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사진 출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저는 10년 동안 줄곧 한 회사에서만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회사에서는 경력직을 채용해 주요 포스트에 배치하고 있는데 경력직 중에는 글로벌 컨설팅 펌 출신, 미국 MBA 보유자 등 경력이 화려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처럼 한 회사에서만 근무하는 게 맞는 길인가요?
고민 많이 되시겠어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은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죠.
사실 신입사원 때에는 업무 파악하고 일 배우느라 정신없어서 이런 생각까지 할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높아지면 본인 커리어 관련해서 그동안 생각 못했던 고민거리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 중 하나가 바로 다음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빠꾸미'의 삶을 살 것인가,
'외인구단'의 삶을 살 것인가?
빠꾸미: 한 회사에 근무하면서 그 회사에 대해 속속들이 꿰차고 있는 직원. 한 회사 우물만 판 사람
외인구단: 여러 회사에 근무하면서 뛰어난 역량과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직원. 경력이 화려한 사람
빠꾸미나 외인구단 모두 자발적으로 선택한 포지셔닝입니다. 이직 능력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한 회사에서 버티고 있는 경우나, 이 회사 저 회사에서 짤려 여러 회사를 전전하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빠꾸미'와 '외인구단'의 특징은 무엇이고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에 대한 제 '51%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Disclaimer
많은 분들이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외인구단에 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빠꾸미 관련해서는 설명이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외인구단 관련해서도 주관적 경험이 강하게 반영돼 있어서 일반적인 경우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필요 자격은?
빠꾸미의 경우 사내 주요 임원과의 신뢰 관계 형성은 필수입니다. 일도 못하면서 빠꾸미 행세하기는 쉽지 않죠. 또한 사내에서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장단점을 갖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네트워크가 촘촘하고 탄탄해야 합니다. 사내 다양한 부서 근무 경험도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기업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 음주가무는 세미(Semi-) 필수입니다. 정보 파악과 네트워킹을 위해서는 술자리 참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죠.
외인구단의 경우 고학력과 좋은 회사 근무 경험은 필수입니다. 이직을 위해서는 먼저 이력서가 빵빵해야겠죠.
미국 MBA, 글로벌 컨설팅 회사나 투자은행 등과 같은 프로페셔널 펌 근무 경험은 세미(Semi-) 필수입니다. 화려한 경력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폭넓은 인맥과 최소한의 서바이브 스킬 확보를 위해서는 이만한 게 없습니다. CFA 등과 같은 전문 자격증도 있으면 플러스죠.
커리어 패스는?
'케바케'이지만 일반적으로 빠꾸미는 느리지만 오래 가고 높이 갈 수 있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가늘고 길게 가지만 한번 탄력 받아서 이너써클 안에 들면 굵고 길게 가죠.
외인구단은 처음에는 빠르지만 높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굵고 짧게 가죠. 그런데 한 회사가 아니라 여러 회사에서 굵고 짧게 갑니다.
빠꾸미는 입사 초기에는 가늘고 길게 가지만 한번 탄력 받아서 이너써클 안에 들면 굵고 길게 가는 반면, 외인구단은 여러 회사에서 굵고 짧게 간다
또 일부 회사는 빠꾸미와 외인구단의 승진연한을 달리 가져갑니다. 경력직을 뽑을 때에는 높은 직급을 주지만 좀처럼 승진시켜 주지는 않죠. 그러면 경력직은 또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고 전형적인 외인구단이 됩니다. 개중에는 외인구단을 쓰고 버리는 '나쁜 회사'도 많습니다. 이런 회사는 피해야 하지만 판별하기가 쉽지는 않죠.
빠꾸미의 종착지는 그 회사의 CEO 또는 최소한 C-레벨 임원입니다. 빠꾸미 중에서 차부장으로 명퇴하려고 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비자발적 빠꾸미를 제외하면요. (엄밀히 말해 비자발적 빠꾸미는 빠꾸미가 아닙니다.)
외인구단의 종착지는 일반적으로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입니다. (1) 자기 사업, (2) 글로벌 회사의 국내 지사장, 그리고 (3) 한 회사에 정착해서 빠꾸미로 전환하는 것. (물론 그 외에도 많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 3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빠꾸미로 전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경력직을 많이 뽑는 고성장 회사에 과차장 직급으로 들어가서 소프트랜딩하는 겁니다.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은?
저는 처음에는 빠꾸미의 커리어 패스를 타다가 이직을 하면서 외인구단의 패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경력직이 많은 회사에 오래 다니다 보니 빠꾸미 비슷하게 되다가 결국은 다시 외인구단의 패스를 밟게 되었죠. 어쨌든 빠꾸미와 외인구단의 패스를 왔다갔다 해본 사람으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빠꾸미는 외인구단에 대해 한 마디로 '어중이떠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차피 좀 있으면 떠날 사람', '경력은 좋지만 막상 회사 업무 방식에는 어두운...'. 이런 생각을 하죠.
외인구단은 빠꾸미를 '우물 안 개구리'로 생각합니다. '이 회사 말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차피 갈 데도 없으면서...', '많이 해봐서 익숙한 거지 일을 잘 하는 건 아니지'. 이렇게 여기죠.
