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사랑에 빠지는 골든 타임, 필스너 우르켈에서 찾는 건 어떨까?
“그 곳이 바로 하벨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이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을 마시던 자리에요”
어눌한 영어 발음이었지만 우 즐라테호 티그라(U Zlateho Tygra) 주인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은 하얀 색 거품, 나머지 반은 황금색 필스너 우르켈이 담긴 머그잔을 막 입에 대려던 나는 주인장의 한마디에 한껏 상기됐다. 고백하건데, 프라하를 찾은 이유도, 우 즐라테호 티그라에 온 이유도 바로 이 자리에서 필스너 우르켈을 마시기 위함이었다.
1989년 소련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체코 공화국의 첫 대통령은 벨벳 혁명을 이끈 바즐라프 하벨이었다. 1994년 그가 미합중국 빌 클린턴과 만찬을 진행한 장소는 화려한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프라하 골목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펍 ‘우 즐라테호 티그라’였다. 황금 호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곳은 그가 자주 들러 필스너 우르켈을 마시던 단골집이었다. 하벨은 우 즐라테호의 구석, 작은 테이블과 좁은 의자에 앉아 빌 클린턴에게 체코 전통 음식과 필스너 우르켈을 대접했다. 마치 맥주 세계에서는 미국이 아닌 체코가 더 우위에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듯이.
1838년 보헤미아 왕국의 작은 마을인 플젠(Plzen),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작은 동네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자신들의 맥주가 형편없다고 느낀 시민들이 시내의 모든 맥주를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약 143통, 병으로 따지면 13,000병이나 되는 맥주를 마을 중앙에 있는 광장에 쏟아 버렸다고 한다. 이후 시에서는 플젠을 대표하는 맥주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외부 양조사를 물색했다.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맡은 주인공은 바로 옆 동네 남부 독일 바이에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요셉 그롤이었다.
요셉 그롤은 새로운 맥주의 실마리를 라거(lager)라는 스타일에서 찾았다. 19세기는 독일 양조사들이 영국의 에일(ale) 맥주를 이기기 위해 라거 맥주에 큰 관심을 쏟던 시기였다. 사과나 배에서 나오는 에스테르 향을 가진 에일과 달리 라거는 깔끔한 풍미와 좋은 음용성을 가지고 있어 갈증 해소를 위한 최적의 맥주였다. 상온에서 만드는 에일과 달리 라거는 섭씨 10도 정도의 온도에서 발효가 되어 냉장시설이 없던 당시에는 양조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하다면 에일을 압도하는 높은 시장 잠재력을 기대할 수 있었다.
요셉 그롤은 당시 라거의 아버지라 불리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와 비엔나 라거의 창시자 안톤 드레허와 같은 사람에게 조언을 얻은 후, 라거 효모와 함께 플젠으로 돌아왔다.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몰트, 사츠 홉 그리고 플젠의 물을 이용한 라거에 배팅한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1842년, 새로운 맥주를 선보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 맥주가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결과를 낳을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요셉 그롤이 세상에 내놓은 플젠의 라거는 황금색이었다. 사람들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맥주의 색에 환호했고 경외감을 표했다. 아니, 맥주가 황금색인 것이 이렇게 놀랄 일인가. 하지만 당시 모든 맥주의 색이 어두웠다는 사실을 알면 황금색 맥주가 얼마나 놀라운 발명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맥주하면 떠올리는 황금색은 플젠의 라거가 탄생하기 전까지 맥주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라거가 황금색인 이유는 바로 물 때문이었다. 플젠의 연수, 즉 부드러운 물이 살짝 건조시킨 밝은 색 보리 맥아로 맥주를 만드는데 적합했던 것이다. 거기에 라거 특유의 깔끔함과 청량함까지 있으니 사람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맥주는 플젠의 독일어 발음인 필센(Pilsen)의 이름을 따 필스너(Pilsner)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최초의 황금색 라거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나는 이 황금색 라거의 출현은 우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연수와 경수 같은 물의 조성이 pH에 영향을 미쳐 양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19세기 말이었다. 