶을 바꾸는 기질 심리학(조연주 지음)>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