빠꾸미는 외인구단을 '어중이떠중이'로
외인구단은 빠꿈이를 '우물 안 개구리'로 여긴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빠꾸미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도태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빠꾸미는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아무래도 업무 방식에는 매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일도 잘 하구요. 문제는 어느 한 회사에서 일 잘하는 거랑 업무 역량이 뛰어난 거랑은 다르다는 거죠. 회사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업무 중 상당 부분은 한 번 익히면 별다른 고민 없이 수행할 수 있는 단순 루틴한 게 많습니다. 이런 걸 잘 하는 사람은 아주 좋은 말로 '달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일 외에 다른 일은 잘 못하죠.
어느 한 회사에서 3년 정도 근무하다 보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회사 일만 하다가 나 바보 되는 것 아니야?
심지어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하신 분들은 어떻겠어요?
실제로 어느 한 회사에서 일을 잘 하는 사람은 그냥 '그 회사 일만 잘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유한 지식도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고, 인맥은 회사 업무 관련 인맥 밖에 없고.
다행히 요즘 대기업에서는 팀장급 이상이 되면 회사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쌓을 수 있는 교육 기회를 많이 제공합니다. 이러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지 않으면 정말 '삶은 개구리' 됩니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 (Boiling Frog Syndrome) - 개구리를 끓는 물에 넣으면 팔짝 뛰어올라 도망가지만 차가운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도망가지 않고 죽고 만다는 내용. 조금씩 고조되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화를 당하게 된다는 뜻.
외인구단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과연 정착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사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외인구단의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나는 이 회사 저 회사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처음에는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입사하지만 다녀보니 '회사가 비리가 많고 부패해서', '부서 사람들이 못되고 이상해서', '술자리를 강요하는 등 기업문화가 지저분해서', '성희롱이 심심치 않게 자행되고 있어서'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이직을 하게 된 분들이 훨씬 많죠.
다행히 실력과 경력을 겸비해서 여러 차례 이직할 수 있었지만 '언젠가는 나랑 잘 맞는 회사에 정착해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다들 하게 마련이죠.
그런데 여러 회사를 다녀봤는데 나랑 천생연분인 회사는 없는 거예요. 새로 회사를 옮겼는데 지난번 회사가 더 좋았던 것 같아서 후회도 들고요. 그러다 보면 '내가 과연 한 회사에 정착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점점 커지게 됩니다.
커리어 리스크는?
빠꾸미의 가장 큰 리스크는 회사의 재무 상황이 어려워지거나 또는 그 회사로부터 팽 당해서 10년 이상 몸담아온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빠꾸미가 보유한 지식과 정보 중 상당 부분이 회사를 옮기는 순간 평가절하됩니다. 빠꾸미는 현재 회사에 최적화된 업무 방식과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서 적응하는 것도 어렵죠. 영어 표현으로는 '모든 달걀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은' 꼴이기 때문에 이 바구니를 떨어뜨리면 큰 일 납니다.
외인구단의 가장 큰 리스크는 외인구단을 너무 많이 뛰어 더 이상 뛸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외인구단은 보편적인 지식과 업무 방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를 옮겨도 그 가치가 대부분 보존됩니다. 물론 일정 시간의 적응 기간은 필요하지만요. 또한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은' 꼴이기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져도 다른 회사로 갈아타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하지만 외인구단으로 계속 뛰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 같은 게 있습니다. 회사를 너무 자주 옮기거나, 여러 산업을 왔다갔다 하며 근무하는 등 커리어 패스에 일관성이 없을 경우 외인구단으로서의 자격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한 마디로 커리어 끝이죠.
빠꾸미의 가장 큰 리스크는 몸담고 있는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것
외인구단의 경우는 외인구단을 너무 많이 뛰어 더 이상 못 뛰게 되는 것
이상으로 '빠꾸미'와 '외인구단'의 특징과 상황 별로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어떻세요? 어느 쪽이 본인 성향과 더 잘 맞는다고 생각되세요? 그럼 한번 질문드려볼까요?
여러분은 빠꾸미와 외인구단 중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1. '빠꾸미'는 한 회사에 근무하면서 그 회사에 대해 속속들이 꿰차고 있는 직원, 즉 한 회사 우물만 판 사람을 의미하고, '외인구단'은 여러 회사에 근무하면서 뛰어난 역량과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직원, 즉 경력이 화려한 사람을 의미한다.
2. 빠꾸미는 입사 초기에는 가늘고 길게 가지만 한번 탄력 받아서 이너써클 안에 들면 굵고 길게 가는 반면, 외인구단은 여러 회사에서 굵고 짧게 간다.
3. 결국 빠꾸미와 외인구단의 길 중에서 어디로 갈지는 여러분의 선택이다.
추신
제가 빠꾸미가 아닌 외인구단의 삶을 선택한 데에는 아마도 제 첫 직장에서의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첫 직장에 입사한 '90년대 말 당시는 IMF 위기로 모든 기업에서 해고의 바람이 불 때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체 직원의 10% 이상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한 길만 걷다가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으신 선배님들 중에는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 자영업자의 삶을 살다가 결국은 파산하시는 분까지 있었습니다. 그러한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제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MBA도 다녀왔고 이직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부터는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40대부터는 경험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신뢰와 로열티가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꾸준하게 외길을 걸어온 친구들이 부러워지더군요. 회사 동료들로부터 '굴러들어 온 돌' 취급받을 때에는 부러움이 더욱 커졌고요. 그리고 또 제 능력과는 관계없이 '경력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한계에 부딪힐 때에는 제 커리어 패스에 대한 후회도 들었습니다.
빠꾸미가 되었든 외인구단이 되었든 한 번 선택한 길은 좀처럼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부디 신중하게 선택하십시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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