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Experiencer Jan 14. 2020

퇴사하고 세계여행 부모님 반응, 해외반응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해야 하죠...?

01/11/2020 , Written in Santa Teresa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를 본 해외 팬 반응’, ‘김연아 선수 금메달에 대한 일본의 반응’, ‘영화 기생충 해외 반응’.

다른 이의 눈을 유독 의식하는 우리 한국인들은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 궁금하다.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특히 외국사람의 반응을 유독 알고 싶어 한다. 손흥민 선수가 골만 하나 넣어도 외신의 반응과 더불어 해외 팬의 반응까지 연관 동영상으로 줄줄이 소시지처럼 나온다. 와, 진짜 멋있게 넣었네. 잘한다, 쏘니 멋있다, 정도의 가벼운 감상이면 충분한데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이 싫어서 탈조선을 꿈꾼다 해도 유튜브에서 해외 반응을 볼 땐 간혹 국뽕에 차오르기도 한다.

생판 모르는 남에 대한 반응도 궁금해하는 판국에 퇴사를 하고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많은 이는 부모님들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특히 친구들의 부모님이 그렇게 궁금해하셨다. “이제 결혼하고 안정적으로 사는 것 같더니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난다고? 갔다 와서는 뭐 한대니? 새미네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다니?”라며 친구들에게 물으셨다고. 그 새미네 부모님은 예상대로 노발대발하셨다. 전형적으로 보수적인 경상도 출신의 우리 부모님은 자영업을 하시며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회사원이 최고다. 주말에 일도 안 하는데 월급도 따박따박 나오지, 공휴일에도 다 쉬지, 게다가 휴가까지 돈을 주는 데가 얼마나 좋은 줄 아니? 군말하지 말고 감사하며 다녀야 한다.” 평소의 기조를 잘 알기에 쉽사리 퇴사하고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부부 세계 여행자의 커뮤니티에 고민상담 글이 올라왔다.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두려워서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굉장히 남 일 같지 않았다. 놀랍게도 같은 고민을 해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야기를 꺼냈더니 부모님과 갈등이 생겨 명절에도 못 만난 사연부터, 결국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해외에 일하러 간다고, 혹은 외국에 있는 친구 집에서 지낼 거라고 하고 나온 부부 등 각양각색의 사연이 댓글로 달렸다. 부모님들은 공통적으로 위험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반대를 하셨다. 물론 결국엔 반대가 응원으로 바뀌었다는 댓글도 많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 큰 성인인 데다 우리가 앞으로 더 잘 살자고 떠나겠다는 건데 꼭 부모님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고 싶었다.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크면서 그들의 의지를 반한 적 없는 말 잘 듣는 딸이었다. 엄마가 자랑하기 좋은 ‘엄친딸’이 되고 싶어 좋은 대학, 번듯한 직장을 위해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장난 삼아 퇴사의 ‘ㅌ’만 꺼내도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며 대화를 원천 봉쇄하셨다. 정공법은 쉽지 않겠다는 직감이 왔다. 남동생 카드를 써서 측면 돌파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를 연남동 중국음식점으로 불러내어 정신없게 꿔바로우, 짬뽕에 군만두까지 시켜 배에 기름칠을 칠해주며 내 편으로 포섭했다. 네가 같이 사니까 엄마 기분 좋아 보일 때마다 툭툭 흘려봐라. “누나가 퇴사를 하고 조금 길게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빠 귀까지 흘러갈 수 있도록 치고 빠져봐라. 잘하면 다음엔 양꼬치를 사주겠다는 공약에 그는 쉽게 넘어왔다.  

동생이 몇 달간 활약을 했으리라 믿고, 1차 대상인 엄마에게 쭈뼛거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솔직히 엄마는 바로 찬성을 할 줄 알았다. “남들처럼 그냥 돈 모아서 집 사고 아기 낳고 키우면서 그렇게 살면 안 되니?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안 될까?” 라며 예상보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믿었던 도끼조차 걱정 섞인 만류를 하며 발등을 찍으셨다. 2차 공격(아빠)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 사이 남편도 시부모님에게 정공법으로 나갔다. 두 분 역시 예상한 대로 걱정하셨다. 이대로 가다가는 패색이 짙어 보였다. 새로운 작전이 필요했다.