화학자가 아닌 양조사인 요셉 그롤이 연수가 밝은 색 맥주에 유리하다는 걸 알 리 만무했다. 허나, 역사에서 우연은 종종 물길을 바꾸고 벽을 무너뜨리곤 한다. 우주의 기운이 플젠에 모여 인간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대한 맥주가 나왔으니, 그 공을 요셉 그롤이 가져간다고 해도 그리 불만 가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1842년 필스너의 출시는 유럽의 양조업계에 커다란 충격을 준다. 특히 맥주에 대단한 자부심과 기술을 가진 영국과 독일의 양조사들은 머리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당시 세계 최고의 맥주는 영국의 어두운 색 에일인 포터(porter)와 앰버(amber)색 에일인 페일에일(pale ale)이었다. 수많은 독일과 북유럽 양조사들이 이 두 맥주를 넘어서기 위해 라거를 연구했지만 생각지도 않던 플젠에서 그 답이 나왔으니, 그들이 받은 충격과 허탈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영국과 달리 유럽 대륙의 양조사들은 이 새로운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872년 독일 드레스덴 근처의 작은 도시인 라데베르그에서는 독일 최초의 황금색 라거를 출시했고 1894년 바이에른에서도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가 헬레스(Helles)라는 황금색 라거를 만들었다. 북유럽의 대표적인 양조장인 칼스버그와 하이네켄도 자신들만의 황금색 라거를 탄생시키며 대세에 동참했다. 하지만 영국은 이 혁신을 거부했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맥주는 순식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후, 플젠의 맥주, 필스너는 맥주 세계의 대부가 되어 20세기 최고의 맥주로 우뚝 선다.
필스너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지만 플젠 양조사들은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필스너는 플젠의 황금색 맥주라는 뜻인데, 여기저기서 그 이름을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필스너 양조장인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Plzeňský Prazdroj)는 맥주 이름에 ‘우르켈‘(Urquell)을 붙였다. 우르켈, 즉 오리지널을 상표에 ’대놓고‘ 붙이는 방법으로 자신이 원조임을 만천하에 천명한 것이다. 또한 필스너라는 이름으로 맥주를 팔고 있는 독일 양조장들에게 그 이름을 쓰지 말도록 요청했다. 평상시 독일 양조업계라면 맥주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겠지만, 이번만큼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황금색 라거를 필스너가 아닌 필스(pils)로 변경했다. 아마 모든 황금색 라거의 어머니인 필스너 우르켈에 대한 존중의 의미였으리라.
필스너 우르켈은 먼저 눈으로 마셔야 한다. 이 아름다운 황금색을 감상하지 않고 잔에 입을 대는 것은 이 맥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작은 항아리 같은 모양의 머그잔에 섬세한 흰색 거품을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두께가 되도록 가득 따르면 마치 TV에서나 보던 금괴들의 색인 짙은 황금색이 그라데이션을 형성한다. 4.4% 알코올을 가볍게 봤다간 꽤 강력한 쓴맛에 혓바닥을 얻어맞고 말 것이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달고나를 씹는 듯 올라오는 캬라멜라이드즈 향과 뭉근한 단맛이 놀라운 밸런스를 이루며 단지 ‘맛있다’라고만 느끼게 될테니. 뒤에서 스물스물 느껴지는 흰 빵의 향과 사츠 홉의 젖은 흙 뉘앙스는 다른 황금색 라거와 구분되는 필스너 우르켈 만의 매력을 혀 위에 각인시킨다.
금빛 라벨을 달고 있는 모든 라거는 필스너 우르켈에게 빚지고 있다. 수백 년 간 왕좌를 차지하던 영국 에일을 한방에 선반 한 끝으로 밀어버리고 황금색 라거가 지구를 뒤덮게 만든 첫걸음도 이 맥주부터였다. 수 만개의 맥주 중에 ‘원조’를 이름 옆에 붙은 몇 안 되는 맥주이기도 하며 1842년 양조 방법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맥주기도 하다. 21세기, 우리는 여전히 필스너 우르켈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이제 1842가 새겨진 묵직한 초록색 맥주를 본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 것. 맥주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것과 다름없으니.
맥주 실록은 매주 토요일 오마이뉴스에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