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시즌2> 우승자 최강록은 무엇이든 졸여버리는 자신을 ‘조림인간’이라 칭했고, <시즌1> 우승자 에드워드 리는 한국계 미국인인 자신을 ‘비빔인간’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인간일까. 그들의 표현을 빌려 나를 명명해 보자면 아마 ‘학원인간’ 일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학원 뺑뺑이는 13년 차 직장인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내 출근 가방은 빅백이 유행하기 전부터 빅백이었고, 유행이 지나갔을 때도 빅백이었다. 늘 학원 교재와 노트북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퇴근 후 곧장 학원으로 향하는 날들을 수없이 살아왔다. 누군가는 퇴근 후 맥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때, 나는 신촌역 인근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작은 강의실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아가려 애썼다.
학원을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투자 시간 대비 가장 확실한 결과를 얻고 싶어서였다. 혼자 시행착오를 겪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빠르게 익혀 써먹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보니, 삶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돈 불리는 법, 집을 사는 법, 건강을 지키는 법, 심지어 내 얼굴에 맞는 화장을 하는 방법조차 스스로 채워야 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직장은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식했고, 배움은 그 시간을 비집고 들어와 밤과 주말을 점령했다.
어쩌면 ‘학원인간’의 기원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른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과 과외를 줄짓던 학창 시절. 배움은 늘 ‘학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시험에 나올 정답을 빠르게 찾기 위해 스스로 터득하는 법보다 일타 강사의 명강의를 등록하고 배우는 방식이 몸에 배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내 삶에 깊게 인이 박혀버린 사교육 세대의 서글픈 습성일지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대학에서 교육을 전공했고, 회사에서는 교육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을 한다. 13년 차 교육 담당자로 낮에는 리더십부터 AI까지 수많은 교육 콘텐츠를 공급하며 "이 교육이 당신의 성과에 도움이 될 것"이라 설명하지만, 밤이 되면 나는 수강생으로 포지션을 바꾼다. 한 명의 절박한 학습자가 되어 누군가의 강의 결제창을 클릭한다. 공급자이자 동시에 지독한 수요자, 교육의 설계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열렬한 광팬인 셈이다.
문득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게 된다. 우리는 왜 이토록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삶을 사는가? 왜 배움은 학교에서 끝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는가? 인생은 왜 갈수록 난해해지는 수능 시험지처럼 느껴질까? 교육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마흔이 되어가도록 학원 수강신청을 반복하는 나는 배움에 중독된 사람일까, 아니면 시대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일까. 책학원으로 만들 정도로 두터운 학원 영수증들은 과연 나를 어디까지 데려다주었을까.
앞으로의 이야기는 교육을 만드는 사람이자, 동시에 교육을 가장 집요하게 소비해 온 한 사람의 기록이다. 나는 왜 계속 ‘수강신청’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나. 그 선택은 어떤 기대와 계산 위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수업들이 나를 바꾼 그 과정들을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