세계 여행자 선배인 ‘제제 미미’ 부부는 부모님께 고기와 술을 대접한 후 세계 경제전망까지 언급하며 발표를 했다는 조언이 떠올랐다. 학생 때 질리도록 발표 과제를 했던 기억을 살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경제전망까지 싣진 못했지만 심금을 울리기 위해 세계여행을 결심하게 했던 책 속 구절까지 딴 발표자료도 칼라인쇄로 2부 출력했다. 대망의 그날이 밝았다. 출국 다섯 달 전,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네 분을 파주의 어느 한정식집으로 초대했다. 세종대왕이 아닌 신사임당으로 준비한 스페셜 에디션, 직접 만든 용돈 꽃바구니도 안겨드리는 치밀함까지 발휘했다. 매도 먼저 맞으라고, 음식이 나오기 전 발표를 시작했다. 회사에서 임원들 앞에서 했던 발표 다음으로 떨리던 발표였다. 부모님들은 이 황당한 상황에 기가 차다는 듯이 웃으며 들으셨지만, 얼핏 본 아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뇌물




7분간의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굳은 아빠 표정에 긴장하며 피드백을 기다렸다. 이때 어색한 공기를 뚫고 아버님이 포문을 여셨다. “저는 솔직히 아이들 결정에 찬성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일하던 시대에서 바뀌었으니 저희가 못 해본 경험을 하는 건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조차 놀란 아버님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아빠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두 어머니들 역시 ‘다녀와서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해 우려를 비치셨으나 찬성표를 던지셨다. 마지못한 아빠는 마지막 발언을 하셨다. “저는 오늘 나오면서 사돈과 합세해 애들 여행 못 가게 말리려고 나왔는 데 말이죠 허허...... 제가 안 그래도 걱정이 돼서 친구들한테 하소연을 했어요. 그랬더니 한 친구가 이럽디다. 지들이 다 자신이 있으니 떠난다고 하는 거지, 자신 없는 애들은 나가라고 해도 못 나간다고요. 그래서 저도 찬성하겠습니다.” 아빠 역시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아 보였어도 마음속으로는 불이 나셨던 거다. 내가 그랬듯 친구들에게 고민상담까지 하셨을 줄이야. 귀여운 우리 아빠. 이렇게 만장일치로 부모님들의 찬성을 얻어냈다. 실로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이 아닐 수 없었다. 나중에 그들은 ‘5.7 파주 사건’을 회상하며 어버이날 최고의 불효를 저질렀다고 평하셨다.




부모님의 산을 넘었으니 이제는 대항해 시대만이 남았다. 다음 차례는 회사였다. 부모님만큼은 아니어도 젊은 직원보다 40대 이상 남자 직원이 많은 조직이었다. ‘여기 만한 데 없다며’ 철없다는 훈계를 들을 각오를 했다. 사직서에 세계여행을 썼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못 해봤으니 너라도 멋있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났냐’는 예상외의 훈훈한 반응이었다. 회사 반응을 보며 확실히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을 체감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우려 섞인 응원을 받으며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길 위에서 참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친해진 외국인들에게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떠났다고 얘기하면 그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세상 쿨할 것 같은 서양인들도 막상 내려놓고 떠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단, 해외 반응의 특징은 ‘여행 후의 삶’에 대해 걱정보다는 응원의 비중이 높다는 것.

아프리카에서 20일 동안 트럭을 타고 캠핑을 했었다. 23명의 멤버에는 우리 또래가 많았는데,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에서 일하기 전 여행을 온 미국인, IT 개발자로 일하며 사내 연애 중인 스페인 커플, 카메룬에서 프랑스로 이주해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친구, 수학과를 졸업하고 금융회사에서 일하다 수학 선생님이 된 런던 친구들까지 모두 다양한 배경이었다. 이미 은퇴한 66살의 네덜란드 부부와 안식년으로 온 독일 선생님 제니퍼를 말고는 모두 한 달의 휴가를 받아 아프리카에 온 직장인이었다. 이들 역시 하나같이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듣자 한국의 친구들처럼 놀라워했다 (내가 만약 매년 한 달씩 온전히 휴가를 받으면 퇴사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퇴사는 만국 직장인들의 꿈이었나 보다. 그들은 헤어질 때 따뜻하게 안아주며 이야기했다. “너희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미래는 걱정하지 말고 지금을 마음껏 누려.”  

그렇게 우리는 친구, 부모님, 친구의 부모님, 회사 사람들에 외국인 친구들까지 많은 이들의 걱정과 기대 속에 여행을 마쳤다. 과연 그들의 걱정처럼 나와 남편은 회사만 다니던 때보다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인가? 나도 우리가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신 없으면 퇴사하지 마세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