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1- 살아내기 위한 멈춤

by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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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스스로의 추악함을 피조물에게 투영하는가

(이 글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주요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본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영화가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

인간이 신의 자리에 닿으려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이 무너지는 순간의 절망 때문이었다.


빅터는 인간의 신체 일부를 모아 강한 전기로 생명을 불어넣는 실험을 했다.
수많은 시도 끝에 마침내 그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희열 대신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가 만든 피조물이 꿈꾸던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어눌하게 자신만을 부르는 거대한 성인을 보며
빅터는 자신의 무능함과 추악함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곧 증오로 바뀌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달랐다.
그녀는 피조물에게서 추악함이 아닌 순수함을 봤다.
세상의 욕심이나 증오가 덧입혀지지 않은,
깨끗한 도화지 같은 영혼이
엄마를 찾듯 창조주인 빅터를 바라보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그녀의 눈에는 연민과 애정이 비쳤다.


내면의 거울, 투영

같은 존재를 두고도 이렇게 다른 마음이 투영된다.
이 극명한 시선의 차이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은 내면의 자기 모습을 외부로 투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투영은 순수할수록 더 정직하다.


빅터는 자기 안의 깊은 증오를 피조물에 투사했기에 추악함을 봤다.
그는 그 증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생명 창조라는 극단적인 열정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 열정의 끝에는 늘 공허가 있었다.

실험의 성공도, 파괴의 욕망도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무언가 달라질수 있을까라는 희망은 광기로

광기는 생명 창조의 열정으로,
얼정은 피조물에 대한 절망으로

절망은 피조물을 죽이려는 노력으로

노력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무기력으로

무기력은 다시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 희망으로 순환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는 이 끝없는 인간의 순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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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살아내기 위한 멈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나를 바꾸고 싶거나, 무언가 성취하고 싶거나,
혹은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을 때 ‘노력’이라는 걸 한다.


그런데 이 노력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바로 무기력이 작동할 때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번에 그린 그림이 너무 별로라 제대로 해야 하는데, 하기가 싫어요. 저는 너무 게을러요.”
“주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많이 공부하고 스터디해야 하는데, 잘 안 돼요. 한심해요.”


무기력할 때 우리는 흔히 스스로를 게으르거나 부족하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무기력은 사실 절망의 흔적이다.
애쓰고 애쓴 끝에
‘해봤자 소용없다’는 무력감을 마음 깊이 체험했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건 나약함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온 증거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저는 열심히 안 살았어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지금도 해야 할 걸 안 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그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지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이며 하루를 버텼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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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은 게으름의 꼬리표가 아니다.
삶이라는 늪 속에서 버티고, 발버둥치고,
살아남기 위해 애쓴 흔적이다.


무기력하다면 잠시 멈춰도 된다.
나의 애씀을 인정하자.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무기력은 끝이 아니다.
그동안 버티느라 지쳐버린 나를 다시 만나려는,
잠시의 멈춤이다.


그 멈춤 속에서
빅터가 자신의 피조물을 아들로 받아들이며 평안을 찾았듯,
나도 그저 나를 받아들이며 평안을 찾으면 된다.


바꿔야 하는 나에서,
지금도 괜찮은 나를 확인하는 그 작은 노력.
그렇게 조용히 나를 다시 받아들일 때,
희망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피어난다.




다음 글에서는
이 무기력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한다.
몸과 마음의 과학 속에서,
이 ‘멈춤’이 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과정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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