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고독, 소외의 다른 얼굴들
한동안 외롭다는 감정을 자주 느끼던 시기가 있었다.
집에 혼자 머물러 있을 때도 외로웠고,
밤길을 걸을 때면 공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의 시 한 구절처럼,
나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외로웠다.
함께 있음이 오히려 나를 더 고립시키는 순간이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속 요조도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수록 더 외로웠다.”
그는 사람들과 웃고 대화하면서도 끝내 ‘속하지 못한 자’로 남는다.
누군가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에 닿지 못할 때,
외로움은 더 이상 타인의 부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깊은 공허함이 된다.
외로움은 관계에서 원하고 바라던 것이 충족되지 않아
결핍과 상실을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원하던 상대가, 내가 기대한 만큼의 애정을 주지 못할 때
그 틈에서 외로움은 자라난다.
애착이론(Bowlby, 1969)에 따르면,
아동이 발달 초기에 부모와 정서적 유대감을 충분히 형성하지 못하면
그 결핍이 이후 관계 속에서도 반복된다고 한다.
친구나 연인, 배우자와의 관계 속에서도
그 공백은 형태를 달리하며 되살아난다.
외로움은 결국, 마땅히 받아야 했던 사랑의 상실에 대한 고통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속 와타나베는
사랑과 죽음, 관계와 상실을 오가며 결국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상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다만 그 상처를 어떻게 껴안느냐의 차이일 뿐.”
상호작용이론(Rokach et al, 2000)은
외로움을 사회적 욕구와 실제 관계의 불일치로 정의한다.
즉, 외로움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도,
비교와 결핍을 통해 경험되는 감정이다.
우리가 흔히 SNS에서도 경험하는 외로움이다.
누군가의 반짝이는 일상을 본 뒤,
평범한 내 일상을 바라보면 마음 한켠이 비어버린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Sartre, 1943)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고립된 존재라고 말했다.
하이데거는 죽음의 자각 속에서, 카뮈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외로움과 마주한다고 보았다.
실존심리학자 무스타카스(Moustakas, 1961)는
외로움을 "삶의 본질적이고도 유기적인 실재(organic reality of life)"로 정의했다.
“그 누구도 우리의 내면을 완전히 공유할 수는 없지만,
바로 그 인식 위에서 진정한 관계가 시작된다.”
철학자들은 외로움은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을 자각하게 하는 통로로 봤다.
외로움의 고통을 깊이 느끼던 어느 날,
나는 제주도에서 외로움의 또 다른 얼굴인 고독을 마주했다.
도착 전부터 마음이 산란했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혼란의 밑바닥에는
깊은 고독감이 깔려 있었다.
나를 위로해준 건 사람보다 자연이었다.
고독한 자연의 존재들.
바다는 광활함을 간직한 채 외로이 머물러 있었고,
야자수는 바람에 흔들리며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드넓은 풀밭 한가운데 한 마리의 말이 있었다.
쟤도 외롭겠다 싶어 들여다보던 순간,
이상하게도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 존재들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만 남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외로움이 선택의 여지 없이 그런 상태에 ‘처한 것’이라면,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홀로 있음(Voluntary Aloneness)’이라는 것을.
고독은 외로움과는 달리, 스스로 선택한 상태다.
학술적으로는 ‘자기결정적 고독(Self-Determined Solitude)’이라 불린다.
니콜(Nicol, 2005)은 자기결정성 이론(Deci & Ryan, 2000)을 기반으로,
고독의 경험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는
‘고독을 어떤 동기로 선택했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즉,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은 자기 성찰과 여가, 내적 충만함을 낳고,
비자발적인 고립은 외로움과 우울로 이어진다.
자발적으로 내면의 세계에 귀 기울일 때,
외로움은 서서히 평화로 변한다.
이것은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이
망망대해에서 거친 고독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강인함과 같다.
고독은 우리가 극한의 상황 —
영화 〈마션〉이나 〈캐스트 어웨이〉처럼
극한 상황 에서도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게 하는 내면의 힘이다.
흔히 고독과 소외를 혼동하지만, 그 본질은 다르다.
외로움이 관계 결핍에 대한 고통이고,
고독이 스스로 혼자 있기를 선택한 것이라면,
소외는 관계나 집단에서 추방당한 상태를 뜻한다.
소외는 사회로부터 경험하게 되는 통증이다.
자본이나 권력, 제도 등에 의해 배제되거나
기회가 박탈되는 경험이다.
반면 자기소외는,
자신의 어떤 한 측면을 낯설게 인식하면서
내가 나를 나 스스로 박탈시키는 경험이다.
이 역시 사회로부터 당한 소외와 유사한 고통을 수반한다.
감정 | 의미 | 방향
외로움 | 관계 결핍에서 오는 상실의 감정 | 타인을 향함
소외 | 관계나 사회로부터 배제된 상태 | 세계로부터 단절
고독 | 스스로 선택한 홀로 있음, 내면의 평화 | 자신에게로 향함
세 가지 유사한 감정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내 외로움의 모습도 조금은 더 분명해졌다.
나는 고독감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실존적 외로움과 함께
소외당하고 싶지 않은 불안을 경험하고 있었다.
우리가 외로움을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연결되려는 이유 중 하나는
소외를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소외의 공포에 대한 두려움으로
누군가에게 배제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누군가를 밀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소외의 불안’을 타인에게 전가하면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려 애쓴다.
소외의 불안에 압도되지 않으며,
단지 고독함으로 나의 외로움을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내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가장 정직하게 대하는 자세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외로움은 나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지만,
고독은 나를 내 안으로 데려온다.
그 안에서 나는 다시 나와 연결된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깊어질수록,
고독은 더 단단한 평화가 된다.
#외로움 #고독 #소외 #BeingMe #감정의결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