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에 후회는 없다.비록 취업은 힘들어도.
내 전공은 다소 유니크하다.
아, '유니크'라는 단어 때문에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공에 관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개인의 Identity 혹은 Specialty를 비교적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이의 전공은 관심받기에 충분하다.
-내 전공만 특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크하다'라고 표현 한 이유는 나의 전공이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나는 루마니아어를 전공했다.
지난 6년 동안 대학생활과 더불어 교환학생, 봉사활동, 배낭여행, 대외활동, 미팅, 소개팅, 인턴 등을 하면서 수많은 첫 만남을 가져왔다.
첫 만남에서 어색함을 깨기 위한 좋은 주제는 단연 '전공'이다.
앞서 말했듯이 전공은 짧은 단어로 나를 표현할 수 있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수월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은근슬쩍 내 전공을 커밍아웃(?)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솔직히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사람들의 재밌는 반응을 엿보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루마니아어를 전공했을 때 경험하는 흥미로운 것들을 범주화해서 공유해보려고 한다.
가능한 일반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나'라는 변수가 있으니 감안해주면 좋겠다.
"전 루마니아어 전공이에요"라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외국인 포함)
(1) "우와!"형 99.9%
이건 절대적이다. 이제는 "전 루마니아어 전공이에요"라고 말한 다음 예상되는 "우와!"라는 말을 같이 외칠 수 있는 타이밍의 귀재가 되었을 정도다.
사실 나도 "우와!"다. 내가 루마니아어를 전공하다니.
그 다음 루마니아어를 해달라는 요구가 뒤따라온다.
그럴 때 "우누도이뜨레이빠뜨루친치샤세샵떼옵뜨노우어제체"를 속사포로 읊으면 두 번째 "우와!"를 들을 수 있다.
뜻은 12345678910이다.
다음의 소개할 반응들은 이 우와! 에서 파생된 패턴이다.
(2) "안다"형 40%
이 "안다"형을 만나면 나도 신기하다. 루마니아를 아세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잘 알지는 못한다.
대부분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쉬티를 알거나 드라큘라, 프란체스카(한국의 시트콤)를 언급하곤 한다.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축구 때문에 알게 되었다고 하고, 극히 소수는 루마니아의 전설적인 체조선수 코마네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간혹 가다 "루마니아가 러시아랑 붙어있는 나라죠?"라는 귀여운 오답에,
"아뇨 루마니아는 동유럽이에요. 헝가리 옆, 불가리아 위, 우크라이나 아래 있는 나라요^^"라고 정정해주는 즐거움이 있다.
"안다"형은 대화의 물꼬를 트거나 자연스러운 네트워킹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몇 달 전 내가 통역에 참여했던 행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촬영하는 피디님을 만났을 때 이야기다.
저녁식사 때 내 전공을 물어보시기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0년 전쯤에 루마니아 여행 다큐멘터리를 찍으셨던 피디님이라고.
반가움+신기함 덕분에 그 테이블의 분위기는 와인과 함께 부드럽게 바뀌었다.
(3) 인터뷰형 30%
이 유형은 나이가 조금 있거나 특히 외국인의 흔한 반응이다.
"우와!"를 거친 다음에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왜 루마니아어를 전공으로 선택한 거지?"라고 묻는 말에 내가 더 당황스러울 정도다.
점수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다는 대답은 그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한국의 입시 상황까지 설명해야 한다.)
동기 확실하고 논리 정연하게 대답하니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돌아온다. "Awesome! Gorgeous! 와 함께.
(4) 지인형 20%
우리 과를 말하면 굳이 학교를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어느 대학인지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학과의 몇몇 선후배 동기들은 먼저 전공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왠지 신상이 다 오픈되는 느낌이랄까.
루마니아어는 전공자로 하여금 바른생활을 실천하게 도와주는 순기능을 한다.
한두 다리 건너서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니 평소에 착하게 살아야지.
그러니까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경우가 20% 정도 차지한다.
전공을 말했을 때, "어! 그 과에 혹시 OO 아세요? 저 걔랑 친구예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누구 아냐고 물어보면 거의 안다.
과 정원이 너무 적어서.
Mutual을 알게 되었을 때 새로운 친밀도가 상승하니 최소한 불행은 아닌 것 같다.
(5) -스러워형 10%
전공을 말하면 "어쩐지 루마니아 사람 느낌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심지어 이 말을 가장 많이 듣는 경우는 취업상담이나 특강을 들을 때다.
짐작해보건대 우와 외에 딱히 반응할 것이 없거나 루마니아 여자를 잘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집시 같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나 갑자기 고민된다.
평소 화려한 패턴의 옷과 액세서리의 스타일링이 그들이 생각하는 상상 속의 루마니아 여자 모습과 일치하나 보다.
그래도 들으면 기분 나쁜 말은 아니다. 극한 경우에는 한국인이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둘 다 영어를 잘 못하는 건 함정.
(6) I love Romania형 0.01%
당연히 "우와!"하는 반응이겠거니 생각했던 소녀가 눈이 똥그래지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그 사이 갖가지 생각이 맴돈다.
'혹시 루마니아에서 온 소녀인가?' 알고 보니 정말 극히 드문 루마니아를 너무 동경하는 친구였다. 나보다 루마니아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전공을 물어보니 공학 쪽을 공부한다고 했다.
루어를 읽는 법도 안다. 루마니아가 그냥 좋다며 헤헤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졸업은 했지만 전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앞으로 어떤 반응이 더 새로 생길지 궁금하다.
웬만하면 위의 6가지의 범주 안에 포함되겠지만 6번 같은 특이한 경우도 있으니 기대해볼 만도 하지!
루마니아어는 여러모로 참 재미있는 전공이다. 더불어 루마니아어가 만들어준 소중한 인연들에게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