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는 왜 말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는가

by 전민재

요즘 한국사회에서 요리는 이상한 기준으로 평가된다.


가정에서 매일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전업주부의 노동은 쉽게 평가절하되거나 비하의 대상이 된다.


반면 같은 요리를 직업으로 하는 셰프의 삶은

열정과 예술, 성공의 서사로 포장되며

동경의 대상이 된다.


같은 행위인데, 같은 재료를 다루는데,

한쪽은 “당연한 일”이 되고

다른 한쪽은 “존경받을 일”이 된다.


이 간극은 단순한 직업의 차이라기엔 지나치게 크고, 뜨겁다.


왜 우리는 이토록 극단적으로 다른 평가를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차이는 결국,

전업주부라는 선택을 말하기 어려운 선택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전업주부는 단지 ‘집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가정이라는 조직을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주이며,

위기의 순간마다 구성원에게 지혜와 용기를 건네는

허파 같은 존재다.


눈에 띄는 성과는 없지만,

숨이 멎으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능을 맡고 있다.


이 역할은 특정 성별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전업주부는 여성일 수도, 남성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이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택은 왜 점점 말할 수 없게 되었을까.



개인의 성취만이 삶의 의미가 된 사회



지금의 사회는 개인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너만의 성과는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전업주부의 삶은 설명이 어렵다.


누군가의 성취를 돕고,

누군가의 회복을 지탱하고,

누군가의 성장을 기다리는 일은

‘내 이름으로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업주부는 종종 이렇게 오해된다.


성취를 포기한 사람,

경쟁에서 빠진 사람,

혹은 선택하지 못한 사람으로.


하지만 어쩌면 전업주부는

삶의 의미가 개인의 성취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더 일찍 깨달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성과가 인간을 완성시키지 않고,

관계와 돌봄이 삶의 밀도를 만든다는 것을

조금 먼저 알아버린 사람.




모두가 개인으로만 존재하려는 사회의 불안



만약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성취, 각자의 성장, 각자의 목표만을 향해 달린다면

그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될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 답에 가깝다.


돌봄은 외주화 되고,

감정은 방치되며,

가정은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또 하나의 피로한 현장이 된다.


그 사이 개인은 점점 더 지치고, 더 고립된다.


전업주부의 역할은

이 모든 균열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완충지대를 만드는 일이다.


갈등이 폭발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넘어지기 직전 다시 숨을 고르게 만드는 일.


이 역할이 사라질수록

사회는 더 많은 비용을 치르고,

개인은 더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전업주부는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업주부의 삶은

경제적 안정이 어느 정도 보장될 때만 가능한 선택이 되었다.


맞벌이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이 삶을 옹호하는 말은

곧바로 이렇게 반박당한다.


“그건 여유 있는 사람들 이야기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


필요하지만 말할 수 없고,

가치 있지만 드러낼 수 없는 선택이 된다.


그 결과 전업주부는

비하의 대상이 되거나,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역할을

사적인 영역으로 밀어내버린 사회의 실패에 가깝다.




말해지지 않는 선택에 대해 말하기



전업주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가 개인으로 버티느라 숨이 가쁠 때,

공동체가 완전히 붕괴되지 않도록

숨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지금 이 선택이 말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삶이 틀려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더 이상

‘지탱하는 삶’을 존중할 언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는 이렇게 물어야 할 때다.


삶의 의미는 정말 개인의 성취에만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가 대신 지켜온 숨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성공이라 부르고

어떤 삶을 말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걸까.


어쩌면 이 글은 어떤 선택을 옹호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쉽게 지워버린 삶의 형태가 있었음을

한 번쯤 돌아보자는 제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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