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보고 와서
자려고 눈을 감으니 암흑 속에 사원의 지붕과 회랑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깊디깊은 수면 위로 떠오른 연꽃처럼, 깊이를 알 수 없어 평평해 보이는 의식 위에 양감이 더해진다.
인공의 것에서 이런 자연스러움을 느낀 적은 거의 없는데, 실제로 자연의 것을 빌려다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수만 명이 동원되어 만든 인공의 극한을 보니 결국 인류와 대자연의 경계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규모가 너무 커 이것이 개별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고 우주 전체로 느껴진다는 감정을 무슨 단어로 표현하면 좋을까?
기억술에 사용할 상상의 공간을 만든다면 이런 모습일 거란 생각이 들 정도. 수없이 많은 비슷비슷한 조각, 대들보, 천장의 모습을 봤더니 오히려 그 디테일 하나하나가 내 안에서 무한히 증식했다. 상상 속 사원의 어느 중정에 들어가면, 우거진 나무 때문에 하늘은 우물의 수면에서만 볼 수 있다. 거기에 내가 본 중 가장 커다랗고 가장 하얀 구름이 지나간다. 벽에 새겨져 있던, 각기 다른 얼굴과 이야기를 갖고 있던 수백만의 군사처럼 내 안에선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원이 만들어진다. 조금 부서졌지만 풀의 땅, 구름의 하늘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사원. 눈을 감고 나서야 현실감이 몰려온다. 그렇게 나는 꿈속에 사는 인간이 된다.(23.12.19. 캄보디아, 막 눌러도 낯선 백인의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곳)
*블로그에 적은 일기를 편집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