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 시절의 나와 화해하는 것

by 전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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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용서는 나를 위해서 하는 거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래야 하는 것이니까 의지로 그러려고 하는 것 뿐이지 진심으로 자기자신을 위해서 용서한다는 것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용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신 분으로부터 ‘용서는 남이 아닌 나를 용서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에서 읽은 것이라 했고 자신도 경험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무슨 말이지?’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하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내게 큰 상처를 남긴 그 일에 상대방이 아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열쇠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무수히 있었던 여러 가지 내 내면의 신호들을 스스로 외면하고 무시했던 책임을 져야한다는 뜻이었다. 그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 스스로를 추스르고 상처를 돌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살아낼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그 날의 일에서 내 권리와 책임을 다하지 못해 악몽이 되게 했던 그 때의 미숙한 나 자신을 용서한다.’


‘그 일을 겪고도 빨리 깨우치지 못하고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그들을 원망만하고 무기력하게 내 삶을 방관한 것을 용서한다.’


그러고 나니 용서란 것이 내가 생각했던 누가 누구를 용서하는 그 개념을 벗어나는 더 큰 범주의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상처를 받은 피해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 상황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과 그 과정 자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비로소 길가로 나와 다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것.

상처를 준 상대방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그와는 상관없이 내 갈길을 다시 가게 되는 것.

그 사람 때문에, 그 일 때문에 라는 연결고리를 잘라버리고 원래의 자유한 상태로 다시 돌아오는 것.

누구를 용서하고 말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과 상관없이 그냥 내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 같다. 준비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씩 보여준다. 그때 진실을 비로소 알려준다. 소화하고 감당할 준비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 속내를 보여준다.


용서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그날 이후 내게 큰 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했던 그 일과 관련된 기억과 감정들이 조금씩 그 농도가 옅어져 가는 걸 느낀다. 이제는 그냥 내 삶을 사는 데에 그 기억들이 장애물이 되진 않을 정도가 된 것 같다.


나로 살기 위해서는 내게 상처로 남은 그 시절의 나와 화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금 현재에서 진짜 내 삶을 살아나갈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